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헤더배너
상품평점 help

분류

이름:천성래

최근작
2022년 10월 <정본 국경의 아침 10>

12

고양이와 소녀

글쓰기 30년 만에 가장 설레는 순간입니다. 작가는 소설집을 통해서 자신의 문학을 가다듬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왜 이 시대를 살아오면서 이렇게 헐레벌떡 살아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길을 걸어온 세월, 내 영혼은 그 세월의 무게에 눌려 여전히 꽃을 피워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이따금씩 두렵기도 하였지요. 내가 보고 듣고 느낀 우리 삶의 모습, 그 궤적을 비껴갈 수 없는 우리들의 숙명이 역사의 길 위에 여전히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렇게라도 굽은 허리를 펴고 걸어온 길을 되돌아봅니다. 결코 슬프거나 후회 같은 삶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누구는 돈을 벌었다고 하고, 어떤 누군가는 높은 지위를 얻었다고 합니다. 또다른 누구는 명예를 얻어 존경을 받는다고 합니다. 새로운 누군가는 권력의 이편에 합류해서 상당한 권세와 힘을 얻었다고도 합니다. 원고지 한 칸을 채우며 날마다 땀을 흘리며 엉덩이 진물 나게 바보처럼 살아온 나는 그러나 아무런 훈장 없음이 서글퍼지는 밤입니다. 돈도 명예도 권세도 얻지 못한 바보, 개인의 행복조차 누리지 못한 바보, 여기 그런 사람이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어보려고 큰맘을 먹었답니다. 그리고 세상이 참으로 많이 좋아졌음을 실감합니다. 아무런 두려움 없이 이런 글을 세상에 띄워보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 정말 우리는 행복한 시대에 살고 있나 봅니다. 정말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행복할까요? 우리는 정말 이 시대를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누가 이런 물음에 대답을 해줄 수 있을까요. 그저 한번 생각해 보자는 뜻으로 이 작품들을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엄청난 의미도 없습니다. 그저 아,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굽이굽이 이런 일들이 있었으며, 우리는 이런 역사의 굴레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민초들이었음을 한 번만이라도 음미해주셨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정말 한 번쯤 살만한 세상이라 느끼셨다면 잠시 손을 뻗어 이 책의 의미를 되새겨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혹여 이 글을 통해 우리들의 삶이 살짝 빛날 수 있다면 더 없는 축복이겠죠. 혹은 모르는 일입니다. 이 책을 통해 누군가의 삶이 지금보다 조금은 밝고 빛나고 좀 더 바른 길이 열리게 될 줄도 말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문학을 처음 시작할 때 다짐했던 것처럼,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해서라도 저는 바른 글을 쓸 것이며, 이 글을 통해 저와 함께 하는 모든 분들의 삶에 축복이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국경의 아침 1

