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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이름:김성중

성별:여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75년, 대한민국 서울

직업:소설가

기타: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최근작
2024년 12월 <[세트] 당신을 기대하는 방 + 쓰지 않은 결말 - 전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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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오후, 텅 빈 카페에 앉아 전에 써놓은 <작가의 말>을 다 지웠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없을 만큼 비장한 글이었기 때문이다. 새 노트를 펼치고 있으려니 문득 기이하고 아득하다. 그리고 비현실적이다. 세상에, 내가 첫 소설집에 들어갈 <작가의 말>을 쓰고 있다니! 내 인생에서 가장 신기한 일은 내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지만 한 번도 글재주로 주목받아본 적이 없는 나였다. 항상 오만한 독자였지만, 작가는 특수한 다른 종족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서른두 살부터 다시 소설을 썼다. 구립도서관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공상에 잠기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습작은 별로 진전이 없었고 노트북을 켜놓은 채 남의 글만 잔뜩 읽다 돌아오곤 했다. 어쩌다 쓴 글 중에는 책 뒤에 들어갈 <작가의 말> 즉, 지금 이 글을 당겨 쓴 것도 있는데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고 싶을 만큼 낯부끄러운 글이다. 비슷한 것으로 편지들이 있다. 몇 개의 습작을 부러뜨리고 나서 실의에 빠진 채, 내 첫 소설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언젠가 올 너를 기다리고 있어……’ 연서에나 들어갈 문구로 빼곡한 글이었다. 소설을 써야 할 시간에 소설에게 편지나 쓰고 있으니, 도무지 진도가 나갈 리 없었다. 그때는 전혀 글을 쓸 줄 몰랐고, 이야기를 만들어낼 줄은 더더구나 몰랐기 때문에 낙서밖에 할 수 없었다. 격한 감정이 밀려올 때, 어떤 ‘원석’을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충전되어 있을 때, 그 감정의 정체를 몰라 ‘뮤즈’ 운운할 때, 나는 늘 근사한 첫 문장을 고대했다. 뭔가로 가득 차 있지만 어떻게 터뜨려야 할지 몰라 내버려두는 고름처럼, 그렇게 끙끙거리며 날마다 문장 타령만 했다. 2년 후에야 겨우 마침표를 찍은 첫 소설(도서관 생활을 수기처럼 옮긴 터라 부끄러움이 컸다)로 등단을 했다. 힘겹게 첫 소설을 끝냈더니 그다음부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놀랍게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신호등 앞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이야기의 입자가 저절로 달라붙었다. 느닷없이 소설과 나 사이에 회로가 생겨 전류가 흐르는 느낌이었다. 첫번째 소설이 내게 행한 마법이었다. 그다음부터 진정한 문제가 발생했다. 근사한 얘기들이 밀려들었는데, 그걸 제대로 받아 적을 필력이 한참이나 모자랐다. 등단할 때 당선 소감에 ‘물러설 수 없는 사각의 링’ 운운했는데, 막상 링에 올라와보니 정신없이 쏟아지는 펀치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의 부족함이었다. 두번째, 세번째, 작품이 쌓일 때마다 곤죽이 되도록 나에게 얻어맞았다. 독자인 내가 작가인 내게 분통을 터뜨렸는데, 비난의 요체는 멋진 이야기를 왜 이렇게밖에 못 쓰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내 원단이 순면이나 순모가 아닌 폴리에스테르나 아크릴 따위인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문재(文才)가 없으니 정전기라도 일으켜보겠다는 게 내 씩씩한 낙관의 근거였다. 