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탈을 쓴 노인은 거짓부렁이다. 소설은 기록을 바탕으로 쓰이지 않았다. 대원수가 구주에 언제부터 머물렀는지도 알 수 없다. 모름지기 신은현까지 내려간 거란 10만을 구주벌로 끌어오기까지 지휘부가 있던 영주(안북부)에서 정신없이 병력을 내려보냈을 것이 다. 실제로 대첩 직전인 신사일에 연주와 위주를 급습해서 거란을 위협했다. 김종현이 구주벌에 나타나기까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에 관한 기록도 없다. 북계라는 척박한 국경 지역에 유행한다던 신神도 거짓이다. 이야기를 논문처럼 여기지 말아주시길 부탁드린다. 이것은 명백한 거짓부렁이다. 다만, 나는 동굴에 들어가 홀로 웃는다. 이 서사가 사실이라고 믿는다. 끊기고 정렬되지 못한 기록의 공간이 넓고 거짓이 아니라는 증거도 없기에. 그래야 내 상상이 빛을 발할 것이기에.
서툰 이야기일까요? 한국삼육중학교의 20명의 학생이 만든 세계는 여러분이 보시기에 떫고 여물지 않아 보일지 모릅니다. 하나 우리가 그간 완전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과연 가치 있는 것들일까요? 기성작가가 된 저로서는 이 글들을 읽고 펑펑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찌 이런 생각들을 했을까? 나는 언제부터 저런 상상력을 잃어버린 것일까? 마치 앨리스가 다녀온 나라에 갔다 온 기분이었달까요.
어린 인간의 미래는 무궁무진하다지만 인간은 살수록 잃어버리는 것이 많습니다. 저 상상력들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학생들의 생각이 나중에 살이 붙어 큰 덩어리로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만 우리는 지금 그걸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지금, 존재하는 저들의 상상을 보고, 느끼고, 감동해야 합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오롯한 모습을 상상력이란 재료를 사용해서 우리를 각성하게 하니까요. 어쩌면 신이 어른들의 삭막함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 이 작품들을 내려보냈다면 너무 과한 말일까요?
이야기들은 친구와의 우정, 우주의 상상, 이세계(異世界)의 자유, 동화, 우화 등 결혼식 뷔페같이 다양합니다. 그것들이 그 나이 친구들에게 자연스러운 생각일지 모른다고 여기지 마세요. 그것보다는 조금 더 가치 있는 작품들입니다. 작품 하나하나는 하늘 아래 처음 있는, 새롭기 그지없는 상상들입니다. 이야기 구조가 다소 어설퍼도, 이야기 끝이 아물지 않아도 이 이야기들은 존재하는 것 자체로 소중합니다. 다빈치나 미켈란젤로의 작품만이 인류의 유산은 아닙니다. 존재하는 유일하고 새로운 것, 그러니까 이 친구들의 전혀 다른 이야기 또한 존재하는 유산입니다.
너무 멋진 이야기를 만든 삼육중학교 친구들에게 감사합니다. 이 20명의 친구들이 자라서 어떤 생각을 할지는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 이 작품을 만들 때 했던 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글을 쓰시기 바랍니다. 좋은 글을 읽게 해주어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