제5부 <강토(疆土) 삼천리>를 시작하면서 제5부 <강토 삼천리>를 떨리는 마음으로 시작하여 이제 그 첫 책을 세상에 내보낸다. 제4부를 집필하며 시작된 코로나는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기세를 더해가고 있다. 인류의 권력에 맞서기라도 하듯 코로나는 우리들 생활 깊숙이 침투해 우리의 삶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강토 삼천리>를 쓰는 내내 인간으로서 자연(自然)과 우주(宇宙)에 관한 공손한 예의(禮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것은 제4부 서문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이상, 가치, 행복 같은 추상적 언어들과 궤를 같이 한다. 인간이 비록 다른 생명체보다 지능이 뛰어나서 엄청난 문명을 누리며 세상을 호령한다 해도 절대 위대한 것이 아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류의 욕망이 만들어낸 고약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여전히 우리 곁에 복병(伏兵)처럼 존재하고 있다.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라 영원히 바이러스와 싸워 이겨내는 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중에도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와 직면하게 된다. 가족을 위해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고 그 돈으로 쌀을 팔고 의복도 사야 한다. 인간이 숭고한 척해도 사실 별 거 아닌 것이다. 제아무리 고고한 누대(樓臺)에 앉은 사람도 먹고 싸는 것이 기본인 것을 어쩔 것인가. 인간이 좀 더 고개 숙이고 겸손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코로나를 퇴치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는 세상의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한다. 소설 쓰는 일을 평생 직업으로 삼고 있는 나는 다만 코로나가 정치 도구화 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인류의 시험대는 이번 코로나가 마지막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제5부 <강토 삼천리>는 이렇듯 심란한 마음의 갈피에서 잉태한 작품이다. 내가 여태 살아오면서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하던 시기인지라 항상 죄인 같은 심정으로 원고를 메웠다. 세계는 여전히 격동치고 있으며 풍랑처럼 요동치는 국제정세, 국가 간의 힘겨루기, 남북의 급변사태, 국내정치 환경의 변화 등을 보면서 집필된 작품이기에 제5부를 시작하기까지 몹시 심신이 고달팠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원고지 매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대목이라 작가의 힘은 파하게 되고 책상 앞에서 일어서기 힘들 정도로 온몸이 오그라들었지만 캄캄한 현기증마저도 작품에 대한 나의 열정을 주저앉힐 수는 없었다. 제5부 9권(1천 6백매), 10권(1천 7백매)은 부제와 같이 강토 삼천리를 오가며 질곡(桎梏)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운명적 인물들의 삶이 펼쳐진다. 제4부<저 구름 흘러흘러>가 목숨을 담보한 유랑(流浪)의 길이었다면 제5부<강토 삼천리>는 유랑의 역사 위에서 이제 새롭게 뿌리[根〕를 내리고 살아보려는 민중들의 몸부림이 주를 이루게 된다. 남북분단이란 운명이 만들어놓은 징검다리 같은 삶은 발을 잘못 디디면 허방에 빠져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생이 그렇듯, 어떤 인물은 제대로 발을 내딛기도 하고 어떤 인물은 그만 수렁에 빠지게도 되는 것이다. 제1부, 제2부가 공화국의 역사, 체제, 문화와 양식 등을 의복처럼 두르는 이야기를 펼쳐온 것이라면 제3부는 공화국의 정치적 혼돈, 주민 삶의 핍박, 주민들의 의식 및 정신의 변화, 남북 대치에 따른 공화국의 철저한 위장 등의 모습이 저층에 깔려 있고, 제4부는 가족의 의미, 인생의 이별 그리고 진정한 삶을 찾아 역경 속에서 모험을 하는 과정이 나타나고 있다. 제5부는 강토 삼천리를 떠돌며 질곡의 삶을 살아오면서 이제 뿌리를 내려 보려는 민초들의 삶이 펼쳐지고 있다. 제9권: 심장을 주오, 여우(女優), 동침, 곰열, 만월, 마음의 감옥, 의문의 지령, 가장 위대한 지령, 찬란하고 위대한(1), 제10권: 찬란하고 위대한(2), 미로의 종소리, 하나원, 청배(請拜), 야밤삼경의 그림자, 일촉즉발, 최후의 허락된 시간, 혼돈의 장(章), 에필로그 등으로 전개되고 있다. 제5부는 이 대하소설을 마감하는 대장정으로서 등장인물들의 삶이 어떻게 자리매김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삶이 결과적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만큼의 가치를 지닌 삶이 되는지 어떤지는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치열했던 그들의 삶을 섣불리 평가할 수는 없을 뿐더러 그들의 삶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하소설 <국경의 아침>에 인생을 저당 잡힌 듯 살아오면서 사람이 인간답게 사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1만 2천매라는 방대한 원고를 써내려가면서 그 안에 녹아 있는 가족의 의미, 사랑과 이별, 정치와 사상의 투쟁성, 파멸과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질곡의 순간들을 실제처럼 목도하게 되었다. 그런 중에도 새롭게 싹튼 강인한 생명력을 느꼈고, 우리의 아픈 역사에서 희망이란 끈을 놓아버릴 수가 없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원고지에 마지막 마침표를 찍게 되는 날, 이제 편안하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단잠을 좀 자고 싶을 텐데 그런 황홀한 약속을 하기에는 불면의 밤이 아직은 너무 깊은 듯도 하다. 이렇게 원고지를 메우고 있는 깊은 밤에도 강토 삼천리에 떠다니는 가엾은 민중들의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2021년 5월 천 성 래

