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는 실상 '자본권력의 세계화'였다. 물신과 탐욕의 세계화는 국경과 자급자립의 삶터를 지우고 세계를 '평평히' 점령해나가고 있었다. 시인이자 노동자이자 혁명가로 온몸을 던져 살아온 나는, 슬프게도, 길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정직한 절망은 희망의 시작이었다.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중남미... 오랜 식민지배와 수탈의 상처 위에 다시 세계화의 모순이 내리꽂힌 인류의 가장 아픈 자리, 그곳에서 오래된 희망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인류에게 꼭 필요한 생산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정직한 땀방울로 자급자립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물질적 결핍이라는 한계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삶을 꽃피우는 사람들. 67억 인류가 나처럼 살아간다면 인류는 당장에 좋아질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은 어느 순간 잃어버린 나 자신의 모습이자, 마지막 남은 희망의 종자와도 같은 '최후의 영토'에 살아 숨쉬고 있는 '최초의사람'들이기에, 나는 경외의 마음을 바칠 뿐이다. 혁명이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본성대로 돌려 놓는 것이고 참모습을 되찾는 것이니. 그곳에서는 그들처럼, 나 거기에 그들처럼. 내 아름다운 것들은 다 제자리에 있다. - '작가의 글- 내 아름다운 것들은 다 제자리에 있다' 중에서
광화문에는 장맛비가 쏟아지고, 레바논에는 폭탄비가 퍼부어지는데, 나는 기껏 ‘레바논 살리기’ 시를 쓰고 1인 시위에 나서는 일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레바논으로 달려가려 해도 전쟁 중인지라 그 많던 아랍어 통역자 한 명 구할 수 없었고, 우리 대통령과 국회와 정부는 침묵 동조로 일관했고, 어떤 고위 기관의 음해와 방해만이 무섭게 느껴졌다. 분명 이번 레바논은 우리들 ‘인간성의 거울’이었다. 인류의 눈앞에서 벌어진 이 불의한 침공과 학살 앞에서 어떤 반응과 태도를 보이는가에 따라 지구사회를 살고 있는 나와 너의 인간성이 숨김없이 비춰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