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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로이드 라슨 (Lloyd La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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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주 사랑으로 오셨네>

갈보리의 사랑

갈보리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을 통해 얼마나 이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시는 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갈보리의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얼마나 멀리 오셨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는 말씀 구절을 기억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희생과 승리의 이야기가 수 없이 전해내려 왔듯 그리스도의 사랑은 수 세기 동안 수 백만의 사람들에게 전파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사건은 우리 믿음의 초석입니다. 이것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도, 구세주에 대한 믿음의 기초도, 영원한 삶에 대한 약속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자신의 삶을 기꺼이 희생하시고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신 부활의 사건은 우리로 하여금 소망의 사람으로 살 수 있게 해줍니다. 그가 갈보리에서 치르신 희생의 대가로 우리에게 삶과 사랑의 선물이 주어졌습니다. 이 칸타타를 통하여 주님의 십자가를 돌아볼 때 여러분과 찬양대, 그리고 여러분의 교회와 지역사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희생과 사랑의 영원한 메시지로 새롭게 되고 힘을 얻기를 기도합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한복음 15장 13절)” - Lloyd Larson and Jay Rouse -

기쁘다 구주 오셨네!

성탄의 메시지는 깊고도 현존하는 기쁨입니다. 그 메시지는 어렵게만 보이는 여정 속에서도 확신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우리에게 닥친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인들, 밤이 아무리 길고 어두울지라도, 기쁨은 결국 찾아올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 30:5하)’ 우리는 끈기 있는 해결보다는 단 시간의 약속과 신속한 처리가 우선시되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경험 속에 우리 자신을 투자하여 길을 모색해야하며 남은 이들은 그 길을 통하여 앞으로 다가올 세대에는 뭔가 달라지도록 변화시켜할 것입니다. 찰나의 감각적 즐거움과 오래 지속되는 기쁨에는 지대한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깊고도 영원한 즐거움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가 일시적인 것들로 채우려 하는 우리 삶의 공허함을 진정으로 채울 수 있는 기쁨입니다. 천사는 유대 언덕에서 밤을 지키고 있는 순진한 목동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 2:10)’ 이 메시지에서는 일시적인 느낌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태어나셨으니 세상은 이제 더 이상 이전과 같을 수 없습니다. 또한 목동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큰 기쁨의 놀라운 이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소식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 부친께서는 제게 이렇게 말씀하곤 하셨습니다. “...특권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란다.” 예수님께서도 아주 비슷한 설명을 하셨습니다. ‘무릇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8하)’ 이 놀라운 소식을 받은 우리는 특권과 더불어 그것을 나눠야 할 책임도 지지고 있습니다. 즉 그것을 외쳐 송축해야 합니다. 그것을 노래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성탄 칸타타의 존재 이유입니다. 기쁜 성탄의 메시지를 나누고 축하하고 노래하도록 돕는 도구로써 구상된 것입니다. 이 성탄 작품을 듣는 이들이 하나님이 인간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강렬한 사건의 기쁨을, 우리의 세상을 영원히 변화시켰던 방식으로 다시금 경험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세상이 어두우나, 당신의 빛은 어둠을 이겼도다. 우리는 떠돌고 방황했으나, 당신 사랑은 변함없도다. 우리는 갈 길을 잃었으나, 당신은 한 길을 내셨도다. 우리 두렴이 크다 하나, 당신 기쁨은 더욱 크셔라. 기쁘다 구주 오셨네! - 작곡가 로이드 라르손(Lloyd Larson)

더 큰 사랑이 없나니 (SAB)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한 15:13)” 이 성경 구절은 늘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예수님이 그 따르는 이들과 또한 우리들을 위해 보여주신, 희생에 대한 분명하고도 간결한 요약입니다. 섬김과 사랑의 삶을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멸시받고 버림받고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의 잔혹한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내어주신 그분의 한량없는 은혜를 반영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실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우리 세상에서도 사랑은 지대한 주제입니다. 음악부터 영화에 이르기까지, TV부터 싱크탱크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태의 미디어를 통해 표출되는 주제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갈망합니다. 또한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개인적 수준에서 사랑을 평가합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어떤 형식으로든 경험한 사랑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사랑을 정의내리고, 받아들이고, 우리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이들에게 그것을 적절히 전달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의미에 대해 전연 새로운 차원을 도입하셨습니다. ‘이기적(selfish)’ 사랑이 일반적이었던 세상에서, 예수님은 ‘사심 없는(selfless)’ 사랑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주님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은 채 자신을 전적으로 내어주셨습니다. 이러한 사랑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우리는 조약한 단어들로 그 사랑을 설명하고 묘사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심 없는 사랑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의 행동을 통해서 입증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나 제가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해야 하는 일이 전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매일 우리의 취향, 편리함, 시간, 자원을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기회를 접하며 사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부지불식간에, 완전한 사랑의 삶을 사신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다짐한 이들에 의해 제시된 위대한 가르침 중 하나로 제게 다가옵니다. 사랑의 전달자가 되어야 하는 도전을 예수님께 받지 않고서, 십자가와 결국 텅 빈 무덤을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이는 마치 목마른 자에게 냉수 한 잔을 건네는 것, 혹은 타인을 재난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우리 모든 것을 희생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사랑이란 일상의 크고 작은 행동들을 통해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 13:34)”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작곡자 Lloyd Larson

