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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26,400원, 248권 펀딩 / 목표 금액 1,500,000원
<추리소설로 철학하기>로 출간되었습니다. 
  • 2024-01-02에 목표 금액을 달성했습니다.

* 본 북펀드는 출판사 요청에 따라 출판사 주관하에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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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추리소설가가 된 철학자, 백휴 선생의 ‘추리소설 읽는 철학 수업’
평생 추리소설로 철학하며 집필해온 글의 정수만을 담은 책


추리소설은 서구의 정신이 몰락하는 와중에 생겨난 문학 장르다. 추리소설가는 은유에 대한 불신을 표명하며 새로운 은유 사용법을 요구한다. 시詩가 사유와의 대립을 통해 그랬던 것처럼 추리소설 또한 사유의 자극제일 수 있다. 에드거 앨런 포는 시인이지만 근대 추리소설의 시조로 불린다. 심리학자 크루치J. W. Krutch는 포가 미치지 않기 위해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만들어냈다고 했다. 이 말은 과장된 말이다. 포는 ‘시 쓰기’를 지적인 작업으로 변형시킨 사람이다. 시적 상상력과 천문학적 지식을 버무려 《유레카》를 쓴 포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는 발산했다가 수렴(수축)한다. 이 수렴을 대변하는 문학 장르가 시인 동시에 추리소설이다.
‘추리소설은 주변부 문학’, 순문학이 아닌 ‘잡문학’, ‘오락에 불과한 읽을거리’라는 우리 사회의 폄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철학은 부분적으로 추리소설적이어야 한다’고 말했고 움베르토 에코는 가장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본성을 갖는 추리소설의 플롯을 외면함으로써 이탈리아 문학이 망가졌다고 말하며 《장미의 이름》를 썼고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사유나 추리소설은 공히 ‘위반’의 문제를 다룬다고 생각해 《비잔틴 살인사건》이라는 철학적 추리소설을 썼다. 사상가들이 추리소설로 자신의 철학을 형상화한 이유는 무엇인가? 위대한 철학자들이 추리소설 텍스트를 분석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추리소설은 살인 사건을 다룬다. 살인이란 인간의 극단적인 행위에 속한다. 철학이나 사유 또한 극단적 사색으로 점철돼 있다. 평생 추리소설로 철학을 해온 한국 추리작가 백휴에게 진정한 사유란 공동체를 유지하고 그 속에서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지혜’를 넘어서 세상의 모든 권위와 권력을 뿌리부터 의심하는 작업이었다.

에드거 앨런 포, 애거서 크리스티, 히가시노 게이고, 서미애, 정유정…
추리소설로 철학하는 지적인 쾌감과
극단까지 밀어부친 사유의 풍경을 만난다


《추리소설로 철학하기》는 에드거 앨런 포에 의해 시작된 추리소설이 현시점에 이르기까지 어떤 방식으로 대중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작가의 사유를 텍스트에 숨겨왔는지 발견할 수 있는 책이다. “이따금 천재 탐정의 예리한 눈빛을 볼 때 허허벌판에 선 인간의 당혹감을 즐기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라고 반문하는 백휴 작가의 평생에 걸친 치열한 사유를 만끽하며, 추리소설로 철학하는 지적인 쾌감과 백휴의 극단까지 밀어부친 사유의 풍경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와 움베르토 에코는 21세기는 추리소설의 시대가 될 거라고 예감했다. ‘탐정은 기호학자다! 움베르토 에코’, ‘사유하는 추리소설가 줄리아 크리스테바’ 편에서는 현대 문학의 위기를 절감하며 자신들의 사상을 추리소설로 표현한 작가들의 텍스트를 분석했다. 저자는 에코의 추리소설 속 사건 현장을 넘쳐나는 자연기호들을 해독해야 하는 전형적인 기호학의 무대로 보았다. 또한 철학과 추리소설이 공통적으로 ‘위반’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을 꼬집으며 독자들로 하여금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비잔틴 살인사건》을 통해 철학하는 경험을 누리게 한다.
에드거 앨런 포의 탐정인 뒤팽의 자기의식 문제, 애거사 크리스티의 코지 미스터리가 담고 있는 대영제국 몰락에 따른 상실감을 보상하기 위한 전원생활과 향수와 극장이론, 레이몬드 챈들러의 미국식 실존주의, 폴 오스터의 형이상학적 추리소설인 《뉴욕 삼부작》,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관통하는 마루야마 마사오의 일본 정치 사상 등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는 추리소설가들과 작품을 철학적으로 분석한다.
백휴는 작가들의 전작을 통해 발견되는 공통된 패턴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철학적 사유를 펼친다. 특히 주변부 문학으로 관심 밖에 밀려나 상대적으로 폄하되어온 한국의 추리소설을 철학적으로 분석한다. 김내성의 ‘탐이探異’, 김성종의 실존적 슬픔과 세대 단절을 상징하는 ‘아기’, 김내성이 한계를 보인 지점에서 가치를 드러내는 류성희의 ‘철학적 타자’, 서미애의 ‘경계선’,정석화의 ‘알레고리’, 황세연의 ‘아이러니’, 정유정의 ‘호모 사케르’ 등등. 작품의 플롯을 지배하는 이 모든 핵심 키워드를 살펴보면서, 추리문학에 대한 통념이나 이 분야 종사자의 인식이 어떻든 백휴는 자신이 찾은 사유의 길을 따라 파고든다.

