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읽는 희곡(lesedrama)'의 모습을 한 소설이다. 정치적 현실이 정통적 사실주의로 다루기엔 너무 사악하거나 위협적일 때, 현실을 총체적으로 그리기를 열망하는 작가는 비정통적 방식을 고르도록 몰린다.
그런 뜻에서 이 작품은 졸작 <목성잠언집(木星箴言集)>과 시공(時空)만이 아니라 풍자적 정신도 공유한다. <목성잠언집>에서 나는 이스트 개니미드의 티모시 골드슈타인 대통령이 추구한 '햇살 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살폈고 그런 설명이 우리 시민들에게 유화 정책의 위험을 일깨우기를 바랐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유화 정책이 단 몇 해 만에 이리도 큰 재앙을 부를 줄은 당시엔 예감하지 못했다. 그 동안 일어난 일들을 되돌릴 길은 없다. 한번 태어나면, 악은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나리오 속에서도,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은 엄청나다.
'현실이 예술가의 상상력을 압도할 때, 예술은 어떤 모습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이 작품을 쓰는 동안 머리 뒤쪽에 어른거렸다.
이 책은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자유주의자들이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을 위해 만든 자유주의 안내서다. 자유주의자로 활동해온 저자들의 자신들과 인연이 깊은 자유주의 저작들을 소개하고 있다. 형이상학자들도 갈피를 못 잡는 우연과 필연의 어우러짐 속에 삶의 묘미가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행보도 대체로 같을 것이다. 먼 뒷날 이 책과의 우연한 만남이 운명적이어서 그 뒤의 만남들은 모두 필연이었다고 술회하는 자유주의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내 마음속 자유주의 한 구절>은 자유주의 지식인 36인이 유난히 깊은 감명을 받은 구절을 하나씩 소개하는 형식을 따랐다. 그래서 자유주의의 특질들이 기억하기 좋은 잠언들의 형태로 드러난다. 그런 잠언의 뜻과 필자가 그것을 만나게 된 과정을 밝히는 짧은 설명이 따라서, 이해를 깊게 하고 원전에 대한 길잡이 역할도 한다.”
여기 실린 고향 이야기들은 그런 시공의 모습을 잘 그려 보인다. 게다가 낡은 사진들이나 '대한 늬우스'와 같은 기록 영화들의 생경함이 없이 아주 생생한 질감으로 당시 사람들의 삶을 보여 준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공과 아주 비슷하면서도 상당히 다른 그 시공들 속으로 독자들이 잠시 몰입할 수 있다면, 이 책은 소임을 제대로 했다고 할 수 있으리라. / '머리말' 중에서
한국엔 현대사에서 큰 업적을 남기거나 역사의 전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사람들을 그린 예술 작품들이 드물다. 그렇다고 전기들이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깊은 이념적 분열이 낳은 너그럽지 못한 사회 풍토가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사소한 결점이나 과오를 터무니없이 부풀려서 나라를 위해 애쓴 평생을 덮어버리는 경향이 심하다. 예술계의 이념적 편향이 유난히 심해서 관점이 한쪽으로 쏠렸다는 사정도 거든다.
어쨌든, 예술가들이 현대사의 중요한 인물들을 다루기를 꺼려서 그들의 처지와 역할에 대한 예술적 이해가 결여되면, 그 사회는 자신을 성찰할 중요한 수단 하나를 잃는다. 예술적 성찰은 다른 것으로 대신하기 어려우므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그만큼 얄팍해진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들에서 나오는 천박함의 뿌리 하나가 거기 있다고 나는 여긴다.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두드러진 인물이다. 그의 역할이 그리도 중요하고 업적이 그리도 크므로, 그의 삶을 살핀 예술 작품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그만큼 안타깝다.
《박정희의 길》이라는 제목이 가리키듯, 이 작품은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제시한 길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가 제시한 길은 해외로 뻗었다. 그 길이 옳은 길이었으므로, 우리나라는 경제를 발전시켰고 궁극적으로 자유롭고 풍요로운 사회가 되었다.
