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하릴없이, 무람없이, 감히,
때로 운명의 선택이 나를 빗겨 가도. 때로 이유 모를 모멸과 슬픔을 견뎌야 해도. 그래도 이야기가 있어서 괜찮기를 바란다. 이야기가 한때를 밝히기를. 이야기가 생채기 하나 남기기를. 기억 저편으로 밀려가기를. 그래도 괜찮기를. 더 나아지지 않아도 살아가기를. 우습거나 보잘것없거나 그저 그렇거나 시시하거나 나약한 모든 순간마다 그 곁에 있기를. 그림자 같기를. 발자국 같기를.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하릴없이, 무람없이, 감히, 나는 내가 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그런 이야기이길 바라 마지않는다. 그냥 이야기이기를.
이 책의 이야기들은 결국 여자 이야기다
이 책의 이야기들은 결국 여자 이야기다. 제도와 불합리한 숙명과 혹은 삶 그 자체에 휩쓸려 흔들거리는 여자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사람이 살고 죽고 사랑하고 욕망하고 그 갈피마다 두 발 걸려 넘어지는 그런 이야기에 마음이 끌린다. 이 책은 그러한 내 마음 기울임의, 바꿔 말하자면 애정의 산물이다. 바쁜 일상 중에 굳이 이야기를 읽는 것은 행간에 발 걸려 넘어지길 즐기기 때문이리라 믿는다.
온몸을 이야기에 부딪히고,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자주 뒤를 돌아보고, 이야기를 사랑하기에 발 아래를 내려다보는, 너그러운 독자에게 깊이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