서양 철학이 ‘신은 죽었다’는 니체 선언 이전과 이후로 나뉘고 기존의 이데올로기가 무너지며 새로운 철학들이 태어나는 풍경 속에서 탄생한 추리소설. 그 기원을 탐색하면서 ‘추리소설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작업은 추리소설이 그러했던 것처럼 반전을 통해 독자가 갇혀있던 사유의 틀을 깬다. 백휴의 사유는 마지막으로 ‘본다는 것’과 ‘듣는다는 것’의 원초적 질문까지 이른다. 최인훈과 최인훈과 탐정 브라운 신부를 만든 체스터튼을 통해 서구의 시각적 사유와 한국 사회의 유교와 한글이 빚어낸 청각적 사유를 소위 변증법적으로 종합하고자 하는 지점까지 도달한다.
한 번 시작된 철학적 사유는 휴식을 모르기 때문에 ‘철학은 위험하다’는 니체의 말대로 일단 시작된 철학적인 질문들은 답이 찾아질 때까지 강박에 내몰리면서 끝없이 질문에 매달려온 인생, 평생 철학적 삶을 살아온 백휴 선생의 사유 인생이 담긴 책을 내놓는다.

“사유란 가장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것을 다루기에 흥미롭다. 철학에는 허용되지 않는 그 어떤 질문도 없다. 물음에 성역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설픈 타협이나 거짓 화해도 용납되지 않는다. ‘사유와 추리소설은 공히 위반의 문제’라는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생각이 옳아 보인다. ‘위반’이란 결국 ‘극단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추리소설과 사유에서 ‘극단極端’을 보았기에 나는 평생 철학하는 추리소설가가 되었는지 모른다.”_백휴


책속에서

책머리에
_나는 왜 추리소설로 철학을 해왔는가?


독일철학과 영미철학에 이어 1990년대는 프랑스 철학이 본격적으로 수입되던 시기였다. 그즈음 철학계를 떠나 추리작가로 살아가면서도 철학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내 눈에 들뢰즈가 들어왔다. 특히 《차이와 반복》에서 ‘철학은 부분적으로 추리소설적이어야 한다.’라는 구절을 읽은 뒤 나는 엄청난 충격과 함께 흥분을 느꼈다. 추리소설은 대중문학의 한 장르로서 ‘주변부 문학’, ‘잡문학’, ‘문학 같지 않은 시시한 문학’, ‘오락에 불과한 읽을거리’라는 우리 사회의 일반적 인식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문장처럼 읽혔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에 대한 세상의 폄하가 근거가 부족한, 반성 이전의 통념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라는 자각도 이때 생겨났다.
《장미의 이름》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움베르토 에코는 가장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본성을 갖는 추리소설의 플롯을 외면함으로써 이탈리아 문학이 형편없이 망가졌다고까지 말했다. ‘21세기는 추리소설의 시대’라는 진단을 에코와 공유한 사상가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비잔틴 살인사건》이라는 철학적 추리소설을 썼는데, 그녀는 프랑스 문학의 전통 속에서 사유와 추리소설은 공히 위반의 문제를 다룬다고 생각한다. 사유가 시시해지면 추리소설이 인기를 끌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는 들뢰즈나 에코 그리고 크리스테바의 생각이 우리 사회에 즉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의 명성에만 기댄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동시에 전혀 이론적 성찰 없이 추리소설을 오락으로 치부하는 사회통념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오락’과 ‘사유’ 사이에 소위 말하는 변증법적 종합이 필요했다.
나는 은사인 철학자 박동환에게서 우리의 철학은 서구나 중국과 다른 주변부 철학일 수밖에 없다는 소중한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다. 중심에서 주변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선 위나 밖인 주변부에서 중심을 다시 생각해보는 역발상의 사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반문학에 ‘순문학’이라는 정치적 프레임을 씌워 헤게모니를 장악하면서, 추리소설에 ‘주변부 문학’이라는 폄하의 딱지를 붙이는 비평가에게서 사상의 빈곤함을 느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다행히 내가 읽고 분석한 몇몇 국내외 추리작가의 작품들은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오락적 요건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철학적으로 두세 번 생각할 여지를 남겨둔 것이었다.
아쉬운 점은 그들이 아니라 나 자신의 허약한 재능이었다. 서구 사유 역사에서 세공된 철학 개념을 빌려 쓰지 않고서는 추리작가의 세계관이나 무의식적으로 숨겨놓은 핵심 키워드를 넉넉히 해명할 수 없었던 무능. ‘스스로 만든 조어를 통한 세상 보기’가 아닌 한 비평은 근원적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식의 확장이란 결국 그 사회의 구체적 맥락의 경험으로부터 생산한 신조어를 통해 사회현상을 달리 보는 시각을 조금씩 늘려가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만든 개념 틀이 없다고 해서 비평 작업을 마냥 미룰 수도 없었다. 어쨌든 출발해야만 했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세상의 변치 않을 통념으로 굳어진 ‘추리소설=오락소설’을 ‘철학함’의 시각으로 이해해 보는 것이 그 시작의 첫발이었던 셈이다.