해외로 뻗었으므로, 그 길이 처음 만난 나라는 일본이었다. 지리가 나라의 숙명이므로, 그것은 자연스러웠다. 일본이 19세기 후반부터 서양 문명이 동아시아에 들어오는 도관(導管) 역할을 했다는 역사적 조건은 문화적으로도 한국은 일본을 거쳐야 해외로 쉽게 나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런 인식에 바탕을 두고 박 대통령은 두 나라의 외교 정상화를 추구했다.
그런 결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리고 그것의 실행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한일수교를 반대한 ‘6·3세대’에 속한 나는 현장에서 체험했다. 그래서 나는 박 대통령의 큰 업적들 가운데 한일 수교를 으뜸으로 꼽는다. 시간적으로도 그것이 맨 먼저 나왔다.
만일 박 대통령의 결단이 없었다면, 두 나라는 아직도 수교하지 못했을 터이다. 그것은 나라가 가야 할 길을 뚜렷이 인식하고 그 길로 국민들을 이끌 수 있었던 지도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당시엔 존재하지도 않았던 ‘위안부 소녀상’ 문제가 근년에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끊임없이 덧나게 하는 논점으로 추가된 것을 생각하면, 이 점이 아프도록 명백해진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이 협력하지 못하는 상황이 우리에게 무슨 비참함을 강요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답변은 지금 강대국이 되어 동아시아에 군림하려는 중국의 행태가 웅변으로 말해준다.
그러나 두 나라 사이의 수교는 일방적 행위가 아니므로, 일본과의 수교는 박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두 나라에 다행스럽게도, 당시 일본엔 걸출한 지도자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총리대신이 나라를 이끌었다. 그는 한일 수교의 중요성만이 아니라 일본에 대한 반감이 거센 나라를 이끄는 박 대통령의 처지도 충분히 이해했고 적절하게 대응했다.
두 위대한 지도자들의 협력은 포항종합제철의 건설로 뚜렷한 성과를 냈다. 다른 선진국들이 한국의 종합제철 사업을 가난한 나라의 백일몽으로 여겼을 때, 일본 정부와 제철기업은 박 대통령의 호소에 귀를 기울였고 아낌없이 지원했다.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잊지 못할 친구를 얻었다. 가나야마 마사히데(金山正英) 주한 일본대사의 헌신적 봉사가 없었다면, 박 대통령의 굳은 의지만으로 포항종합제철이 세워졌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그의 기억은 두 나라 사이의 관계에 역사의 물길이 남긴 짙은 앙금을 지금도 조용히 씻어내고 있다. 함께 일한 경제기획원 요원들이 ‘김 대사’라 부른 그의 영전에 이 작은 작품을 바친다.
생각이 운명을 결정한다, 개인이든 사회든. 사람의 머릿속에선 끊임없이 갖가지 생각들이 서로 경쟁하고 그 결과가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이념의 결정적 싸움터는 사람의 뇌다. 선거든 시가전이든 사람의 뇌라는 싸움터에서 나온 결과를 확인하는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판단에 감정이 근본적 영향을 미치므로, 감정에 직접 호소하는 예술 형식은 영향력이 크다. 전체주의 국가들은 이런 사정을 일찍부터 깨닫고 영화나 연극을 통한 선전에 공을 들였다. 반면에, 자유주의 국가들은 예술을 통한 영향력의 확대에 둔감하고 서투르다.
우리 사회에서 나오는 예술 작품들은 대부분 대한민국의 이념과 체제에 적대적이다. 그런 작품들의 영향력은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은밀하게 깊이 배어들어서 마음을 지배한다. 원래 ‘예술적 현실참여’라는 평가는 체제의 문제들을 드러내고 바로잡으려는 노력에 대해 부여된다. 대한민국의 정당성과 성취를 드러내는 ‘학예회 수준’의 연극 공연이 ‘예술적 현실참여’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이념적 건강이 얼마나 위험한 지경인가 보여준다.
올해는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이다. 그 분이 우리 운명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온 사회가 그 분의 공과를 열심히 논의하고 그 분의 영도 아래 대한민국이 이룬 위대한 성취를 기리는 것이 당연하다. 현실은 다르다.
