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형!
까악 까우악~ 내지르는 검은 텃새들은 시도 때도 없이 며칠 째 저 지랄입니다. 햇살비친 역 광장에 내려앉아 푸드득거리는 비둘기들도 마찬가지.
생물은 본능을 위하여 발버둥 칩니다. 그 진화의 끝은 어디 일까요? 아등바등하는 슬픔조차 살아있는 몸뚱이 안팎에서만 가능할 뿐입니다.
이 소설의 인물들은 이리저리 얽히고설켜갑니다. 이들의 숨소리는 생애의 기억과 학습 속에서 작용했을 터. 아무렇게나 떠도는 피사체를 잡기가 어지러웠고, 나의 시선으로 타인을 들여다보는 일조차 두려웠습니다. 늠렬凜烈한 시기에 비루한 소설 따위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럼에도 어설픈 일에 또다시 손을 대고 말았군요.
언젠가, K형이 술주정하듯 넌지시 흘린 그 한 마디. 낡고 병들어 간 생멸生滅이 인간의 끈으로 이어져왔을 거라고! 결국 나는 어느 한 시기에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시계가 고장 나도 우주의 시간은 흐르겠지요.
세상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고 졸작을 내보여 부끄럽습니다.
2018년의 봄볕을 맞으며 - 덧붙인 말
생애는 소소한 기억과 각박한 현실로 뒤범벅되어있다. 살아있음으로 죽은 자의 이야기를 듣는다. 치미는 분노와 위로는 사람의 것. 사람들이 처한 입장과 감정은 한순간에도 제각각 다를 터. 스스로 베고 베어지는 도발과 두려움의 틈바구니에서 서성거려야하리.
세상사에 대한 나의 관심은 그대로이다. 시계가 속삭이는 소리, 점점 크게 들리는데 도무지 견딜 수가 없구나. 무거워진 시간의 매듭을 풀지 못했으니, 아직 세상의 넓이와 깊이를 가늠하지 못한 것 같다. 오래 되어도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는 뭘까? 소설들을 묶으며 곤혹스런 노동의 가치를 변명해본들, 또다시 부끄러울 수밖에.
시대의 속도가 다를지언정 나의 생멸은 불완전한 이 시기와 함께한다.
햇덩이도 기울어져 늘어진 그림자를 거두어드릴 수조차 없는 노릇!
어둠이 깃들면, 두부와 호박을 숭숭 썰어서 된장국을 끓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