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 의 시집을 다시 꺼내 읽었다. 연필로 밑줄을 그어놓은 부분들을 읽는데 아득한 세월 전에 모든 것이 종결되었다는 구절이 눈에 들어와 박힌다. 열정은 허상이고 집착도 속절없다는 그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도 오래된 습관은 버려지지가 않는가보다. 새벽이 오기 전에는 좀처럼 잠들지 못해서 심야영화를 즐겨본다. 어느 날 터미네이터를 보는데 'salvation'이 무슨 뜻인지 몰라 집에 와서 사전을 뒤져봤다. 구원이란다. 영어는 못하지만 단어를 찾고 의미를 알아가는 일은 즐겁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에서부터 기억이 가물가물한 영화들까지 다시 보면서 경건함을 느꼈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은 내게 어떤 의미였을까? 홀든 콜필드의 고백처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건, 그 영화들과 함께 했던 날들의 사람들이 보고 싶다는 거다. - 작가의 말 중에서
“그게 사는 길이지. 꿈을 추구하고, 다시 꿈을 추구하고, 그런 식으로 영원히, 끝까지.”
- 『로드 짐Lord Jim』, 조지프 콘래드(Joseph Conrad)
무일푼이더라도 거센 파도를 두려워하지 말고 꿈을 추구하면서 자신의 진짜 삶을 묵묵히 걸어가라는 말을 아들에게 해주고 싶다. 그리고 세상에 내세울 만한 것 하나 없어도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다 보면 어느새 운명이 정한 목적지에 도달해 있을 것이고, 그 길에 변함없는 친구가 있다면 그게 바로 책이라는 것을 알아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이 초라한 책을 사랑하는 아들에게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