그러나 이런 유의 괴로움―소재도 있고,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도 알고, 강렬한 문장이 어느 순간에 폭발해야 하는지도 훤히 꿰고 있는데 막상 써놓고 보면 머릿속의 소설과 멀어도 한참이나 먼―이 반복되자 다시금 소설에게 편지를 써대기 시작했다. 이 글의 몸통이 될 내용은 사실 내 소설들에게 보내는 미안함과 반성문이다. 현재까지 내가 처한 곤란은 이렇다. 흥미로운 이야기라면 열 개든 스무 개든 만들어내겠는데, 그걸 잘 살려내지 못하는 것이다. 거칠고 조악한 글에 이야기들이 얹혀 있는 모습은…… 무지막지한 벽돌로 성급하게 쌓아 이야기를 가둬놓은 것 같았다. 그렇다. 매일매일 벽돌을 구웠지만 예쁜 장밋빛 벽돌은 얻지 못했다. 모처럼 내게 온 이야기들, 세상 곳곳에 빛처럼 바람처럼 떠다니다 운 나쁘게 나에게 수신된 이야기들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지 못하도록 허둥지둥 쌓은 아홉 개의 감옥, 그것이 내 첫번째 창작집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런 곤란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한두 해 죽자고 덤벼서 해결될 일도 아니었다. 머릿속의 소설이 종이 위의 소설보다 완벽한 것은 당연하다. 아직 언어의 터널을 통과하기 전이니까. 그러나 굴착기의 시간이 도래하면 사건은 점점 생기를 잃어가면서 딱 내 수준만큼의 모습만 드러냈다. 이제 나는 세상 어디에나 멋진 이야기들이 떠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고, 대단한 작가일수록 이야기를 가둔 벽돌의 색이 옅어진다는 것을, 옅어지다 못해 투명해지기도 한다는 것을, 그리하여 사막 한가운데 신기루처럼 홀연히 독자 앞에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문학의 영웅들이 투명한 벽돌을 얻을 때까지 걸었을 여정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득하다. (역시나 소설이 아닌 글을 쓰면 대책 없이 솔직해진다. 이 글도 앞선 글과 마찬가지로 파기해버리고 4줄짜리 작가의 말이나 짤막한 콩트를 쓸까 하다가 너무 태연한 척하는 것 같아 관뒀다. 더 부끄러워지기 전에 글을 정리해야겠다.) 엄마에게 드리는 감사 인사만은 생략할 수 없다. 어릴 때는 세상 엄마들이 다 우리 엄마 같은 줄 알았는데, 커서 보니 아니었다. 서른이 넘도록 자리 잡지 못한 딸에게 심지어 잔소리도 별로 안 한 우리 엄마. 변함없이 다정한 엄마의 지지가 없었다면 이렇듯 열렬히 절망하고, 또 씩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엄마를 엄마로 만나서, 나는 겨우 작가가 됐다. 그리고 내 노트북에 등을 대준 무수한 탁자들 중에서도 특히 연희창작촌 203호 책상에게 고맙다. 그곳에서 세 편이나 만지작거렸으니 이 책의 3분의 1은 녀석에게 빚진 셈이다. 문학과지성사 편집부 식구들, 해설을 써주신 우찬제 선생님과 유약한 작가를 잘 끌어준 편집자 필균, 근사한 표지를 만들어주신 김현우 씨에게도 감사드린다. 인생의 첫번째 책에 연루된 사람들이니 평생 동안(무섭죠?) 잊지 않을 테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어준 독자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내 글에 나 외에 다른 독자가 생기는 건 여전히 어색하지만, 여기까지 읽어준 당신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솔직히 ‘독자’라는 존재는 좀 두렵지만…… 이제 막 내 언어로 된 세계의 지도를 그려나가기 시작한 풋내기 작가니까, 다음 소설에서 신대륙을 발견할지 누가 아는가? 그러니까 첫 책의 독자가 되어준 분들은 계속 내 글을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하하. 여기까지다. 수수하고 솔직한 글을 쓰려던 것이, 수다하고 장황한 글이 되고 말았다. 온도가 뜨거운 소설을 쓰겠다는 결심을 내려놓고 이 글을 마친다. 2011년 가을

