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치유해준 광릉숲께 바친다.
광릉숲을 해설하시는 해설사님들과
광릉숲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친다.
더불어 마음이 지친 모든 이들에게도 바친다.
이 『광릉숲 단상』은 해설사님들의 숲 해설을 듣고
간략하게 단상으로 묶었음을 알린다.
수많은 언어공해가 잔소리처럼 느껴져서
사족들은 다 자르고 중심만 담았다.
그러므로 독자여,
부족하고 어설퍼도 이점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끝으로 광릉과 광릉숲을 지키시는 모든 분들과
광릉숲 해설사 정길호 선생님과
광릉 문화해설사 김진순 선생님께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광릉숲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을 나름, 숨 가쁘게 엮어왔다.
지금까지 펴낸 책들은 픽션이나 허구보다는 내가 살아낸 세상을 어설픈 실력으로 활자라는 카메라로 찍어 증언했다.
세상이 광활하게 크고 넓은 줄 알면서도, 스스로 자청하여 그 우물 안에서만 살기를 고집한 나는 미련퉁이다.
나는 어쩌면 미련하나, 뚝심 있는 한 마리 청개구리인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세인들의 관심 따윈 버린 지 오래다.
또 받을 만한 위인도 못되기도 해서, 스스로 사심을 버린 지 아주 오래되었다.
다만, 나는 나의 주인이며, 나만의 주인공이므로 스스로 채색해서 입을 수 있는 옷을 고집스럽게 만들어 입었다.
삶의 희로애락을 기꺼이 액받이 무녀처럼 받아먹으며, 고통스러움이 훨씬 많은 그 삶을 도망치거나 외면하지도 않았다.
자기 자신은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고 앉아서 남의 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사람들과는 다른 인간이 되기 위해 목숨을 다하여 노력했음을 자부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 스스로에게 당당하다.
이번 책은 어른이 읽는 동화 『업이 언니』라는 제목을 달았다.
내 유년의 기억을 거의 그대로 조명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세상 밖으로 오픈하는데, 어찌 쉽게 다룰 수 있겠는가!
그래서 기억의 기억 속을 정중하고 치열하게 뒤졌다.
한스럽게 살다간 그녀의 대변인처럼, 변호인처럼, 사관을 쓰던 사람처럼 한 사람의 인생에 기꺼이 개입해서 글로 남긴다.
내 뜻이 제발 훼손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 업이 언니는 아주 오래 전에 저 세상으로 갔다.
자기 죽음의 시간을 알기라도 하듯 내 어머니만 보면 붙들고 내가 보고 싶다고 했다 한다.
왜 고향에 한 번도 오지 않느냐면서, 불쌍한 자기를 한 번도 보러오지 않는 비정한 가시내라고, 차갑고 매정한 가시내라며 눈물을 흘렸다 한다.
돌아보면, 몸서리나는 유년, 그 지옥 속에서도 우리 둘은 그 처절한 시간을 서로 위로하며, 살았었다.
고향은 있으나, 그 고향을 스스로 버려버린 나와는 다르게 그 고향에 질기게 묶여 불의 밥이 된 그 불쌍한 언니.
너무 많이 늦어버리긴 했어도, 아날로그 시대를 벗어나, 디지털 시대를 넘어, 초시대에서 살고 있지만, 나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서 이 아날로그 행위를 통해 업이 언니를 불러오려 한다.
연어가 바다를 버리고 자기가 태어난 강으로 거슬러 올라가듯, 나도 과거를 현재진행형으로 역순해서 기꺼이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했다.
내가 이렇게 뒤늦게라도 책을 펴내는 것은 불행하게 살다간 언니를 위한 내 방식의 추모식이며, 저승에서나마 잘 살기를 바라는 내 마지막 염원임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