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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번역

이름:이진아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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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선을 넘은 여성들>

메리 로스

메리 로스(Mary Wroth)와 스토아 사상의 관계에 대한 이 저술은, 필자가 5-6년 전 로스에 대한 일차적인 관심을 가지고 이런저런 책을 뒤적이다가 로스의 소네트 연작과 산문 로맨스의 중심 주제인 ‘항심’(constancy)이 르네상스 스토아 철학의 핵심 개념이며 구체적 실천 방안이었다는 점을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 로스와 스토아주의를 저서 정도의 분량으로 연구하겠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먼저 한국연구재단의 논문연구지원을 받아 <유레이니어>(Urania)에서 팸필리아의 항심을 신 스토아 사상의 창안자 유스투스 립시우스의 ‘항심’의 개념에 비추어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연구 결과물을 논문으로 제출하는 과정에서 익명의 논문 심사자가 이 주제를 논문 한 편이 아니라 학위 논문이나 저서 분량으로 다룰 것을 제안하였다. 필자는 이미 로스와 스토아 사상의 주제를 더 깊이 연구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다행히 한국연구재단의 저술확산 지원을 받게 되었다. <유레이니어>뿐 아니라 소네트 연작 <팸필리아가 앰필란서스에게>(Pamphilia to Amphilanthus)도 연구 범위에 추가하고, 스토아 저술도 립시우스의 신 스토아주의 저술뿐 아니라 당시 다른 신 스토아주의 및 스토아주의 고전 저술도 포함해, 로스의 작품세계 전체에 녹아들어 있는 스토아 사상의 특성과 그 의의를 밝히는 저서를 출간하게 되었다. 사실 영미 문학계가 16-17세기, 근대 초기 영국 여성 작가들에 주목하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로스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겨우 20-30년 전부터였다. 로스에 대한 관심은 르네상스 영문학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시드니 가문의 일원이자 산문 로맨스와 소네트 연작을 쓴 최초의 영국 여성이라는 사실에 집중되었다. 그리하여 그동안 로스의 로맨스와 소네트들은 주로 여성의 정체성, 주체 의식, 작가 의식의 관점에서 조명을 받았고, 작품 속에 융합된 사상이나 철학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작품에 스며들어 있는 작가의 사유나 사상적 특성 등은 간과되어왔다. 로스는 인문주의 수사학이 초래한 위기나 인문주의 정치 이상의 변질과 같은 시대적 문제를 민감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 로스가 여성의 관점에서, 소네트 연작과 로맨스에서 제시한 대안을 격변과 혼란기 당시의 삶의 구체적인 지침으로 이용되었던 인문주의 스토아 사상의 맥락에서 연구한다. 로스는 여성에게 종교적 글쓰기만 허용하고 출판은 더욱 금기시하던 시대에 세속적인 글을 책으로 출간함으로써 여성에게 부과되었던 한계를 용감하게 넘어서 공적 목소리를 내었고, 남성적 스토아 사상을 여성의 관점에서 변용하여 철학적 깊이를 더했다. 따라서 로스는 영국 최초의 여성 로맨스 작가이자 연작 소네트 작가라는 기존 영문학사적 입지에서 더 나아가 영국 르네상스 인문주의를 대표하는 주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이 책의 출간에 있어 먼저, 필자의 선행 연구주제를 저서 분량으로 확대할 것을 제안한 익명의 논문 심사자와 이 저서 연구를 지원해준 한국연구재단과 출간을 선뜻 맡아준 한국문화사에 감사드린다. 또한 연일 폭염 경보 문자가 날아드는 더위에 긴 원고의 꼼꼼한 독자가 되어 준 도해자 선생과 박순강 선생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이 저서의 출간원고 교정을 자원하며 우정 어린 도움을 마다치 않은 김현숙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한다.