국경의 아침 10

제5부 <강토(疆土) 삼천리>를 시작하면서 제5부 <강토 삼천리>를 떨리는 마음으로 시작하여 이제 그 첫 책을 세상에 내보낸다. 제4부를 집필하며 시작된 코로나는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기세를 더해가고 있다. 인류의 권력에 맞서기라도 하듯 코로나는 우리들 생활 깊숙이 침투해 우리의 삶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강토 삼천리>를 쓰는 내내 인간으로서 자연(自然)과 우주(宇宙)에 관한 공손한 예의(禮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것은 제4부 서문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이상, 가치, 행복 같은 추상적 언어들과 궤를 같이 한다. 인간이 비록 다른 생명체보다 지능이 뛰어나서 엄청난 문명을 누리며 세상을 호령한다 해도 절대 위대한 것이 아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류의 욕망이 만들어낸 고약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여전히 우리 곁에 복병(伏兵)처럼 존재하고 있다.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라 영원히 바이러스와 싸워 이겨내는 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중에도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와 직면하게 된다. 가족을 위해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고 그 돈으로 쌀을 팔고 의복도 사야 한다. 인간이 숭고한 척해도 사실 별 거 아닌 것이다. 제아무리 고고한 누대(樓臺)에 앉은 사람도 먹고 싸는 것이 기본인 것을 어쩔 것인가. 인간이 좀 더 고개 숙이고 겸손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코로나를 퇴치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는 세상의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한다. 소설 쓰는 일을 평생 직업으로 삼고 있는 나는 다만 코로나가 정치 도구화 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인류의 시험대는 이번 코로나가 마지막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제5부 <강토 삼천리>는 이렇듯 심란한 마음의 갈피에서 잉태한 작품이다. 내가 여태 살아오면서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하던 시기인지라 항상 죄인 같은 심정으로 원고를 메웠다. 세계는 여전히 격동치고 있으며 풍랑처럼 요동치는 국제정세, 국가 간의 힘겨루기, 남북의 급변사태, 국내정치 환경의 변화 등을 보면서 집필된 작품이기에 제5부를 시작하기까지 몹시 심신이 고달팠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원고지 매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대목이라 작가의 힘은 파하게 되고 책상 앞에서 일어서기 힘들 정도로 온몸이 오그라들었지만 캄캄한 현기증마저도 작품에 대한 나의 열정을 주저앉힐 수는 없었다. 