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의 크기는 어느 정도가 좋을까
나는 일곱 번째로 태어나 맏아들이 되었습니다. 제 위로 형님 세 분, 누님 세 분이 계셨지만 형님 세 분과 누님 한 분이 돌림병 등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누님 두 분만 살아남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는 할머니께 ‘이 놈만은 놓치지 말고 꼭 붙잡읍시다.’ 하시면서 나의 이름을 ‘붙들이’로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언제나 힘을 더 주셔서 ‘뿌뚤이’로 부르셨습니다.
할머니는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습니다.
“힘이 세어지려면 날마다 송아지를 한 번씩 안아 올리면 된다. 그러면 어른소가 되어도 안아 올릴 수 있게 된다.”
“또 힘이 세어지려면 옥수수 싹이 돋았을 때 날마다 한 번씩 뛰어넘으면 된다. 그러면 옥수수가 어른 키만 해져도 닿지 않고 뛰어넘을 수 있다.”
초등학교 무렵 어느 가을날, 학교에서 돌아와 빨갛게 익은 대추를 골라 따 먹을 때였습니다. 우리 집 둘레에는 아버지가 심어놓으신 대추나무가 열두 그루 있었습니다. 마을에서 가장 많았습니다.
팥알 크기의 앳대추가 가장 먼저 익었습니다.
“에이, 감질 나! 이 대추, 복숭아만큼만 커도 금방 배부를 텐데!”
그때 할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어디 보자, 뿌뚤아. 어떤 사람이 산에 도토리를 주우러 갔다가 ‘아이고, 힘들어! 이 나무는 백 년이 넘게 커도 열매가 어찌 이 모양이냐? 일 년짜리 덩굴에도 수박 같은 큰 열매가 달리는데!’하고 중얼거렸어. 그때 바람이 쏴아 불어 도토리 하나가 그 사람 머리에 뚝 떨어졌어. 그러자 그 사람은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꿇어앉아 두 손을 모으고 외쳤어. 뭐라고 외쳤을 것 같니?”
지금도 그때 할머니 이야기가 선연하게 떠오릅니다.
그리하여 나는 첫 동시집 제목으로 ‘도토리는 얼마나 굵어야 하나’, ‘도토리 크기는 얼마나’ 등을 떠올리다가 ‘도토리의 크기’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일찍이 혼자 몸이 되셔서 2대 외아들인 아버지를 데리고 힘든 세상 살아 오시면서도 나에게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신 할머니, 그리고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나의 할아버지)를 여의시고 혼자 세상을 헤쳐오신 아버지, 그러한 집에 시집 오셔서 나의 첫 이름을 ‘붙들이’로 지어주신 어머니께 삼가 이 동시집을 바칩니다.
2018년 풍성한 가을을 기다리며
‘노인 한 분이 세상을 떠나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라는 말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들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궁금한 것이 있을 때에 집안 어르신을 찾았습니다. 만약 그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면 물어볼 곳이 없게 됩니다.
노인들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줍니다. ‘이야기’라는 말은 ‘이어약(耳於藥)’ 즉 ‘귀로 먹는 약’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은 이야기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좋은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생각을 안겨줍니다.
좋은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즐거움을 줍니다.
좋은 이야기는 말의 쓰임을 윤택하게 해줍니다.
좋은 이야기는 우리에게 나아가야 할 길을 바르게 가르쳐 줍니다.
사랑과 지혜가 가득 담긴 이야기는 더욱 유익합니다.
- 저자의 머리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