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놈 율무는 아주 대단해. 비오고 바람불면 한꺼번에 쓰러졌다가 비가 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하게 일어선다고. 대단한 생명력이지. 파는 또 어떻구. 뿌리를 싹 자르고 심어야 크게 자라니 얼마나 신기해.
사람도 마찬가지야. 바꾸려면 뿌리를 바꿔야지, 제도나 이 데올로기가 아니여. 몇년 전부터 농사는 내 먹을 만큼만 하고 나무를 주로 키워. 없는걸 만들어내는 건 농업밖에 없어. 상업이야 있는 물건 사고파는 거고 공업도 모양만 바꾸는 거 아냐. 식물만 새로운 걸 만들어내지.
내가 나무와 풀을 좋아하는 건 그것들로부터 세상살이 이치를 배우기 때문이지. 한 자도 안되는 도라지는 겨울 땅 속에서 완전히 얼었다가 봄이 되면 어김없이 다시 살아나. 시련을 달게 이기고 일어 서는 게 사람보다 나아.
나무는 동서남북 사방으로 가지 뻗으며 사는데 빛 많이 받는 남쪽 가지가 북쪽보다 길고 크지. 그렇다고 북쪽 가지가 남쪽으로 가진 않아. 사람은 어떤가, 편하게 살겠다고 농촌을 버리고 다들 도시로 갔잖아. 그래서 남은 게 뭐야. 눈에 쌍심지 돋우고 분초 다투며 산 끝에 다들 나가 떨어지잖아.
도시에서는 요즘 매일 30명이 자살을 한다며. 남 탓할 것 없어. 서울 가면 큰 수나 날 줄 알고 남부여대하고 몰려간 거 아냐. 어떤 사람이 취직해 열심히 일했더니 과장 부장 사장된 다음 송장이 되더라는 농담도 있더구만.
내가 좋아하는 도연명 말처럼 '헛살아야 해'. 이루지 못하고 흔적을 남기지 못한다 해서 아쉬워할 거 없어. 괜히 뭔가 이루려고 아등바등하지 말고 그저 살아있으니 산다는 생각으로 단순하게 살면 돼.
마누라는 오륙년 전에 죽었고 애들(3남3녀)은 모두 나가 살아. 고등학교 나온 놈도 있고 초등학교만 마 놈도 있어. 막내딸은 공부 지지리 못했는데 시집가서 잘만 살아.처음 혼자 됐을때는 미치겠더니 차차 익숙해지더구만. 혼자사니 생활이 단순해져 좋아. 결국은 혼자 살고 죽는거야. 잘 산다는 건 옳게 사는거지 사람 많은데 따라가며 사는 게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