제5부 9권(1천 6백매), 10권(1천 7백매)은 부제와 같이 강토 삼천리를 오가며 질곡(桎梏)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운명적 인물들의 삶이 펼쳐진다. 제4부<저 구름 흘러흘러>가 목숨을 담보한 유랑(流浪)의 길이었다면 제5부<강토 삼천리>는 유랑의 역사 위에서 이제 새롭게 뿌리[根〕를 내리고 살아보려는 민중들의 몸부림이 주를 이루게 된다. 남북분단이란 운명이 만들어놓은 징검다리 같은 삶은 발을 잘못 디디면 허방에 빠져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생이 그렇듯, 어떤 인물은 제대로 발을 내딛기도 하고 어떤 인물은 그만 수렁에 빠지게도 되는 것이다. 제1부, 제2부가 공화국의 역사, 체제, 문화와 양식 등을 의복처럼 두르는 이야기를 펼쳐온 것이라면 제3부는 공화국의 정치적 혼돈, 주민 삶의 핍박, 주민들의 의식 및 정신의 변화, 남북 대치에 따른 공화국의 철저한 위장 등의 모습이 저층에 깔려 있고, 제4부는 가족의 의미, 인생의 이별 그리고 진정한 삶을 찾아 역경 속에서 모험을 하는 과정이 나타나고 있다. 제5부는 강토 삼천리를 떠돌며 질곡의 삶을 살아오면서 이제 뿌리를 내려 보려는 민초들의 삶이 펼쳐지고 있다. 제9권: 심장을 주오, 여우(女優), 동침, 곰열, 만월, 마음의 감옥, 의문의 지령, 가장 위대한 지령, 찬란하고 위대한(1), 제10권: 찬란하고 위대한(2), 미로의 종소리, 하나원, 청배(請拜), 야밤삼경의 그림자, 일촉즉발, 최후의 허락된 시간, 혼돈의 장(章), 에필로그 등으로 전개되고 있다. 제5부는 이 대하소설을 마감하는 대장정으로서 등장인물들의 삶이 어떻게 자리매김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삶이 결과적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만큼의 가치를 지닌 삶이 되는지 어떤지는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치열했던 그들의 삶을 섣불리 평가할 수는 없을 뿐더러 그들의 삶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하소설 <국경의 아침>에 인생을 저당 잡힌 듯 살아오면서 사람이 인간답게 사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1만 2천매라는 방대한 원고를 써내려가면서 그 안에 녹아 있는 가족의 의미, 사랑과 이별, 정치와 사상의 투쟁성, 파멸과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질곡의 순간들을 실제처럼 목도하게 되었다. 그런 중에도 새롭게 싹튼 강인한 생명력을 느꼈고, 우리의 아픈 역사에서 희망이란 끈을 놓아버릴 수가 없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원고지에 마지막 마침표를 찍게 되는 날, 이제 편안하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단잠을 좀 자고 싶을 텐데 그런 황홀한 약속을 하기에는 불면의 밤이 아직은 너무 깊은 듯도 하다. 이렇게 원고지를 메우고 있는 깊은 밤에도 강토 삼천리에 떠다니는 가엾은 민중들의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2021년 5월 천 성 래