국경시장

두번째 책을 묶으면서 소설 쓰는 일이 볼리비아 해군과 같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내륙 국가인 볼리비아에는 묘하게도 해군이 있다. 패전 후 영토를 뺏기고 남미 최빈국으로 전락한 볼리비아는 자신들의 지도에서 바다가 사라진 이후에도 해군을 해체하지 않았다. 오늘날 볼리비아 해군은 해발 삼천팔백십 미터에 있는 티티카카 호수에서 배를 탄다. 2년 전 내가 티티카카에 갔을 때 바다 없는 해군들은 하얀 제복을 입고 열심히 훈련을 하고 있었다. 문학이 전체성의 바다를 잃어버린 후에도 작가들은 호수에 배를 띄우고 훈련을 한다. 더이상 도스토옙스키나 멜빌, 마르케스처럼 인류자체를 폭로하겠다는 야심과 역사를 하나의 캐릭터처럼 간주하는 포부와, 위대함에 대해 쓰고 싶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 작가들은 사라진 게 아닐까. 정확히 말해 그런 작가들이 탄생할 수 있는 바다의 시대는 지나가버리지 않았는가라는 의심을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독자들이 품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쓸쓸해지는데, 나는 항상 스케일이 큰 문학을 동경해왔기 때문이다. 그 세계를 동경해 작가로 입문했더니 바다는 보이지 않고 남은 이들이 파편에 현미경 대는 글쓰기를 하고 있더라는 이야기. 이건 뭔가 마르크스 공부를 시작한 날 선배가 “난 오늘부로 깃발 내린다. 내일부터 공무원 시험 준비할 거야. 너한테 세미나 해주는 게 내가 하는 마지막 운동이다”라고 말하던 것을 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까. 전체를 ‘전체적으로’ 그리는 데생은 불가능한 시대라 어쩔 수 없지 싶다가도, 이따금 놀랄 때가 있다.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를 뒤늦게 읽고 충격을 받았는데 작품이 위로하는 세계가 너무나 거대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바다로 나가는데 성공한 작가도 있구나 싶었다. 물론 작은 세계를 흠잡을 데 없이 쓰는 작가들이 훨씬 더 많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니 내가 동경한 ‘전체성’ ‘거대함’ ‘위대함’은 결국 작가의 욕망 자체였지 서사의 크기가 아니었다. 나는 들쭉날쭉한 발자크를 몹시 사랑했고 같은 시대의 스탕달이 만든 줄리앙 소렐을 레날 부인만큼이나 아꼈는데 비단 문학적 성취 때문만은 아니었다. 디 킨스가 『두 도시 이야기』를 썼을 때 느꼈을 흥분과 큰 야심을 사랑한 것이다. 최근에는 『말라볼리아가의 사람들』을 쓴 조반니 베르가에게 마음을 뺏겼다. 시칠리아 출신의 이 작가는 ‘패배 총서’를 기획하고 첫 권에 어부가 등장하는 장편을 썼다. ‘패배’를 ‘총서’로 쓰겠다는 기획 자체가 근사하지 않은가. 실제 그 총서가 두 권의 책에 그친 것과 상관없이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작가의 야심과 박력을 사랑한 것이다. 큰 소설을 향한 거대한 기획서 같은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두번째 책의 인물들이 그렇게 박력이 넘치는 것 같지는 않다. 외려 게으르거나 소심하거나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거나 시무룩하다. 이중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할 때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인물의 내면과 작가의 주파수가 일치할 때가 많은 점을 고려하면 내 상태가 그런 것 같다. 8년 째 소설을 쓰고 있고, 사는 일도 정신이 없는데 마음속에는 박력 넘치는 큰 기획서 한 장을 지닌 채 허둥대는 작가. 이게 현재의 내 모습이다. 쓰는 일과 사는 일이 다 같이 복잡해지면 나는 볼리비아의 해군을 떠올린다. 언젠가 하얀 제복을 입고 호수 아닌 바다로 나갈 때가 있으리라. 그때까지 뱃멀미를 참으며 훈련을 거듭하는 수밖에. 그럴 수밖에. 2015년 2월

상속

아무 데도 가닿지 못한 꿈의 파편이 쌓여 있는 곳은 비단 문학만은 아닐 것이다. 다른 예술에도, 삶에도, 꿈을 꾸었고 가능성도 있었지만 결국은 놓아버린 잔해들은 얼마나 아득하게 높은가. 나는 그 사라진 세계의 미광을 드러내고 싶었다. 견습 서기에서 까치발을 하고 있는 내 붓은 누추하고 무거웠다. 자연스레 숱한 수상자들이 했을 의심, ‘내가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라는 불안이 밀려왔다. 복잡한 심정으로 주말을 보내고 나자 허리를 삐끗해 구부릴 수 없게 됐다. 그래서 목요일이 된 지금까지 이 자리에, 한의원의 전기장판 위에 누워 있는 신세가 된 것이다. 헤아려보니 등단한 지 꼭 10년이 지났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내가 주어인 상을 받았고 뒤이어 요통이 생겼다. 뭐랄까, 짓궂은 소설의 신이 나에게 윙크하는 느낌이 든다. ‘열심히 써. 척추 조심하고 이제 운동해.’ 이렇게 말해주는 느낌이랄까.

이슬라

어느 날 수업이 끝나자 한 학생이 나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소설을 다 썼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것이다. 뭐라고 대답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답보다 질문이 오래 남는 것이 이 경우인데, 나 역시 수없이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기 때문이다 (……) 이야기는 여러 번 휘어졌다. ‘죽음을 낳는 자궁’이라는 아이디어만 적어놓고 몇 년을 잊고 지냈다. 여행을 다녀왔더니 공간이 생겨났고, 어느 날 의인화된 신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머릿속에 관념과 이미지와 감정의 덩어리가 생겼는데 그걸 집어 올릴 집게가 마땅치 않아 또 시간이 흘러갔다. 쓰면서 사로잡힌 의심. 내가 허공을 집은 것인지, 이야기를 집은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의심은 끝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 학생의 질문에 답할 수 없다. 이야기가 끝이 나는 것을 알게 되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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