전망이 암울할 때면, 나는 오든의 한 구절을 뇌곤 한다, “모든 힘들이 다했을 때, 우리는 듣는다 잘못된 시절에 어울리는 노래를.” 대한민국이 어려웠던 시절에 박정희 대통령이 가리킨 길을 보여주는 공연보다 지금 우리에게 더 어울리는 노래는 드물 터이다. 그리고 그런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지식인에겐 가장 깊은 뜻에서 행운이다. - 작가의 후기 중에서
문학과 과학이 서로 낯설어진 지금의 상황이 새삼 걱정스러워진다.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문학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와 소설을 읽는 소수의 사람들도 대부분 ‘본격 문학’을 외면한다. 자연히, 사람들은 삶의 모든 면들을 다듬어내는 과학에 대한 “보다 섬세한 앎”을 지니기 어렵다.
이 작품은 어떤 뜻에선 나의 자서전이다. 주인공이 '문자를 세우는 일'을 업으로 삼았듯이, 나는 지식을 삶의 본질로 여겨 줄곧 그것을 추구했다. 자서전이므로, 이 작품은 논리적으로는 내 작품들의 마지막에 놓일 터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을 김현에게 바친다.
... 그가 나를 선수로 세상에 내보냈을 때, 나는 이미 마흔이 넘었었다.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은 문학에 가장 이질적인 장사였고 첫 직장은 은행이었다. 그래서 나는 '섹시'한 신인이 못 되었다. 그래도 그는 내게 마음을 쏟았다. 논쟁적 글쓰기나 텔레비전의 리포터 노릇과 같은 '가외 활동'들에 대해서도 그는 조언을 했다. 어쩌면 그는 일찍이 느꼈는지도 모른다. 내가 자신이 조련한 마지막 선수가 되리라는 것을.
전체주의 정권에 의해 갇혀있는 한 북한이 제기하는 문제들은 풀릴 수 없다. 북한 정권은 북한 주민들뿐만 아니라 남한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위협이다. 유일한 해결책은 북한의 전체주의 정권을 자유로운 정권으로 바꾸는 것이다. 우리 저자들이 북한의 자유화를 노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수필과 시는 대조적이다. 수필은 느슨하고 가볍고 한눈을 판다. 시는 팽팽하고 심각하고 엄격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수필은 일화적이고 시는 보편적이다. 그래서 수필에서 핵심적 전언을 시구로 요약하면, 문득 글에 질서가 배어나온다.
독자들이 수필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시를 음미할 기회가 나오도록 마음을 썼다. 우리 일상에서 시가 점점 변두리로 밀려나는 추세는 안타깝지만, 시와 산문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는 현상도 아쉽다. 글에 서정시들이 들어가면서, ‘서정적 풍경…’이라는 제목은 자연스럽게 나왔다. 글만으로는 좀 밋밋할 듯해서, 딸아이에게 삽화를 부탁했다. 녀석은 피에르 보나르의 분위기가 어린 유화들을 내놓았고, 그래서 책의 무게 중심이 그림 쪽으로 많이 쏠렸다. ‘보나르 풍의 그림에 담긴’이 덧붙여진 사연이다. 나는
수필에서 가벼운 이야기를 듣고 시에서 그 얘기의 보편성을 느끼고 그림에 명상의 눈길이 머문 독자가 더러 있다면, 나로선 큰 행운일 터이다.
이 작품은 2006년 조창호 중위의 장례가 ‘향군장’으로 치러진다는 신문 보도에서 비롯했다. 분노의 불길이 가슴에서 일면서, 입에서 “영웅을 이렇게 대접하다니” 하는 탄식이 나왔다.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는 연희전문 1학년 학생이었다. 그는 군대에 지원해서 장교로 임관했고, 이어 9사단에 배속되어 관측장교로 복무했다. 1951년 5월 중공군의 제1차 춘계공세에 9사단은 궤멸되었고 많은 국군들이 중공군의 포로가 되었다. 그도 포로가 되었고 곧 북한군에게 인계되었다. 그는 북한군 8사단에 편입되었는데,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혔다. 그 죄목으로 북한 군사법정에서 재판을 받아 13년 교화형을 선고받았다. 마침내 1994년 43년 동안의 포로 생활 뒤에 중국을 통해서 탈출하여 귀환했다. 그는 북한을 탈출해서 돌아온 첫 국군 포로였다.