국경의 아침 2

제5부 <강토(疆土) 삼천리>를 시작하면서 제5부 <강토 삼천리>를 떨리는 마음으로 시작하여 이제 그 첫 책을 세상에 내보낸다. 제4부를 집필하며 시작된 코로나는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기세를 더해가고 있다. 인류의 권력에 맞서기라도 하듯 코로나는 우리들 생활 깊숙이 침투해 우리의 삶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강토 삼천리>를 쓰는 내내 인간으로서 자연(自然)과 우주(宇宙)에 관한 공손한 예의(禮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것은 제4부 서문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이상, 가치, 행복 같은 추상적 언어들과 궤를 같이 한다. 인간이 비록 다른 생명체보다 지능이 뛰어나서 엄청난 문명을 누리며 세상을 호령한다 해도 절대 위대한 것이 아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류의 욕망이 만들어낸 고약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여전히 우리 곁에 복병(伏兵)처럼 존재하고 있다.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라 영원히 바이러스와 싸워 이겨내는 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중에도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와 직면하게 된다. 가족을 위해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고 그 돈으로 쌀을 팔고 의복도 사야 한다. 인간이 숭고한 척해도 사실 별 거 아닌 것이다. 제아무리 고고한 누대(樓臺)에 앉은 사람도 먹고 싸는 것이 기본인 것을 어쩔 것인가. 인간이 좀 더 고개 숙이고 겸손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코로나를 퇴치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는 세상의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한다. 소설 쓰는 일을 평생 직업으로 삼고 있는 나는 다만 코로나가 정치 도구화 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인류의 시험대는 이번 코로나가 마지막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제5부 <강토 삼천리>는 이렇듯 심란한 마음의 갈피에서 잉태한 작품이다. 내가 여태 살아오면서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하던 시기인지라 항상 죄인 같은 심정으로 원고를 메웠다. 세계는 여전히 격동치고 있으며 풍랑처럼 요동치는 국제정세, 국가 간의 힘겨루기, 남북의 급변사태, 국내정치 환경의 변화 등을 보면서 집필된 작품이기에 제5부를 시작하기까지 몹시 심신이 고달팠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원고지 매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대목이라 작가의 힘은 파하게 되고 책상 앞에서 일어서기 힘들 정도로 온몸이 오그라들었지만 캄캄한 현기증마저도 작품에 대한 나의 열정을 주저앉힐 수는 없었다. 제5부 9권(1천 6백매), 10권(1천 7백매)은 부제와 같이 강토 삼천리를 오가며 질곡(桎梏)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운명적 인물들의 삶이 펼쳐진다. 제4부<저 구름 흘러흘러>가 목숨을 담보한 유랑(流浪)의 길이었다면 제5부<강토 삼천리>는 유랑의 역사 위에서 이제 새롭게 뿌리[根〕를 내리고 살아보려는 민중들의 몸부림이 주를 이루게 된다. 남북분단이란 운명이 만들어놓은 징검다리 같은 삶은 발을 잘못 디디면 허방에 빠져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생이 그렇듯, 어떤 인물은 제대로 발을 내딛기도 하고 어떤 인물은 그만 수렁에 빠지게도 되는 것이다. 제1부, 제2부가 공화국의 역사, 체제, 문화와 양식 등을 의복처럼 두르는 이야기를 펼쳐온 것이라면 제3부는 공화국의 정치적 혼돈, 주민 삶의 핍박, 주민들의 의식 및 정신의 변화, 남북 대치에 따른 공화국의 철저한 위장 등의 모습이 저층에 깔려 있고, 제4부는 가족의 의미, 인생의 이별 그리고 진정한 삶을 찾아 역경 속에서 모험을 하는 과정이 나타나고 있다. 제5부는 강토 삼천리를 떠돌며 질곡의 삶을 살아오면서 이제 뿌리를 내려 보려는 민초들의 삶이 펼쳐지고 있다. 제9권: 심장을 주오, 여우(女優), 동침, 곰열, 만월, 마음의 감옥, 의문의 지령, 가장 위대한 지령, 찬란하고 위대한(1), 제10권: 찬란하고 위대한(2), 미로의 종소리, 하나원, 청배(請拜), 야밤삼경의 그림자, 일촉즉발, 최후의 허락된 시간, 혼돈의 장(章), 에필로그 등으로 전개되고 있다. 제5부는 이 대하소설을 마감하는 대장정으로서 등장인물들의 삶이 어떻게 자리매김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삶이 결과적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만큼의 가치를 지닌 삶이 되는지 어떤지는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치열했던 그들의 삶을 섣불리 평가할 수는 없을 뿐더러 그들의 삶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하소설 <국경의 아침>에 인생을 저당 잡힌 듯 살아오면서 사람이 인간답게 사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1만 2천매라는 방대한 원고를 써내려가면서 그 안에 녹아 있는 가족의 의미, 사랑과 이별, 정치와 사상의 투쟁성, 파멸과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질곡의 순간들을 실제처럼 목도하게 되었다. 그런 중에도 새롭게 싹튼 강인한 생명력을 느꼈고, 우리의 아픈 역사에서 희망이란 끈을 놓아버릴 수가 없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원고지에 마지막 마침표를 찍게 되는 날, 이제 편안하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단잠을 좀 자고 싶을 텐데 그런 황홀한 약속을 하기에는 불면의 밤이 아직은 너무 깊은 듯도 하다. 이렇게 원고지를 메우고 있는 깊은 밤에도 강토 삼천리에 떠다니는 가엾은 민중들의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2021년 5월 천 성 래