베들레헴으로 가는길 (SAB)

베들레헴은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할 메시아가 탄생할 곳처럼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베들레헴이라고? 그 누가, 심지어 우주의 창조주이신 분이 왜 그렇게 작고 멀리 떨어진 고을을 택하셨을까?’ 그곳에서 좋은 것이 나온 적이 없었습니다. 이 평범한 마을에는 뭔가 특별하고 매력적인 요소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대로,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그 길을 떠났습니다. 목자들과 동방박사들도 떠났습니다. 지금 우리도 이 여정에 초대받았습니다. 누워있는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영원한 소망이신 분을 새롭고도 놀라운 방법으로 경험하도록… 이사야 선지자는 이미 약속된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이사야 40장 3절 여러분들이 이 작품을 노래하고 연주하면서, 하나님께서는 베들레헴과 같은 아주 작은 마을을 택하시어 영광스런 이야기의 완결점으로 만드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주 일반적인 목자들과 별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택하셔서 인류역사에 가장 극적인 이야기의 주연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의 삶도 이렇게 바꾸시어 영생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처럼 작은 마을로 향하는 모랫길 뿐만 아니라 그 길의 끝에 있는 그 마을에 작은 마구간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 때문에… 자, 이제 한 번 더 이 여정을 떠나볼까요? 기쁨과 사랑의 메시지를 가득 안고서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다시 한번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누가복음 2장 11절 - 서문

영광의 새 아침! SATB

서문 최근 저의 버킷리스트였던 이스라엘 성지순례 여행을 몇 달간 다녀왔습니다. 그 평생에 잊지 못할 여행을 마치고 이번 크리스마스 뮤지컬을 준비하였습니다. 음악을 만들고 각본을 짜는 내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과 유대 목자들이 천사들에게 메시아의 탄생을 전해 들은 베들레헴의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생애는 전혀 진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높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 위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거하신 사실은 모든 믿는 자에게 그렇듯이 저에게도 매번 놀라운 은혜와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그 기적의 사건은 최근 이스라엘 방문과 더불어 제 마음에 지울 수 없는 각인으로 남아있습니다. '영광의 새 아침!'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의 이스라엘은 여러 세대에 걸쳐 약속된 메시아를 갈망하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그들이 상상했던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펼치실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선지자들의 예언에 따라 성령으로 잉태되시어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새로운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구원의 약속이 성취되었고 우리에게 희망과 영생의 새날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새날의 약속은 예수의 삶과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승리하신 왕의 재림을 기대하는 우리에게 세대를 이어 계속됩니다. 그날에 그는 영원한 빛의 근원이 되시는 주 여호와 하나님의 집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번 칸타타의 새롭고 친숙한 가사와 언제 들어도 은혜로운 멜로디로 찬양대원과 오케스트라대원, 그리고 신자들 모두가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 번 경험하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단지 고고학적으로 발견된 이스라엘의 역사적 사건이 아닙니다. 창조주의 사랑을 실제로 체험하는 사건이며 영생과 구원의 약속이 성취된 것입니다.

예수의 수난과 부활

저는 성경 전체에 나타난 ‘어린 양’이 갖는 상징성과 중요성에 대해 항상 감동하곤 합니다. 구약 시 대 희생 제물로서의 양으로부터 유월절 어린 양, 그리고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 이라고 말하기까지 이는 성경 서사 전체를 통하여 자주 등장하는 주제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가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이’라고 예언(이사야 53장 7절)하였 으며, 우리는 사도 요한이 바라본 천국의 비전을 통해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 가 함께 모여 주되신 예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미리 보았습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 도다!’ (요한계시록 5장 12절)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의 믿음에 있어 가장 중요한 주춧돌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의 믿음의 기초 또한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부분이 장밋빛의 아름다운 그림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거절과 부인, 거짓 비방, 사형 선고, 십자가 처형 등의 모든 사 건은 모두 하나님의 큰 계획 가운데 포용된, (인간으로서는) 매우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두는 대속 제물 되셨지만 마침내 다시 사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시는 예수님을 우리 가 증거함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요소입니다. 이 <예수의 수난과 부> 칸타타는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삶 중 마지막 며칠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종려 주일에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순간부터 십자가의 처형에 이르는 고통스 러웠던 그 시간들, 그리고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에서 돌이 옮겨져 있는 것을 목격하고 부활을 확 신한 그 순간까지... 이 모든 과정은 우리의 믿음의 여정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결말입니다. 이 곡들을 연주하면서 여러분 각자의 마음 가운데 이 거룩한 대속 제물,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그 삶을 내어주러 오신 예수님을 깊이 새기기를 바랍니다.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어 여러분과 제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어린 양을 찬양하는 영원한 찬송에 동참하기를 기다리시는 그 예수님을... - 서문

