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현대사」를 공부하기에 앞서
「이란」(원어 발음으로는 [Ir?n])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개중에는 「이라크」(Iraq)와 혼동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라크가 제1차 세계대전 후에 영국의 식민지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오스만 제국(1299-1922)으로부터 독립하여 새로 생겨난 아랍 국가인데 반하여, 이란은 「페르시아」의 긴 역사와 전통, 그리고 문화를 이어받아 아랍어가 아닌 페르시아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국가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본디 「페르시아」라는 호칭은 기원전 6세기에 동쪽으로는 펀잡 지방에서부터 서쪽 이집트까지, 또 남쪽의 아라비아 반도의 일부부터 흑해 북쪽 연안까지 넓게 지배하였던 아케메네스 왕조(B.C.550-331)의 행정, 문화의 중심지인 파르스(Fars) 지방을 고대 그리스인들이 페르시스(Persis)라고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이 명칭이 유럽 각국 언어 속에서 일반적으로 「페르시아」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로부터 5세기 후에 파르스 지방에 성립한 사산 왕조(224-651)에도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흥미로운 점은 비록 파르스 지방이 중심이 되지 않은 왕조라도, 이후 이란에 세워진 여러 왕조에서 이 명칭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18세기 말엽 부흥한 카자르 왕조(1796-1925)의 시조인 아가 모함마드 샤(1742-97)는 본디 카스피해 남동 연안의 고르건 지방의 투르크계 카자르족 출신으로, 처음으로 수도를 현재의 테헤란으로 옮겼지만, 이 왕조 또한 「카자르 왕조 페르시아」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이 「페르시아」는 고대 그리스 이후 유럽 세계에서 이란 지역에 세워진 왕조들에 붙여진 국제적인 명칭이다. 즉, 이란 내부의 정치적 변화, 시대, 지역, 그리고 민족적인 차이를 넘어선 호칭인 것이다.
하지만 1935년 3월 22일(이란 이슬람력 1314년 1월 1일), 팔레비 왕조(1925-79)는 「아리아인」을 의미하는 「아이리아(Ayrya)」에서 파생된 「이란」을 국명으로 정식 채택하였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해두자면, 이 국명 또한 카자르 왕조 시대에 발행된 통화에 「샤한샤 이란(이란의 왕중의 왕)」이라 새겨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1935년 이전에도 사용되었다. 따라서 1935년의 개명은 국제적 통칭(「페르시아」)을 자칭의 「이란」으로 변경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본서의 과제는 이러한 이란이라는 국가의 전체적인 「현대사」의 흐름을 검토하는 것이다. 먼저, 「현대사」의 시작이 언제부터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시간적 분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을 테지만, 여기서는 현대 이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역사적으로 언급해야만 하는 최소한의 시대 구분만을 하기로 한다. 따라서 굳이 「근현대사」라고 세분하지 않고, 「현대사」라는 제목을 채택하였다는 점을 밝힌다.
「종속과 저항의 100년」이라는 부제에 설명을 곁들이자면, 2011년은 이란 민족운동의 금자탑인 입헌혁명(1905-11)이 끝난 해로부터 정확히 100년이 되는 해이다. 본서는 이를 기점으로 입헌혁명 이후의 「종속과 저항」의 현대사를 읽어내려고 한다. 그 혁명 이외에도 20세기 초나 그 이전의 이란 정치, 사회나 국제정치에 대한 연구를 빼고서는 이란 역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이 100년간의 「종속과 저항」의 배경과 역사적 조건을 알기 위해서는 19세기 이전에 대한 이해 또한 꼭 필요한 점이라는 것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이와 함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좌절과 저항으로 점철되었던 운동의 방향성이 크게 흔들렸다고 해도 이란 현대사는 「종속과 저항」으로 물든 역사였다는 것이다. 그 점은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하나의 중요한 특징으로서 볼 수 있다. 입헌혁명을 비롯한 1950년대 석유국유화운동도 이란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먼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에도 몸소 느낄 수 있는 저항운동이다. 입헌혁명이나 석유국유화운동에 관한 연구나 사료가 끊임없이 출판되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본서는 이 국가의 흐름을 끊임없이 좌우해 온 구미열강의 거듭되는 개입과 지배, 그 수용과 반발을 통해 형성된 이란의 국가권력, 그것에 대한 국민적 저항운동의 전개에 초점을 맞추어 종속과 저항의 역사를 논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한 역사를 통하여 이 국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떠한 이상을 추구하며, 그 이상을 위해 현실에서 어떻게 끊임없는 노력을 해왔는지, 또 그 과정에서 어떠한 제약과 한계에 직면하여 왔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담긴 이란의 역동적이고 개성있는 역사와 그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하여, 한국과 일본이 석유 수입에 관한 문제들뿐만 아니라, 얼마나 이란과의 사이에서 직?간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역사적 과제를 공유하여 왔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로 인해 독자들이 지리적?정신적으로도 멀다고 생각하기 쉬운 이란에 친근감을 가지고 역사적 흐름을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안고 본서는 기획되었다. 이러한 바람이 달성되었는지 아닌지는 현명한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도록 하겠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필자의 의도를 알고 본서를 읽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