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62년 5월 충청남도 논산군 성동면 정지리 167번지에서 태어났습니다. 아직 근대화의 물결이 한참 못 미친 아주 낙후된 동네였습니다. 여기에 쓴 글들은 그로부터의 일들에 관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글들은 단순한 나의 가족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나의 삶 속에서 혹은 가족사 속에서 당대의 풍속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사 이래로 이런 삶은 이 시기만에 한정된 것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삶은 지속적이고 항상적인 것이었으며, 우리의 심연 속에 늘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는 나만의 개인사가 아니라 우리의 보편사였다고 감히 말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것은 나의, 우리의 서러움입니다.
이 글의 주체랄까 시점은 어린 나 자신입니다. 가능한 한 당시의 시각을 최대한 확보하려고 했습니다. 지금 여기의 가치평가들은 가급적 개입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쓰고자 한 것입니다.
읽어주신다는 것, 그것은 한때의 아픔을 공유한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문학이 하나의 생명체임은 당연한 일인데, 요즈음처럼 이 말의 참뜻을 실감할 때도 없었던 것 같다. 과거에는 어느 특정 장르는 다른 양식과 달리 주변의 상황들과 절연된 채 혼자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것이 가능하다 했고, 또 실제로 그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그 장르는 이 논리로 모든 것을 도외시하고 사회의 책무에서 배타적인 역할을 해왔다.
어느 면에서 보면 그런 사유와 논리가 근거가 없다거나 잘못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문학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실체이다. 뿐만 아니라 어떤 고정된 문학관이나 세계관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 여기의 상황과 조건이 바뀌면 문학은 달라지는 것이고, 이를 응시하는 세계관 또한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화의 추억을 떠올릴 만큼 그것에 대한 사건과 역사는 아득히 멀어져 있는 것이 현재의 시점이다. 그동안 세상은 많이 변했고, 그 아래에서 살고 있는 존재들 또한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그리하여 과거에 갈급되었던 관심의 영역들이 현재의 상황에도 유효하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난 시절 어떤 정해진 목표를 향해 나아가던 가열찬 열정이 언뜻언뜻 떠오르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현재의 상황과 과거의 그것들은 많은 면에서 변했고 달라졌다. 만약 그러하다면 현재의 상황과 과거의 그것은 어떻게 전변했고, 또 그 상황 속에서 문학과 개인은 어떤 자의식과 임무로 뒤바뀌어 있는 것일까.
그리고 현재의 여기는 과거와 어떻게 달라졌고, 또 진보 내지는 발전, 개선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새로운 변신을 해왔는가. 이 물음에 대해 자신 있게 대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거니와 어떤 수학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경우는 현재가 과거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인식을 하고 있지 않은가. 상황과 인식이 그러하다면 문학 또한 어제의 그것과 동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요즈음 문학 자체나 문학인 스스로가 너무 고립이라는 갇힌 공간을 만들고 거기에 쉽게 안주해버리는 것 같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이로부터 나와서 현실의 어떤 자장에 대해 감각하거나 이를 헤쳐 나가려는 의식조차 갖지 않는 거 같다. 그러니 집단이나 리얼리즘과 같은 영역이 더 이상 언급되지도 않고 또 유의미하게 취급되지도 않는 거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과거의 가치가 현재의 상황에 맞지 않는다 해도 새로운 삶의 질을 향한 욕망들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요즈음에 들어 리얼리즘이나 집단의 영역들에 대해서 다른 어느 때보다도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하는 것은 이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집단은 한 개인의 영역을 초월해서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인간들의 음성이 모이는 곳이다. 사회가 아무리 변하고 개인의 가치가 승한다고 해서 집단의 이념과 가치를 능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집단이란 개인성을 초월하는 곳에 위치하는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 그것은 사회를 이끌어가는 선구자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공허해지고 무력해지는 요즈음에 집단의 활력이 요구되는 새로운 담론의 발견이야말로 문학이 존재해야 할 진정한 이유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