오 크신 사랑

‘사랑’이라는 단어는 이 세상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입에 오르내립니다.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에 대해 사랑을 표출하기는 매우 쉽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에 대한 행동이 전혀 없다면 그 표현의 가치도 퇴색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대상인 우리 사람들을 사랑했노라고 여러 방식으로 말씀하였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그가 접한 사람들을 구속하고, 가르치고, 치유하고 위로하는 행동을 통하여 강조되었습니다. 주님을 진실로 아는 이라면 결코 이것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궁극적인 사랑의 행위로써 자신의 생명까지 희생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 중에는 장차 일을 슬며시 암시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요 15:13).”주님을 따르는 이들조차도 당시에는 그의 죽음에 대한 의미를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으나, 부활 이후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목격하면서 주님의 희생을 곧바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죽음으로부터 예수님을 살리신 하나님 사랑의 능력은 이천 년 전에 그 가까운 추종자들과 그 사랑을 경험한 모두를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난 오늘까지도 우리 삶을 지속적으로 감싸고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본 칸타타의 메시지는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의 상징인 십자가의 험난한 여정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의 능력과 승리의 상징인 텅 빈 무덤까지 인도합니다. 여러분이 이 칸타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주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드리신 다음의 기도를 통해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회상하시길 바랍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은 이 사람들(제자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요 17:20)” 아무쪼록 이 칸타타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더 깊이 이해하는데 사용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작품을 통해 존경받는 작곡 동료들과 함께 작업을 하게 되어 내내 즐거웠습니다. 이들 각자가 빼어난 음악인들이며그와 동시에 신앙심이 깊은 분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자질이 동시에 조합될 때, 이처럼 좋은 결과가 나오는것 같습니다. 우리는 함께 이 성가집을 만들어내었고, 이를 통해 여러분 성가대와 회중에게 사순절과 고난 주간 예배의감격을 더해 주리라 확신합니다. - 서문

존귀하신 주의 어린 양!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민족은 400여 년간 애굽의 지배 아래에서 고통과 가난을 견뎌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희망과 자유의 약속된 땅으로 인도할 지도자 모세를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으로부터 구원받기 전에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유월절 음식을 나눠야 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거부한 애굽에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후로 수백 년이 흐른 뒤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모아 선조들이 겪었던 유월절의 경험과 그 놀라운 기적에 관하여 말씀을 나누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 거룩 한 밤에 제자들은 그 옛날의 놀라운 일이 어찌 된 셈인지 불과 얼마 뒤에 실제로 현실로 벌어지는 일의 목격자들이 될 것이란 사실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바로 예수께서 유월절 어린 양이 되어 제물로 희생된다는 사실을! ‘존귀하신 어린 양!’은 죄와 죽음의 속박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계획에 관한 놀랍고도 강력한 이야기입니다. 또한 이 칸타타는 죄 없으신 예수님이 세상의 죄악과 어두움을 대신 지신 희생제물 어린 양이 되심으로서 우리가 언젠가 눈물과 고통이 없는 영원 생명의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음을 다시 한 번 깨우치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53장 4~5절의 예언의 말씀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는 자들은 천국의 주인이 되어 영원한 찬송을 부 르게 될 것입니다.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여라.” (계 5:12) 실로 죽임 당하신 어린 양 예수님은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죽임 당하신 존귀하신 어린 양이시여! - 서문

존귀하신 주의 어린 양!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민족은 400여 년간 애굽의 지배 아래에서 고통과 가난을 견뎌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희망과 자유의 약속된 땅으로 인도할 지도자 모세를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으로부터 구원받기 전에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유월절 음식을 나눠야 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거부한 애굽에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후로 수백 년이 흐른 뒤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모아 선조들이 겪었던 유월절의 경험과 그 놀라운 기적에 관하여 말씀을 나누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 거룩 한 밤에 제자들은 그 옛날의 놀라운 일이 어찌 된 셈인지 불과 얼마 뒤에 실제로 현실로 벌어지는 일의 목격자들이 될 것이란 사실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바로 예수께서 유월절 어린 양이 되어 제물로 희생된다는 사실을! ‘존귀하신 어린 양!’은 죄와 죽음의 속박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계획에 관한 놀랍고도 강력한 이야기입니다. 또한 이 칸타타는 죄 없으신 예수님이 세상의 죄악과 어두움을 대신 지신 희생제물 어린 양이 되심으로서 우리가 언젠가 눈물과 고통이 없는 영원 생명의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음을 다시 한 번 깨우치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53장 4~5절의 예언의 말씀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는 자들은 천국의 주인이 되어 영원한 찬송을 부르게 될 것입니다.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여라.” (계 5:12) 실로 죽임 당하신 어린 양 예수님은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죽임 당하신 존귀하신 어린 양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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