국경의 아침 3

제5부 <강토(疆土) 삼천리>를 시작하면서 제5부 <강토 삼천리>를 떨리는 마음으로 시작하여 이제 그 첫 책을 세상에 내보낸다. 제4부를 집필하며 시작된 코로나는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기세를 더해가고 있다. 인류의 권력에 맞서기라도 하듯 코로나는 우리들 생활 깊숙이 침투해 우리의 삶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강토 삼천리>를 쓰는 내내 인간으로서 자연(自然)과 우주(宇宙)에 관한 공손한 예의(禮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것은 제4부 서문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이상, 가치, 행복 같은 추상적 언어들과 궤를 같이 한다. 인간이 비록 다른 생명체보다 지능이 뛰어나서 엄청난 문명을 누리며 세상을 호령한다 해도 절대 위대한 것이 아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류의 욕망이 만들어낸 고약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여전히 우리 곁에 복병(伏兵)처럼 존재하고 있다.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라 영원히 바이러스와 싸워 이겨내는 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중에도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와 직면하게 된다. 가족을 위해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고 그 돈으로 쌀을 팔고 의복도 사야 한다. 인간이 숭고한 척해도 사실 별 거 아닌 것이다. 제아무리 고고한 누대(樓臺)에 앉은 사람도 먹고 싸는 것이 기본인 것을 어쩔 것인가. 인간이 좀 더 고개 숙이고 겸손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코로나를 퇴치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는 세상의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한다. 소설 쓰는 일을 평생 직업으로 삼고 있는 나는 다만 코로나가 정치 도구화 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인류의 시험대는 이번 코로나가 마지막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제5부 <강토 삼천리>는 이렇듯 심란한 마음의 갈피에서 잉태한 작품이다. 내가 여태 살아오면서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하던 시기인지라 항상 죄인 같은 심정으로 원고를 메웠다. 세계는 여전히 격동치고 있으며 풍랑처럼 요동치는 국제정세, 국가 간의 힘겨루기, 남북의 급변사태, 국내정치 환경의 변화 등을 보면서 집필된 작품이기에 제5부를 시작하기까지 몹시 심신이 고달팠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원고지 매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대목이라 작가의 힘은 파하게 되고 책상 앞에서 일어서기 힘들 정도로 온몸이 오그라들었지만 캄캄한 현기증마저도 작품에 대한 나의 열정을 주저앉힐 수는 없었다. 제5부 9권(1천 6백매), 10권(1천 7백매)은 부제와 같이 강토 삼천리를 오가며 질곡(桎梏)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운명적 인물들의 삶이 펼쳐진다. 제4부<저 구름 흘러흘러>가 목숨을 담보한 유랑(流浪)의 길이었다면 제5부<강토 삼천리>는 유랑의 역사 위에서 이제 새롭게 뿌리[根〕를 내리고 살아보려는 민중들의 몸부림이 주를 이루게 된다. 남북분단이란 운명이 만들어놓은 징검다리 같은 삶은 발을 잘못 디디면 허방에 빠져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생이 그렇듯, 어떤 인물은 제대로 발을 내딛기도 하고 어떤 인물은 그만 수렁에 빠지게도 되는 것이다. 제1부, 제2부가 공화국의 역사, 체제, 문화와 양식 등을 의복처럼 두르는 이야기를 펼쳐온 것이라면 제3부는 공화국의 정치적 혼돈, 주민 삶의 핍박, 주민들의 의식 및 정신의 변화, 남북 대치에 따른 공화국의 철저한 위장 등의 모습이 저층에 깔려 있고, 제4부는 가족의 의미, 인생의 이별 그리고 진정한 삶을 찾아 역경 속에서 모험을 하는 과정이 나타나고 있다. 제5부는 강토 삼천리를 떠돌며 질곡의 삶을 살아오면서 이제 뿌리를 내려 보려는 민초들의 삶이 펼쳐지고 있다. 제9권: 심장을 주오, 여우(女優), 동침, 곰열, 만월, 마음의 감옥, 의문의 지령, 가장 위대한 지령, 찬란하고 위대한(1), 제10권: 찬란하고 위대한(2), 미로의 종소리, 하나원, 청배(請拜), 야밤삼경의 그림자, 일촉즉발, 최후의 허락된 시간, 혼돈의 장(章), 에필로그 등으로 전개되고 있다. 제5부는 이 대하소설을 마감하는 대장정으로서 등장인물들의 삶이 어떻게 자리매김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삶이 결과적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만큼의 가치를 지닌 삶이 되는지 어떤지는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치열했던 그들의 삶을 섣불리 평가할 수는 없을 뿐더러 그들의 삶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하소설 <국경의 아침>에 인생을 저당 잡힌 듯 살아오면서 사람이 인간답게 사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1만 2천매라는 방대한 원고를 써내려가면서 그 안에 녹아 있는 가족의 의미, 사랑과 이별, 정치와 사상의 투쟁성, 파멸과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질곡의 순간들을 실제처럼 목도하게 되었다. 그런 중에도 새롭게 싹튼 강인한 생명력을 느꼈고, 우리의 아픈 역사에서 희망이란 끈을 놓아버릴 수가 없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원고지에 마지막 마침표를 찍게 되는 날, 이제 편안하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단잠을 좀 자고 싶을 텐데 그런 황홀한 약속을 하기에는 불면의 밤이 아직은 너무 깊은 듯도 하다. 이렇게 원고지를 메우고 있는 깊은 밤에도 강토 삼천리에 떠다니는 가엾은 민중들의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2021년 5월 천 성 래

