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가는 세월과 흐르는 사람들>은 지난 2, 3년 동안에 몇 개 문학 월간지들에 발표한 소설들 모음이다. 읽어 보면 아시겠지만 형식면에서 조금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다 읽고 나면 ‘아, 역시…….’ 하고 납득이 될 것으로 믿는다.
실제로 이 작품들 중의 첫 작품이 발표가 되었을 때도, 이 자리에서 이름까지 밝히지는 않겠지만, 매우 그 역량이 보증되어 있던 두 작가께서 “역시 선생님이시군요. 별것도 아닌 이야기로 이렇게도 멋지게 참으로 읽을 맛나게 쓰셨군요. 역시… 역시…” 하고 치하를 해 주어서 나도 나대로 용기백배로 열을 냈던 것이었다.
이렇게 나는 금년에 80나이로 이 책을 내면서 나 나름대로 일말의 보람까지 느끼는데, 그렇다! 이 책 <가는 세월과 흐르는 사람들>은 이제 80나이로 접어든 바로 나 자신이 오늘 이 자리에서 느끼는 내가 살아온 인생 그 자체의 단적인 소회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지나온 우리 작단을 사그리 훑어보더라도, 1955년 약관 24세로 출발하여, 오늘 2010년 80나이에 들어서기까지, 55년간을 줄곧 현역으로 활동하며, 이 나이에 들어서자마자 또 이만한 소설집 한 권이라도 낸 작가가, 과연 나 말고, 우리 작단 백 년 동안에 또 누가 있을까. 지금 이렇게까지 자기자랑을 하는 것은 조금 주책맞은 지나친 짓일까?!
아무튼 나는 이제 80나이로, 참으로 파란만장의 험한 삶을 겪으며 바로 이 시각, 여기까지 이르러 왔다. 어찌 만감이 없을 것인가. 나름대로 혼자서 은밀하게나마 대견하게도 느낀다.
그리고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여전히 많다. 바로 이 점은 또한 너무너무 요행스럽다. 그리고 그렇다! 이렇게 늙어서도 할 일이 여전히 많다는 것 이상으로 축복받은 인생이 달리 있을까. 그야말로 늙을 틈이 없을 정도로 나는 앞으로도 할 일이 많다. 더더 많다.
하여, 앞으로도 계속 성심껏, 젊은이들 못지않게 화끈하게 내 문학을 해 나갈 것이다. 그 점을 거듭 새삼 다짐을 하며……
다시 著者의 몇 마디
이 장편소설은 본시 지금으로부터 36년 전인 1978년에 玄岩社에서 처음 단행본으로 出刊했었는데, 작금에 와서 몇몇 후배들께서 이 작품은 본인의 장편소설 중에서도 가장 대표작으로 꼽혀야 하지 않겠느냐며, 특히 2014년 오늘의 남북관계도 36년 전 그 무렵보다도 엄청 달라진 마당이지만, 이 작품이 내보이는 메시지는 여전히 우리네 남북관계의 생생한 핵심을 躍如하게 내보이고 있지 않느냐고 하며 再 出刊을 강하게 권하여 마지않았다.
그러고 보면 새로 2000년도에 들어, 본인의 장편소설들인 「소시민」과 「남녘사람 북녘사람」은,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헝가리어, 폴랜드어, 체코어, 러시아어 등, 그 밖에도 전세계 10여 개 나라에 현지어로 변역되어 있는 마당이지만, 이 작품은 국내에서도 그렇게 1978년에 「그 겨울의 긴 계곡」이라는 제목으로 玄岩社에서 나온 뒤로는 그냥 死藏되어 있었던 것이어서, 이 참에 “아침책상”社를 통해 다시 出刊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바로 두 달 전에는 독일에서 본인의 단편소설집인 『脫鄕』도 하이케 리 씨의 훌륭한 번역으로 現地 베를린에서 마악 出刊되어 있는 마당이라, 그이에게도 소설 제목까지 새로 “남과 북, 門 열리나”라고 고친 이 책을 곧장 보낼 생각이다.
이 소설을 36년 만에 다시 내면서 몇 마디 그간의 사정을 나름대로 밝혀둔다.
2014년 2월 16일
오늘의 한반도 문제를 거론하는 양태들, 언설들은, 천편일률, 너무너무 무겁지나 않은지요. 하루하루 오늘의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살갗에 자세히는 와 닿지가 않지는 않은지요. 그야 그 논지들 하나하나는 죄다 지당하고, 일리들이 있어 보이지만, 백년하청, 지당하고 일리만 있어서 대체 어쩌겠다는 말입니까. 못내 지겹기도 하다는 말입니다.
일단은 아주아주 쉽게 적절하게, 누구나가 정신이 번쩍 들게, 장작 빠개듯이 빠개서 보여 줄 길은 없겠는지요. ... 지난 반세기 넘어, 타려에 의해 막혔던 우리 남북의 사람살이가, 21세기가 열린 현금에 와서 실제로 어떤 모양새를 지니고 있는지, 우선 한눈에, 딱 부러지게, 보아내기부터 하자는 것이 감히 말하자면, 바로 이 책입니다.
남북 통일이라는 우리의 역사도 서푼어치 머리로 기획을 세울 일이 따로 있지, 애당초에 그런 식 일변도로만 접근할 때가, 아직은 아닙니다.
이 책은 지난 50년간 이 땅에서 소설을 써온 저자 자신의 오늘과 마주선 극히 소략한 문학적 총괄이라는 뜻까지 담겨 있다고 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독자들도 짐작하겟지만 필자의 소설들은 장편, 중편, 단편을 통틀어서 우리네 남북 분단 상황을 떠나서는 애당초에 설 자리가 없다. 그런데 필자의 고집이 묻어난 이 소설들이 외국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하니 기쁘기 한량없다.
이번에 '일송포켓북'에서 이런 신선한 포켓북 기획을 한 것도 거듭 박수를 보내고 싶고, 필자의 소설들이 우리네 젊은이들에게도 아무쪼록 많이 읽혀 반세기가 넘은 분단을 밀어내고 통일을 끌어오는 데 작은 씨앗이 되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