‘추리문학은 오락이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오래도록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었던 생각으로 내 전 세대 가장 영향력이 있는 비평가 중의 한 사람이었던 백낙청 씨가 보란 듯이 적시함으로써 후학들이 새로운 생각을 해볼 여지의 싹을 자른 셈이었다. 다들 그의 막강한 권위와 영향력을 알고 있었으므로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추리문학은 오락’이라는 주장은 완전히 터무니없는 생각일까? 아니,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좋다고 소문난 추리소설을 한 권 한 권 찾아 읽을 때마다 나 또한 추리소설이 오락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낙담에 빠져들고 있었다.
문제는 독자의 입장이 아니라 추리소설을 쓰는 행위 자체였다. 그것이 오락을 제공하는 노동에 불과하다면, 추리작가로서 문학적 자긍심을 갖는 순간은 극히 제한된 범위 내에서 자족의 나르시시스트가 되는 것 말고는 없어 보였다. 추리작가는 자신이 쓴 개개의 작품 속에서 조각난 이미지로 흩어져버리는 존재인 것 같았다. 오로지 심심풀이 소비를 위한 대상으로 짧은 유행 속에서 잠시 반짝이고 말 허망한 존재이기에 시간의 무심한 흐름 속에, 또한 소비자의 개별적 판단 속에 맡겨두는 것이 올바른 태도인 것 같았다. 누가 쓰든 재미있는 추리소설은 앞으로도 계속 출간되겠지만,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을 품은 고유명固有名 추리작가가 머물 수 있는 상징적 문학 공간은 없어 보였다.
뭔가 전혀 다른 발상과 접근법이 필요했다. 개개의 작품은 오락에 불과한 것으로 느껴지더라도, 작가의 모든 작품을 통틀어 반복해 읽는다면 ‘오락’을 뛰어넘는 주제의 제시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 힌트를 영화에서 얻었다. B급 영화를 만들어오던 것으로 평가받던 존 포드 감독에 대해 ‘작가주의’로 접근한 프랑스 영화 비평가의 색다른 독해에서 아이디어를 빌린 것이었다.

-작가비평은 개개의 작품에 대해 개별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한 작가의 전체 작품 세계를 반복되는 스타일이나 주제적 패턴에 의해 비평적으로 검토한다.