국경의 아침 4

제5부 <강토(疆土) 삼천리>를 시작하면서 제5부 <강토 삼천리>를 떨리는 마음으로 시작하여 이제 그 첫 책을 세상에 내보낸다. 제4부를 집필하며 시작된 코로나는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기세를 더해가고 있다. 인류의 권력에 맞서기라도 하듯 코로나는 우리들 생활 깊숙이 침투해 우리의 삶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강토 삼천리>를 쓰는 내내 인간으로서 자연(自然)과 우주(宇宙)에 관한 공손한 예의(禮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것은 제4부 서문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이상, 가치, 행복 같은 추상적 언어들과 궤를 같이 한다. 인간이 비록 다른 생명체보다 지능이 뛰어나서 엄청난 문명을 누리며 세상을 호령한다 해도 절대 위대한 것이 아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류의 욕망이 만들어낸 고약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여전히 우리 곁에 복병(伏兵)처럼 존재하고 있다.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라 영원히 바이러스와 싸워 이겨내는 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중에도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와 직면하게 된다. 가족을 위해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고 그 돈으로 쌀을 팔고 의복도 사야 한다. 인간이 숭고한 척해도 사실 별 거 아닌 것이다. 제아무리 고고한 누대(樓臺)에 앉은 사람도 먹고 싸는 것이 기본인 것을 어쩔 것인가. 인간이 좀 더 고개 숙이고 겸손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코로나를 퇴치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는 세상의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한다. 소설 쓰는 일을 평생 직업으로 삼고 있는 나는 다만 코로나가 정치 도구화 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인류의 시험대는 이번 코로나가 마지막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제5부 <강토 삼천리>는 이렇듯 심란한 마음의 갈피에서 잉태한 작품이다. 내가 여태 살아오면서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하던 시기인지라 항상 죄인 같은 심정으로 원고를 메웠다. 세계는 여전히 격동치고 있으며 풍랑처럼 요동치는 국제정세, 국가 간의 힘겨루기, 남북의 급변사태, 국내정치 환경의 변화 등을 보면서 집필된 작품이기에 제5부를 시작하기까지 몹시 심신이 고달팠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원고지 매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대목이라 작가의 힘은 파하게 되고 책상 앞에서 일어서기 힘들 정도로 온몸이 오그라들었지만 캄캄한 현기증마저도 작품에 대한 나의 열정을 주저앉힐 수는 없었다. 제5부 9권(1천 6백매), 10권(1천 7백매)은 부제와 같이 강토 삼천리를 오가며 질곡(桎梏)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운명적 인물들의 삶이 펼쳐진다. 제4부<저 구름 흘러흘러>가 목숨을 담보한 유랑(流浪)의 길이었다면 제5부<강토 삼천리>는 유랑의 역사 위에서 이제 새롭게 뿌리[根〕를 내리고 살아보려는 민중들의 몸부림이 주를 이루게 된다. 