이처럼 조 중위는 진정한 영웅이었다. 그러나 당시 집권한 좌파 정권은 그런 영웅에 걸맞은 장례를 허용하지 않았다. 조 중위에 대한 그런 초라한 대접을 보고 내가 느낀 분노와 부끄러움에서 이 작품이 나왔다.
박윤빈 군은 아직 고등학생인데 이 작품을 영어로 멋지게 옮겼다. 그리고 6.25 전쟁 60주년을 맞아 ‘문민포 여성악극단’의 여배우들과 스태프들은 무대마다 멋진 마법을 펼쳤다. 이분들 모두에게 감사 말씀을 드린다.
이승만과 프란체스카 도너 리-이 위대한 부부의 삶
프란체스카 여사의 삶을 그린 작품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언제 처음 들었는지 이제는 기억이 흐릿하다. 생각의 씨앗이 세월의 흙 속에서 싹트고 모르는 새 자라나서 그럴 것이다. 처음엔 소설로 쓰려 했다. 그러나 실재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는 것은 여러 모로 제약이 커서, 선뜻 시작하지 못했다.
그런 무기력에서 나를 흔들어 깨운 것은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의 <에비타(Evita)>가 거둔 성공이었다. 그 작품의 주인공인 아르헨티나의 에바 페론(Eva Peron)은 늘 인기가 높았지만 역사적 평가는 크게 엇갈리는 인물이다. 그래도 사후에 예술 작품을 통해서 온 세계의 칭찬과 사랑을 받은 것이다.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여(Don’t Cry for Me, Argentina)>를 들을 때마다, 나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위대한 삶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거의 다 잊힌 프란체스카 여사를 깊은 부끄러움으로 떠올렸다. 그런 사정에 격발되어, ‘나도 한번 희곡으로 써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늘 시간에 쪼들리다 보니, 손을 대지 못한 채 다시 여러 해가 지났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던 해에 ‘4월 혁명’이 일어났으니, 나는 프란체스카 여사를 또렷이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에 속한다. 우리 세대가 사라지면, 점점 빠르게 두터워지는 현대사의 지층 속에서 프란체스카 여사의 자취를 찾아내서 작품으로 쓸 사람이 나올 가능성은 더 줄어들 터이다. 그 생각이 재촉해서 일흔을 넘긴 나이에 비로소 작품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마침 올해가 대한민국 건국 70주년이어서, 나로선 더욱 흐뭇하다.
큰 인물이 나오는 나라는 불행하다. 평안한 나라는 큰 인물이 필요 없다. 왜란이 이순신을 불렀고 호란이 최명길에게 활약할 자리를 마련했다.
개항 뒤 우리나라가 줄곧 외세에 시달리다 끝내 망한 뒤, 큰 인물들이 많이 나온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그리고 그 분들의 거룩한 노력 덕분에 우리나라가 되살아났다.
그 큰 인물들 가운데 으뜸은 우남 이승만이다. 우남보다 더 널리 세상을 살피고 더 깊이 우리 민족의 처지를 성찰하고 더 현실적인 방략을 내놓은 분은 없다. 무엇보다도, 우남은 대한민국을 세웠다. 건국처럼 거대한 과업을 한 사람이 해냈다는 얘기야 과장일 수밖에 없지만, 만일 우남이 없었다면, 실재해온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다. 설령 대한민국이란 이름을 지닌 국가가 세워졌다 하더러도, 그 실체는 지금 우리가 그 안에서 살고 있는 대한민국과는 상당히 달랐을 터이다.
우남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개항기 조선이라는 어둑한 시공에 그처럼 밝은 인물이 나타났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설명하기 어려워지는 현상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누구도 자기가 태어난 시대를 뛰어넘을 수 없다고. 그리고 덧붙인다, 자기 시대를 뛰어넘으려면, 미쳐야 한다고.