이 방법을 당시 대표적 추리작가였던 김성종의 작품에 적용하자 반복되는 키워드인 ‘아기’가 드러났다. 특이하게도 이 아기는 흔히 다가올 미래나 새로운 세대의 역사를 가리키는 희망의 상징이 아니라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죽기에 충분히 늙어 있다.’는 사상을 숨긴 실존적 슬픔과 세대 단절의 상징했다. 그 반대급부로, 마치 그런 사상을 숨기려는 듯이 그의 추리소설에서는 살고자 하는 인간욕망을 과도하게 그려낸다.
내 입장에서는 《김성종 읽기》에서 추리문학 비평의 가능성을 확인한 셈이었는데, 그런 와중에서도 추리문학 동네의 풍토는 진전되기는커녕 퇴보의 기미마저 보였다. 어느 출판사 사장이 출간한 에세이에서 ‘한국 추리작가의 작품은 수준 이하이므로 추리소설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번역·출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취지의 글을 읽게 된 것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작품을 소비재로서만 파악하는 문화 테러리스트에 가까운 인식이었다.
추리문학에 대한 통념이나 이 분야 종사자의 인식이 어떻든 나는 내가 찾은 길을 천천히 걸어갔다. 김내성의 ‘탐이探異’, 서미애의 ‘경계선’, 김내성이 한계를 보인 지점에서 가치를 드러내는 류성희의 ‘철학적 타자’, 정석화의 ‘알레고리’, 황세연의 ‘아이러니’, 정유정의 ‘호모 사케르’ 등등. 작품의 플롯을 지배하는 이 모든 핵심 키워드를 살펴보면서, 우리 작가의 작품들을 ‘재미가 있고 없고’의 단순한 선택지로 판단할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서구 추리소설은 사유의 근거가 이항二項 세계관(신/피조물)에서 일항一項 세계관(피조물)으로 변해갈 때 생겨난 문화적 산물이다. 신과 자신이 창조한 ‘인간과 세계’의 관계가 작가와 작품의 관계로 전이·파악된다. 신이 자신의 창조물에 선행하듯이, 작가는 작품에 앞선 존재이다. 이항 세계관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작품 해석의 권위는 ‘작가의 창작 동기’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작가의 말과 권위는 신성불가침의 절대 영역을 구축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일항 세계란 작가가 사라지고 작품만이 존재하는 세계이므로, 무한 독자의 무한한 해석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게 된다. 그렇다면 작품 해석에는 각기 존중받아야 할 개인 권리로서의 해석만 있고 공동체의 가치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좋은’ ‘훌륭한’, ‘그래도 다른 사람의 해석보다 나은’ 해석은 없는 것일까? 이 문제를 가지고 추리소설로 씨름한 사람이 움베르토 에코다.
좀 더 학문적 용어를 쓴다면 추리소설은 ‘은유와 결합한 동일성의 서구 사유’가 해체되는 시기에 생겨난 소설 장르이다. 니체는 발 빠르게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애)’라는 개념을 통해 고통을 미학화·내면화함―신이 죽었으므로 인간의 고통은 더 이상 구원의 대상일 수 없다. 인간은 스스로 고통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으로써 일항 세계를 선언했다. 추리소설은 이항과 일항 사이에서 주저하고 망설인다. 수수께끼를 내고 ‘독자에게 도전’한다며 당당한 선언의 제스처를 취하지만, 그것이 원리상 무한 독자의 무한 해결책에 맞선 권위적 해결책을 갖고 있다는 주장인지, 이제 작가 또한, 독자와 같은 지평 위에서 하나의 의견을 제시할 뿐이라고 한 발 물러서는 태도를 취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이 후자의 생각을 극화한 것인 폴 오스터의 《뉴욕 삼부작》이다. 작가를 소설 속에 욱여넣음으로써 작가의 초월적(권위적) 지위를 박탈하는 것이다. 이 작품에 ‘형이상학적 추리소설’이라는 라벨을 붙이면 작품의 철학적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고, 정반대로 ‘반-추리소설’이라고 낙인을 찍으면 기존 추리소설의 영역과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보수적 몸부림이 된다. 어떤 의미에서 탐정이 항상 천재 탐정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더 나은’, ‘더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의견을 예고하기 위함이다. 라캉이 탐정을 ‘안다고 가정된 주체’라 부른 것은 에코를 괴롭혔던 고민의 연장선 위에서 이해될 수 있다.
추리소설이 메타(초월)를 가능케 한 은유(메타포)를 의심하는 정신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거기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서구 대중의 망설임이 표현돼 있다. 우리에겐―일본도 마찬가지지만―이런 역사적, 지적 맥락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추리소설을 쓰고 읽고 그 속에서 철학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는 한, 관념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인 한, 제대로 살기 위해 낡은 집을 버리거나 새 단장을 하듯이, 매 순간 삶의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사유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추리소설이 선험적으로 그런 탐구에서 배제된다는 생각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오히려 유교 사상이란 기본적으로 도덕적 사유이기에 범죄를 다루는 추리소설이 기존 사유를 전복하거나 적어도 보완하는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해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니체는 ‘철학은 위험하다.’고 했다. 한 번 시작된 철학적 사유는 휴식을 모르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이다. 일단 시작된 질문은 답이 찾아질 때까지 강박에 내몰리면서 질문에 끝없이 매달리게 된다. 그러나 끝내 답이 제시되는 행복한 만족의 순간은 찾아오지 않는다. 질문 자체가 사유의 전부일지 모른다. 다만, 사유는 그 초조함을 견딜 수 없는 나머지 차선책으로 만족의 대용품을 제시할 뿐이다.
사유란 극단적인 것이다. 그래서 사유는 낭만주의적인 성격을 띤다. 극단으로 몰아 붙여지지 않은 사유는 ‘관계’라는 우정 속에서 시시하게 해소되고 만다.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것이라 하여 지혜(wisdom)라고 이름 붙이기도 한다. 지혜란 삶의 지속성을 염두에 둔, 세대의 전승과 역사의 지평을 전제한 사유이다. 지혜란 언제나 ‘훌륭한 인간적 처신’이라는 양식과 맞물려 있을 수밖에 없다.
나에게 진정한 사유란 그런 것은 아니다. 사유란 가장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것을 다루기에 흥미롭다. 철학에는 허용되지 않는 그 어떤 질문도 없다. 물음에 성역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설픈 타협이나 거짓 화해도 용납되지 않는다.
추리소설은 살인 사건을 다룬다. 살인이란 인간의 극단적 행위에 속한다. 사유 또한 극단적 사색으로 점철돼 있다. 한가한 시간을 따로 불러내어 서재에서 머리를 굴려보는 따위가 아니다.
‘사유와 추리소설은 공히 위반의 문제’라는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생각이 옳아 보인다. ‘위반’이란 결국 ‘극단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추리소설과 사유에서 ‘극단極端’을 보았기에 나는 평생 철학하는 추리소설가가 되었는지 모른다.