양치기의 달력

3년 만에 에드먼드 스펜서의 ‘어머니 케임브리지’(<페어리 여왕> 4.11. 34.7)를 다시 찾았다. 라틴어에도 능했을 그가 (우리말로 ‘모교’라 흔히 번역되는) 라틴어 ‘alma mater’ 대신 ‘My mother Cambridge’라고 한 표현에는 모국어인 영어와 7년여 세월을 보낸 케임브리지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이 동시에 묻어나는 듯하다. 석사 시절 스펜서의 <양치기의 달력>을 처음 접하고 받은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영문학에 입문한 지 4~5년 된 상태에서 중세풍의 영어로 쓰인 너무 어려운 스펜서 작품을 읽으며 고군분투하던 나는 영어에 대해, 영문학에 대해 절망감을 느꼈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 미국유학시절 은사님에게서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도 스펜서 영어는 이해하기 매우 어렵다는 말씀을 듣고 그 충격적인 기억을 어느 정도 치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문학을 공부한 지 사반세기를 훌쩍 넘었어도 여전히 그의 영어는 쉽지 않다. 스펜서가 살았던 시기(?1554-1599)는 영문학사에서 르네상스라 분류되는 1500년에서 1660년까지 기간의 중심에 놓여있다. 16세기 초부터 잉글랜드는 튜더 왕가를 중심으로 절대왕권을 강화하면서 유럽 선진국들로부터 르네상스와 인문주의 그리고 종교 개혁의 정신을 받아들이며 잉글랜드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용트림을 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유럽의 변방국이었던 잉글랜드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즉위(1558) 후 스페인 무적함대를 무찌르면서 유럽에서 정치적 군사적인 입지를 굳히고 아일랜드를 적극적으로 식민지화하며 국력을 신장시켜나가고 있었다. 16세기 초에 잉글랜드에 유입된 르네상스 운동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자국어 교육에 대한 강조였다. 국가적 민족적 정체성에 언어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우리말 억압정책을 쓴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중세 이후 유럽에서 국제 통용어는 라틴어였고, 르네상스 시기에는 고전 그리스어, 라틴어 저술들이 발굴되어 읽히면서 그리스어, 라틴어 교육이 대학을 통해 확산되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외국어 습득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어서 그리스어나 라틴어를 모르는 사람을 위해 고전 작품의 번역이 많이 이루어졌다. 특히 종교개혁과 더불어 라틴어나 그리스어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하는 것은 평민의 신앙 계몽에 깊은 관심을 둔 종교 개혁가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이렇게 언어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과 더불어 자국어에 대한 관심은 커졌고,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노력한 유럽 각 나라의 인문주의자들은 자국어를 그리스 로마 고전 작품과 견줄 수 있는 작품을 쓸 수 있는 언어로 갈고 다듬는 일에 매우 깊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 스펜서가 교육받은 머천트 테일러 학교(1561)의 초대 교장인 인문주의자 리처드 멀카스터도 영어를 라틴어에 못지않은 훌륭한 언어로 만드는 것을 교육의 제 일 목표로 삼았다. 사실 노르만 정복(1066) 이후 잉글랜드에서는 불어와 라틴어가 지배계층과 지식인들의 언어였고, 14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궁정에서 영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그리고 그 이후에도 영어는 평민과 그 이하의 사람들의 언어, 조선 시대 언문이라 불리던 한글과 같은 대접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멀카스터의 교육을 받은 스펜서는 영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키웠을 것이며 그 관심과 사랑은 이후 케임브리지 대학교 시절에도 이어졌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펨브로크 홀 시절부터 매우 친하게 지낸 가브리엘 하비는 당시 자국어 문학의 열풍에 열렬한 관심이 있었는데, 스펜서와 하비가 주고받은 편지들은 이들이 모국어인 영어를 뛰어난 문학 언어로 발전시키는 주제에 대해 많은 의견을 나누었음을 잘 보여준다. 이렇게 스펜서는 모국어인 영어를 고전 언어에 버금가는 문학 언어로 성장시키려는 관심과 논의의 영향을 지속해서 받으며 잉글랜드의 베르길리우스가 되는 꿈을 키워나갔을 것이다. <양치기의 달력>(1579)에서 시작된 스펜서의 잉글랜드 민족 시인으로서의 포부는, 이 목가시의 「10월」에서 미리 암시되듯이, 이후 서사시 <페어리 여왕>(1590, 1596)을 통해 완성된다. 