그러고 보면, 우남의 행적엔 광기라고 부를 만한 기운이 후광처럼 어린다. 자신이 태어난 시공을 벗어나 큰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그의 노력엔, 자신만이 아니라 자기 민족 모두를 이끌고 크고 발전된 세상으로 나아가겠다는 그의 비장한 염원엔, 광기가 어리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이다. 위대한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영웅적으로 미친(heroically mad)” 것이다.
내 생각엔 우남의 그런 “영웅적 광기”가 적잖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그를 미워하게 만든 것 같다. 뛰어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믿고 따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지도자들을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미워하게 된다.
아마도 그래서 우남을 잘 알게 된 서양 사람들이 불운한 그를 저버리지 않고 끝까지 도왔을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우남을 잘 알고서 그를 배신한 서양 사람은 공산주의 러시아의 첩자였던 앨저 히스(Alger Hiss) 뿐이다. 자기 조국을 배신하고 러시아에 충성하는 첩자로서 러시아의 이익을 앞세웠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태어난 시대를 뛰어넘은 우남의 “영웅적 광기”가 서양 사람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고귀하고 합리적인 태도로 다가왔을 것이다.
……
우남 부부의 처지를 보다 잘 이해하려면, 먼저 얄타 협정에 대해서 살피는 것이 순서다.
실은 지금 우리가 얄타 협정에 관심을 보여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얄타 협정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정권이 처음부터 비밀처럼 다루어서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 그래서 전모가 밝혀진 것은 여러 해 뒤였다. 다시 몇 십 년이 지나서,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비밀로 합의한 내용이 나오기도 했다. 지금도 우리는 확신하지 못한다, 얄타에서 일어난 일들이 모두 다 드러났는지.
게다가 루스벨트 대통령에 가까웠던 사람들이 러시아의 첩자들로 러시아를 위해 일했다는 사실이 있다. 그들의 반역은 얄타 회담에 기괴한 빛을 던진다. 그나마 당시 활동한 러시아 첩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그 동안 밝혀진 이런 정보들은 우리로 하여금 얄타 회담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하고 재평가하도록 만든다. 특히 우남이 폭로한 ‘비밀 협약’에 대해서 새롭게 접근할 필요성이 커졌다. 새로운 정보들은 모두 우남의 견해가 실상에 무척 가까웠다는 것을 가리킨다. 아쉽게도, 우리 사회에선 그런 움직임이 없다.
……
1900년에 태어났으므로, 프란체스카 여사의 생년은 기억하기 좋다. 내후년 2020년은 그녀의 탄생 2주갑(120주년)이다. 뜻이 깊다면 깊은 해다. 그 해를 넘기면, 그녀의 위대한 생애를 기리고 조명할 계기가 언제 올지 모른다.
“과거를 통제하는 자가 미래를 통제한다. 현재를 통제하는 자가 과거를 통제한다(Who controls the past controls the future. Who controls the present controls the past)”는 조지 오웰의 얘기가 지금보다 더 절박하게 다가온 적이 없었다. 그래도 누가 대본을 써놓아야 공연의 가능성이 생기리라는 생각과 프란체스카 여사를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에 속하는 내가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즐겁게 썼다. 이 세상에 순수한 행운은 없다. 행운이 찾아올 여지를 조금이라도 늘리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이승만과 프란체스카 도너 리-이 위대한 부부의 삶이 그 진리를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 ‘작가 후기’ 중에서
작품들을 한데 묶어놓으니, 사람의 정체성을 주제로 삼은 것들이 많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여기 실린 단편들이 대부분 과학소설이라는 점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새로운 과학 지식과 기술은 사람이 자신에 대해 품은 생각들을 바꾸도록 강요한다. 브라이언 올디스Brian W. Aldiss가 과학소설을 “우리의 발전된 그러나 혼란스러운 지식수준에, 즉 과학에, 비추어 나올 수 있는 사람의 정의와 우주에서의 그의 위치를 찾는 일”이라고 한 것을 음미하게 된다.
