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근처의 근처로 얼쩡거렸다.
거기에는 철 따라 파랑 달개비꽃이 피었고
눈설레가 쳤다.
눈물과 그리움의 안개 자욱했다.
그늘 속 근처들은 자주 가득 차 있거나 텅 비어 있는 것인데
그들은 잠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무슨 신호를 날려 보내고 있었다.
낡고 상한 나를 데리고 가만히 근처의 근처로 선다.
열 권의 재미없는 시집을 내면서
늘 푸르게 깨어있는 그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했다.
노을 젖은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나를 데리고
다시 나의 수많은 근처의 근처로 선다.
자꾸 뒤돌아봐야 할 것들 따라오고 있다.
2023년 9월 시향채에서
갇힌 몸이 다시 갇혔다.
햇살의 통로가 보이지 않는다.
차갑고 날카로운 불꽃이
하얗게 봉해진 입을 숨긴 사람들 사이로
붕붕 떠다니고 있다.
제비산길 언덕을 내려온 지 두어 해가 지났다
아직도 그리운 바다에 가 닿지 못하고
낡은 골목 안에 얼쩡이고 있다.
갇힘과 풀림 그 분탕스런 무질서의 틈새로
청계淸溪,
푸른 바람 소리 물소리 번지는 아침
무거운 그늘을 씻고
유목의 언어들을 꿰어 다시 매듭을 묶는다.
저만치 소리 없이
목련 기차
또 오고 있다.
2020년 초가을
시향채에서
매일 새벽 푸른 물자락을 젖히며
얕은 내 숲을 열러 오신다 아버지
그가 낳은 알이 숲의 가장자리에
바닷가 부족들과 함께 살아있기 때문이다
많은 날들을
바다 뒤에 숨어 중얼거리고 웅성거리느라
고 푸르고 맑은 것들과 눈 맞추지 못했다 나는
다시 숲을 일으켜 세우고 물가에 내려선다
등 푸른 고등어로 살다 가신 아버지께
이 시집을 바친다
2013년 여름, 설머리에서
하얀 마스크를 쓴 나무
아픈 나무들 즐비하다
나도 여러 번 찔리고
몇 번을 갇혔다
길은 보이질 않고
아픈 나무에서 아픈 나무들 본다
길을 끊어버린
푸른 벼랑 위 메테오라 수도원
늙은 수사修士의 저녁기도 소리 내려오는 서쪽으로
소리를 잃어버린 귀를 세운다
가만히
고요하다
2022년 가을 시향채에서
몇 해 전 가을
그늘이 깊었다
해마다 파던 가을 구덩이를 팔 수 없었다
그늘의 그늘을 뒤집어쓰고 웅크렸다
소소리바람 따라 청계 봄빛이 오고
여우비 따라 도라지꽃이 피었다 환했다
붉은 개미들이 접힌 길을 내밀었다
팍팍하고 먼 길 보인다
이제 낡은 식권들을 제비산길 숲정에 묻고
유목의 언어들을 몰고
그리운 바다로 가고자 한다
가만히 일렁이며
잠들지 않으려 한다
2017년 가을
영일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