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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김연정

최근작
2022년 11월 <서랍 속 수수밭>

겨울정원

단편소설 일곱 편을 모아놓고 보니 첫 책의 소설들과는 조금의 다름이 있음이 느껴졌다. 그동안 시간이 혼자 간 것은 아닌지 내 소설 속 인물들도 그새 모두 나이를 먹었다. 그래서 그럴까, 속울음처럼 울컥 울컥 삼켜야 했던 격정과 격앙이 슬며시 사그라졌고 그 자리에는 담담함이 자리 잡았다. 또한 현란한 수사도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담백한 문장이 들어찼다. 그것이 좋은 의미의 변화인지 어떤지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읽는 사람들이 판단해 주지 않을까 싶다. 세상으로 나간 책에 대한 평가는 이미 작가의 몫이 아니므로.

서랍 속 수수밭

기술이 아니라 기억으로 쓴 흑백 앨범 같은 글을 뒤적여줄 이가 있을지, 흑백 앨범 속 여기저기에 숨어 있는 빛바랜 찬란함을 찾아내줄 누군가가 있을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단기 4291년에 서울에 올라온 한 아이와 아이가 만난 친구들, 그리고 그 아버지들이 살아낸 시간, 이별 후에 남겨진 노래들을 읽으며 소소(炤炤)한 미소를 짓는 독자가 있기를 기원해봅니다.

선글라스를 벗으세요

오랫동안 내 머리를 채운, 토할 수밖에 없었던 말들은 무엇이었을까. 그 동안 써놓은 글들을 한데 모아놓고 보니 비로소 그것의 정체를 알겠다. 죽어서도 죽지 않는 망자들과 그들 죽은 이에게 휘둘리며 숨 죽여 사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의 소리였음을. 그리고 늦은 나이의 나를 소설 속으로 떠민 것은 바로 그 분노에 찬 속말이었음을. 산 자와 죽은 자를 화해시키고 싶어서였을까, 나는 열심히 소설속으로 그들을 끌어들였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소설 밖에서도 화해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들을 만나게 함으로써 나의 말들을 모두 토해냈으니, 내 일은 거기까지가 아닐까 한다.

오후의 뒤뜰

그런 어느 날 이야기 하나가 나를 찾아왔다. 파블로 네루다에게 시가 찾아왔듯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모르게 네루다에게 시가 찾아왔듯이, 내게도 불현듯 이야기가 찾아왔다. 언 땅을 치고 달아나는 찬바람에 눈을 감았을 때였는지, 죽은 서어나무 밑을 지날 때였는지 모르겠는데, 산이 자그맣게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걸음을 멈추고 들으니 그건 어떤 아릿한 이야기의 서두였다. 산이 내게 주는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내 산을 지켜준 내게. 산의 속삭임은 매일 계속되었다. 속삭임은 아주 작아서 온 마음을 모아 듣지 않으면 들을 수 없었다. 산의 이야기를 들으러 나는 매일 산에 올랐다. 한 발 한 발 발자국을 찍으며 이야기를 마음속에 차곡차곡 받아 두었다가 집에 내려와 컴퓨터에 옮겼다. 잊힐 만한 문장은 햇살 받는 벤치에 앉아 메모를 했다. 산이 말하고 내가 받아 적는 작업이 이른 봄까지 계속되었다. 무엇에 들린 듯 받아 적은 이야기는 소설 한 편이 되었다. 신기하고 황홀한 글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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