이 서사시는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종교, 역사, 사회, 정치 등 여러 방면에서 잉글랜드의 열망과 비전을 문학적으로 집대성하였고, 르네상스 영국 시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후대에 많은 영국 시인에게 영향을 주었다. <양치기의 달력>에 주석과 주해를 달고 머리말을 쓴 이 케이도 스펜서를 ‘옛 시인’ 초서의 뒤를 잇는 ‘새 시인’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양치기의 달력>은 르네상스 영문학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다. 옮긴이가 이 작품을 번역하게 된 것은 스펜서와의 오랜 인연에서 출발했다. 석사와 박사 논문을 모두 스펜서에 대해서 특히 <페어리 여왕>에 대해 쓴 옮긴이로서는 스펜서의 첫 작품인 <양치기의 달력>부터 우선 번역하고 싶었다. 옮긴이는 이 작품의 번역을 통해, 현대 대한민국의 독자가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언어적으로 참으로 긴 여행을 해야만 만날 수 있는 스펜서가 르네상스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시인으로서 문학(시)에 대해, 자신의 모국어인 영어에 대해 그리고 시인의 정체성에 대해, 삶과 사회에 대해 어떤 생각과 포부로 등단하였는지 중세풍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의 많은 독자와 나누고 싶었다. 26, 7세의 젊은 스펜서의 시인으로서의 꿈과 포부와 희망을 담은 이 작품은 사랑, 우정, 나이 들어감, 종교적 혹은 사회적 정치적 부패에 대한 비판,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 등의 주제를 서양 고전 문학 장르인 목가시의 전통 속에서 그리고 일 년이라는 시간의 변화 속에 맞추어 재미있게 다루어 간다. <양치기의 달력>은 현대 한국의 독자가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목가시 형태로, 시대와 공간에 매이지 않는 질문들, 즉 문학이 언어의 예술이라면 그 언어는 어떤 종류의 언어인가, 작가는 언어가 예술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가, 우리말이 언어 예술의 훌륭한 매체가 되도록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 가 등등의 질문을 던지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래서 한국의 어느 작가가 이 작품의 형식과 주제로부터 영감을 받아 일 년 열두 달에 맞춰 혹은 사계절에 맞춰 한국 현대인의 삶과 문학을 조명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조심스럽게 가져본다. 이 작품의 번역 방식에 대해 간략히 설명을 덧붙이면, 번역에서 이 작품을 쓴 스펜서의 어휘 선택방식을 우선 존중하였다. 스펜서는 초서를 시인의 모범으로 삼아 초서풍의 중세 영어 단어와 어휘를 많이 발굴하여 영어를 갈고 다듬고 그 어휘를 풍성하게 하여 세계적인 문학 언어로 발전시키는 실험을 많이 하였다. 그 결과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는 그가 만들어 처음 사용한 단어, 새로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사용한 기존 단어, 그의 저술로부터 인용된 단어 등이 8,500여 개에 이른다. 그는 첫 출간시인 <양치기의 달력>에서부터 라틴어나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영어 단어들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낮은 계층의 양치기들 수준에 맞춰 앵글로 색슨 영어 고유의 단어와 어휘들을 많이 찾아내고 만들어 내어 사용하고 있다. 스펜서 당시에도 거의 쓰이지 않던 영어 고어 단어들과 어휘로 가득 찬 작품인지라 동시대인들도 이 시를 읽기 힘들었다. 그래서 스펜서가 이 시를 헌정했던 필립 시드니 경조차 「시의 변호」에서 스펜서가 이 시에서 쓴 의도적인 고어체를 ‘옛 시골말’이라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옮긴이는 <양치기의 달력>을 번역하면서 스펜서가 자신이 원하는 의미와 운율 등을 살리기 위해 외국어에서 영어로 굳어진 단어 대신 순 영어를 변형시켜 쓴 단어와 표현, 그리고 토박이 영어 단어들을 순우리말로 번역하고자 노력하였다. 예를 들어, 스펜서는 「6월」 103행(번역 작품의 행수)에서 ‘유혹하다’라는 의미로 라틴어에서 유래한 ‘seduce’ 대신 중세 영어인 ‘underfong’을 ‘seduce’의 의미로 영어에서 처음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유혹’이라는 한자어가 들어 있는 우리말 대신 ‘꼬여내다’는 순우리말로 번역해보았다. 또 「9월」 243행에서 ‘마음을 산란하게 하다’는 뜻으로 앵글로 색슨어에서 유래한 영어인 ‘forhaile’이 라틴어에서 유래한 ‘distract’ 대신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번역에서도 ‘산란’이라는 한자어 대신 순 우리말로 ‘흩어 어지럽게 하는’으로 번역하였다. 430여 년 전에 쓰였으면서 의도적으로 그 보다 150여 년 전의 중세풍 고어체로 쓰인 이 고전 작품을 번역하면서 가졌던 또 하나의 고민은, 독자들이 시대적 공간적 차이를 느끼도록 원문의 문법, 구문을 그대로 살려 껄끄럽고 어색한 투로 번역할 것인가 혹은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현대어로 이 시를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만일 스펜서의 고어체 말투를 우리말로 살리고자 한다면, 우리나라 조선 시대 초기의 말투로 돌아가야 하는데 조선시대 초기의 말투를 옮긴이가 알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그럴 경우 현대 한국의 독자들이 이 작품에 다가가기는 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옮긴이는 현대 우리말 표현을 쓰되 번역 언어의 다소 거친 결이 느껴지더라도 원문이 지닌 문학적 비유, 상징, 의미 등을 정확하고 충실하게 살리는 번역을 중요시했고, 현대 한국 독자도 대중 매체를 통해 친숙하여 크게 거부감이 없을 고어체 말투를 자주 사용하여 이 작품에서 강조하고 있는 언어와 작품 형식의 고전적인 성격을 전달하고자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옮긴이가 번역 작품의 가독성을 덜 강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The Shepheardes Calender는 우리말로 번역함으로써 이제 <양치기의 달력>이 된다. 