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심하게 책을 읽고 최우수 서평을 써주신 독자에게 우선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이즈음처럼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공격을 받는 시대가 일찍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배우자를 선택할 권리가 예전보다 더 많아졌다는 현대사회에서 결혼이 오히려 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사실이다. 해결되지 못한 극심한 불화는 이혼이라는 형식의 가정해체로 이어지고 있고 이런 현상을 보는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부정적으로 보고 기피하려는 경향 또한 만만치 않게 대두되고 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결혼을 하고 또 그 결혼을 유지해보려고 나름대로 애를 쓰는 것일까? 아마도 삶에서 얻고자 하는 사랑이나 신뢰 같은 오아시스가 아직 결혼에 남아있다고 믿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독신도, 동거도, 결혼하지 않는 형태로 가족을 구성하는 다양한 유형들도 각각 나름대로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모순되는 속성인 혼자 있고 싶은 자유와, 함께 있고 싶은 사랑의 양립되는 소망을 온전히 충족시켜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생활양식을 발견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인생에 실망했을 때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를 바라보고 싶지 않아 배우자나 결혼이라는 제도에 모든 탓을 돌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대부분 길고 힘든 인생의 여정에서 지친 삶에 위안이 되어주는 결혼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어려울 때, 배우자가 등불을 켜지 않으면 나는 암흑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을 거두고 내 등불에 먼저 불을 당겨 두 사람의 길을 비추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다 자신의 영혼을 밝힐 수 있는 등불을 내면에 지니고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2002년 9월 12일 알라딘에 보내신 작가 코멘트)
상담자로 사람들과 만나면서 고통과 슬픔이 삶의 곳곳에 그 흔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본다. 무엇이 사람을 이렇게 강한 힘으로 휘두르는가? 우리는 운명과 맞서 싸울 아무 힘도 지니지 못한 무력한 존재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감히 말하려고 했다. 그리고 운명의 힘에 맞서는 인간의 자유혼과 사랑에 관해 쓰고 싶었다. 삶을 사랑하는 것은 인생의 중요한 선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을 열면 그대로 초록색 숲으로 들어서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풋풋한 글을 쓰고 싶었다.
고달프고 괴로울 때 다시 삶의 활력을 얻게 해주는 삶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어서였다.
어쩌면 숲 속의 현자는 바로 우리 자신인지도 모른다. 마음속 숲길을 따라가 보면 깊은 내면의 세계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과연 모든 상처를 덮고 치유할 만큼 강렬한 것일까. 아니면 오히려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겨주는 어떤 과정일까.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쓰라리게 다가오는 사랑의 여러 가지 양상은 우리에게 그저 인생에 관한 질문을 던져줄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고받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인생의 선물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데 대해서는 아무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모든 '처음'은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었던 떨림과 아름다움의 느낌을 되돌려준다. <트루먼스버그로 가는 길>은 여성동아 장편 공모에 당선되어 처음 나왔던 책이라 애착이 남다르다. 수많은 이야기가 어우러져 기묘한 모자이크 같은 모습이었던 작품을 십 년 전 손에 쥐었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게 내 안에 살아 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과 기대와 불안으로 가슴을 조이며 서강대 노고산의 언덕을 걸어 올라갔던 소년은 이제 노인이 되어 그 언덕을 걸어 내려오고 있다. 나이 들어 만났던 세 마리의 오리에게 철학자가 보였던 유다른 애착은 오리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훨훨 날지 못하는 오리를 바라보는 철학자의 심정에 안데스 하늘을 마음대로 날 수 있는 콘도르의 모습이 겹쳐졌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