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연구자의 길을 걸어온 세월이 이십년이고,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중국사를 가르쳐온 시간이 십삼년이다. 막연하게 마흔 살이 되면 책 하나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었다. 그러다가 책 한 권 쓰지 못한 채 마흔 살이 넘어버렸다. 2011년 5월 1일에 한국연구재단의 저술지원 사업의 지원으로 “견제받는 권력-만주인 청나라의 정치구조, 1616~1912”라는 과제를 시작하였다. 이미 과제지원 기간은 끝났고, 2016년 4월 30일이 성과제출 마감이다. 이제 시간에 쫓겨서 책을 마무리하였다.
학술지에 발표하는 논문과 세상에 내놓는 책은 각각 주말드라마와 영화에 비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서 만들어지고, 영화는 상대적으로 그런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 논문은 시간과 지면의 제약 속에서 세밀한 주제를 다루고, 책은 상대적으로 그런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게 큰 주제를 다룬다. 영화가 드라마보다 더 폭넓은 주제를 다룰 수 있는 것처럼, 책도 논문보다 더 폭넓은 주제를 다룰 수 있다. 영화와 책이 드라마나 논문보다 자신의 관심사가 무엇이고 어떤 색깔을 가지고 있는지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틀이다.
책이 내 자신의 관심사와 색깔을 잘 드러낼 수 있는 틀인데, 첫 작업에서 그 틀을 온전히 활용하지 못하고 말았다. 초등학교 문을 들어선 이후 지금까지도 줄곧 방학이 끝날 때가 되면 후회하였다. 겨울방학 말미에 이 책을 내면서 일을 더 잘 준비하고 진행했어야 했다고 후회한다. 다음에는 잘 좀 해보자고 다짐한다.
과제가 진행되는 동안 학교를 옮겼고, 대학 입학 이후 떠났던 광주로 돌아왔다. 내가 자란 곳인데 모르는 것들이 많았다. 학창시절, 내가 집과 학교를 오갈 때 그 밖의 공간은 어떤 곳이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몰랐던 것이다. 이제 제대로 광주시민이 될 때이다.
지난 날 성신여대의 등나무 밑에서 담소를 나누던 교수들과 사학과 학생들은 내게 큰 힘이 되었고, 광주시민으로서 교육하고 연구하는데 가족, 역사교육과 학생, 동료들은 내게 힘이 되고 있다. 감사드린다.
전남대학교 사범대 3호관 116호에서
2016년 2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