영어로 쓰인 작품이라 하더라도 번역가의 작업을 통해 우리말로 번역되었을 때에 그 작품은 우리의 작품, 우리말 작품이 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도록 번역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번역가는 외국 문학의 많은 보물을 우리 문학의 보물로 만드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영어와 우리말의 차이를 생각할 때 번역 과정에서 영어 원문의 많은 것이 사라질 수 있지만, 영어에는 없는 우리말이 가진 많은 보배로움을 담은 작품이 재탄생될 수 있다. 스펜서가 영어를 세계적인 언어로 만들고자 기울인 정성과 사랑과 노력은 후대 영국 문인들에게도 이어졌고 이후 수백 년에 걸친 그 전통이 영문학을 세계의 문학으로 만든 가장 큰 힘이라는 것을 <양치기의 달력> 번역 과정 중에 매우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문학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작업과 더불어, 외국의 문학 보물들을 한글로 공들여 캐오는 정교하고도 고된 번역작업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문학과 우리의 글을 세계화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런 생각들과 더불어 부족한 능력을 다하여 The Shepheardes Calender를 우리말로 쓴 <양치기의 달력>으로 재탄생시켜보고자 고심했다. 옮긴이에게 있어 이번 번역작업은 아름다운 영어 문장을 표현하는데 부족하지 않은 우리말 어휘의 풍요로움과 우리말 자체가 가진 음악성을 새삼 느낀 기회였고, 번역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생각할 기회가 되었다. 16세기 잉글랜드에서는 영어의 철자나 발음과 의미, 쉼표, 마침표, 영시의 운율과 형식, 장르, 시어 등 영어와 영시의 매우 많은 것이 고정되거나 확립되지 않고 실험되는 과정 중에 있었다. 그래서 스펜서는 그리스어, 라틴어의 운율과 다른 영어식 운율과 리듬을 찾고자 자신의 작품 속에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하였다. 스펜서의 시의 형식적 실험 정신을 염두에 두고 <양치기의 달력>을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그가 실험한 운율과 리듬을 어떻게 우리말로 살릴까 고심하여, 번역에서 내내 맞추기는 힘들었지만, 우리 시조의 정형시 운율들, 3.4, 4.4 혹은 일본에서 들여와 정착된 5.7조에 맞춰 번역하고자 하였다. 영시를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점이 많은데, 스펜서를 ‘시인 중의 시인’, ‘시인의 군주’로 만든 그의 시어의 다양한 음악적 효과를 영어와 한글의 차이 때문에 거의 살릴 수 없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 그리고 스펜서는 각 목가의 소재와 주제에 따라 연의 행수에도 세심한 신경을 써서 다양한 행수의 연을 사용한다. 따라서 그가 각 목가에서 시도한 주제에 따라 사용한 연의 행수는 그대로 살려 번역하였다. 스펜서가 운율과 의미 전달을 위해 사용한 쉼표, 마침표 등은 원작대로 표기하여도 상관없을 듯한 곳에는 그대로 표기하였고, 원작대로 표기할 경우 번역시에서 호흡이 너무 길어지거나 짧아지고 또 의미 전달이 매끄럽지 않을 경우 옮긴이의 판단에 따라 쉼표와 마침표를 찍었다. 우리말에서 쓰지 않는 콜론이나 세미콜론의 경우에는 쉼표나 마침표로 대신하였다. 원작에는 매 목가마다 이 케이의 주제 해설이 목가 앞에 그리고 주석, 주해들이 뒤에 붙어있다. 각 목가의 내용을 요약 설명하는 주제는 모두 번역하였다. 그런데 주석과 주해의 많은 부분이 당시 독자들에게도 어려운 고어에 대한 설명인데, 우리말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이미 그 의미가 번역되므로 그것들은 번역하지 않았다. 대신 번역 작품에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는 옮긴이가 주석과 주해를 달거나 이 케이의 것을 번역하여 달았는데 그 경우에는 (E.K.)라고 주석 끝에 출전을 밝혀놓았다. <양치기의 달력>이 한글로 처음 번역되어 출간되는 데 여러분의 도움을 받았다. 무엇보다, 생소하고 대중성도 크게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은 영국 르네상스 시대 고전 작품의 번역 출간을 선뜻 맡아 준 한국문화사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크다. 그리고 더위와 장마가 악순환을 거듭한 올해 한국의 여름에 소중한 시간을 쪼개 독자의 입장에서 원고를 읽어주고 귀한 의견을 준 윤선경 교수, 조은기 선생, 우지숙 선생, 김수현에게 마음 깊이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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