「내 얼굴에 어린 꽃」은 원래 계간지에 발표했었는데, ‘읽는 희곡’ 형태를 한 장편 『그라운드 제로』의 한 부분이 되었었다. 처음 모습을 많이 살려서, 여기 실었다.
‘시대정신(Zeitgeist)’이란 말은 18세기 후반부터 주로 독일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이 말은 인류문명의 발전 과정에서 드러난 중심적 특질들이 있다는 생각에서 나왔다. 자연히, 시대정신은 역사에 대한 견해를 반영한다. 인류 역사가 보편적 법칙을 따라 발전한다는 주장이 밀려나면서, 시대정신도 뜻이 바뀌었다. 요즈음은 ‘한 사회가 어떤 시기에 가장 근본적이라고 여기는 사회 문제를 풀기 위해 스스로 설정한 과제’라는 뜻 정도로 느슨하게 쓰인다. 한 사회의 모습이 경로 종속적(path-dependent)으로 진화하므로, 비록 실체가 뚜렷하지 않고 엄격하게 정의하면 사라져 버리지만, 가볍고 느슨하게 약호 정도로 쓰면 나름으로 쓸모 있는 개념들에 속한다.
시대정신은 당대인들의 인식을 반영한다. 그러나 당대인들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여긴 문제가 꼭 중요한 문제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들이 설정한 과제가 진정한 과제가 아닐 수도 있다. 이 점을 잘 보여주는 것은 우리 사회의 노예제도다. 신라 말기부터 개항까지 천 년 넘게 이어진 노예제도는 인류 역사에서 노예제도의 이상형에 가장 가까울 만큼 엄격했다. 생산성이 아주 낮은 양반 계급의 존재는 노예들에 대한 ‘일상적 약탈’로 가능했다. 그렇게 극단적으로 추출적(extractive)인 사회는 윤리적으로 병들을 뿐 아니라, 정체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천 년 동안 한반도의 지식인들은 그런 노예제도를 엄격히 시행하는 사회의 근본적 문제를 짚어내지 못했다. 여기서 우리는 당대인이 시대정신을 인식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어쩌면 자신들의 지식 체계를 과감히 깨뜨리는 ‘개념적 돌파(conceptual breakthrough)’를 필요로 할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만난다. 물론 그런 지적 성취는 정치적 지도력을 만나야 실제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가상 대담들은 긴 세월에 은원(恩怨)의 감정들이 많이 씻긴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다. 자연히, 개인적 대립보다 사회적 힘들의 상충이 부각되었고 대결 자체보다 개인적 및 사회적 화해가 강조되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요체를 경계조건이 비슷한 경우를 찾아내는 것이라 했을 때, 현대 사회에서 정치 지도자의 선출은 가장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라이벌들의 대결이다. 이 책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통합의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화두를 제공할 수 있다면, 고마울 따름이다.
사회의 모습은 궁극적으로 이념들 사이의 경쟁을 통해서 다듬어진다. 자연히, 가장 중요한 싸움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벌어진다. 거리나 선거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거리의 시위나 시가전도, 선거의 당락도, 실은 선거가 치러지느냐 않느냐 하는 근본적 문제도, 모두 이미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벌어진 이념적 싸움에 의해 기본적 조건들이 주어진다. 우리 사회의 운명에서 결정적 변곡점 노릇을 할 이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유주의자들은 그 점을 새롭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낙관적 태도는 비관적 태도보다 살아가는 데 낫다는 사실이 있다. 만일 결과가 나쁘게 되어 있다면, 굳이 애쓸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살아 남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낙관적으로 세상을 대해야 한다. 그래서 생물학자들은 말한다. 조심스러운 낙관은 생명체들에게 가장 좋은 전략이라고.
책 제목이 가리키는 것처럼, '세속적으로 현명한(worldly wise)' 것보다는 '현명하게 세속적인(Wisely worldly)' 것이 삶의 본질에 맞다. 지금 우리 사회는 아주 어지럽다. 그래도 나는 '현명하게 세속적인' 태도가 적응적이라고 독자들에게 얘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