차례

책머리에_나는 왜 추리소설로 철학을 해왔는가

1. 진리란 표면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에드거 앨런 포와 보르헤스

2. 삶은 가면놀이다
애거사 크리스티와 니체

3. 생존감각을 확보하는 법
레이먼드 챈들러와 사르트르

4. 악인이란 가장 사회적인 인간이다
추리소설가가 된 철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

5. 탐정은 기호학자다
움베르토 에코가 앓는 형이상학적 질병

6. 미로 속에서는 자신이 어디 있는지 중요하지 않다
형이상학적 추리소설, 폴 오스터의 《뉴욕 삼부작》

7. 예리한 눈빛과 따뜻한 미소의 병립 구조
히가시노 게이고와 마루야마 마사오

8. 철학적 타자를 탐구하는 정치 공간
류성희와 한나 아렌트

9. 초자아는 숭고의 탄생지다
서미애와 칸트

10. 변증법을 이해하는 자의 유머감각
황세연과 슬라보예 지젝

11. 이야기는 호모 사케르의 생존 도구다
정유정과 조르조 아감벤

12. 추리소설은 은유를 의심하는 정신이다
추리소설의 예술적 은유 관념

13. 본다는 것과 듣는다는 것
최인훈과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

14. 나는 아이러니스트의 편에 가담하겠다
추리소설은 무엇인가

에필로그_우리 사회는 변항 감각을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는가

인용된 주요 철학자 및 사상가


지은이 소개

지은이 | 백휴
추리소설가이자 추리문학 평론가. 서강대 철학과와 연세대 철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낙원의 저쪽》으로 ‘한국추리문학상’ 신예상, 《사이버 킹》으로 ‘한국추리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추리소설 평론서 《김성종 읽기》와 〈추리소설은 무엇이었나〉, 〈핍진성 최인훈 브라운 신부〉, 〈레이먼드 챈들러, 검은 미니멀리스트〉 등 다수의 추리문학 에세이를 발표했다. 2020년 철학 에세이 《가마우지 도서관 옆 카페 의자》를 펴냈다.

도서 정보



도서명: <추리소설로 철학하기>

분류: 인문>교양 철학
판형: 132*210mm, 무선제본
쪽수: 450쪽 내외
출간 예정일: 2024년 1월 31일
정가: 27,000원
펴낸 곳: 나비클럽

* 표지 및 상세 제작 사양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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