남북분단이란 운명이 만들어놓은 징검다리 같은 삶은 발을 잘못 디디면 허방에 빠져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생이 그렇듯, 어떤 인물은 제대로 발을 내딛기도 하고 어떤 인물은 그만 수렁에 빠지게도 되는 것이다. 제1부, 제2부가 공화국의 역사, 체제, 문화와 양식 등을 의복처럼 두르는 이야기를 펼쳐온 것이라면 제3부는 공화국의 정치적 혼돈, 주민 삶의 핍박, 주민들의 의식 및 정신의 변화, 남북 대치에 따른 공화국의 철저한 위장 등의 모습이 저층에 깔려 있고, 제4부는 가족의 의미, 인생의 이별 그리고 진정한 삶을 찾아 역경 속에서 모험을 하는 과정이 나타나고 있다. 제5부는 강토 삼천리를 떠돌며 질곡의 삶을 살아오면서 이제 뿌리를 내려 보려는 민초들의 삶이 펼쳐지고 있다. 제9권: 심장을 주오, 여우(女優), 동침, 곰열, 만월, 마음의 감옥, 의문의 지령, 가장 위대한 지령, 찬란하고 위대한(1), 제10권: 찬란하고 위대한(2), 미로의 종소리, 하나원, 청배(請拜), 야밤삼경의 그림자, 일촉즉발, 최후의 허락된 시간, 혼돈의 장(章), 에필로그 등으로 전개되고 있다. 제5부는 이 대하소설을 마감하는 대장정으로서 등장인물들의 삶이 어떻게 자리매김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삶이 결과적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만큼의 가치를 지닌 삶이 되는지 어떤지는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치열했던 그들의 삶을 섣불리 평가할 수는 없을 뿐더러 그들의 삶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하소설 <국경의 아침>에 인생을 저당 잡힌 듯 살아오면서 사람이 인간답게 사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1만 2천매라는 방대한 원고를 써내려가면서 그 안에 녹아 있는 가족의 의미, 사랑과 이별, 정치와 사상의 투쟁성, 파멸과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질곡의 순간들을 실제처럼 목도하게 되었다. 그런 중에도 새롭게 싹튼 강인한 생명력을 느꼈고, 우리의 아픈 역사에서 희망이란 끈을 놓아버릴 수가 없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원고지에 마지막 마침표를 찍게 되는 날, 이제 편안하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단잠을 좀 자고 싶을 텐데 그런 황홀한 약속을 하기에는 불면의 밤이 아직은 너무 깊은 듯도 하다. 이렇게 원고지를 메우고 있는 깊은 밤에도 강토 삼천리에 떠다니는 가엾은 민중들의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2021년 5월 천 성 래

국경의 아침 5

제5부 <강토(疆土) 삼천리>를 시작하면서 제5부 <강토 삼천리>를 떨리는 마음으로 시작하여 이제 그 첫 책을 세상에 내보낸다. 제4부를 집필하며 시작된 코로나는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기세를 더해가고 있다. 인류의 권력에 맞서기라도 하듯 코로나는 우리들 생활 깊숙이 침투해 우리의 삶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강토 삼천리>를 쓰는 내내 인간으로서 자연(自然)과 우주(宇宙)에 관한 공손한 예의(禮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것은 제4부 서문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이상, 가치, 행복 같은 추상적 언어들과 궤를 같이 한다. 인간이 비록 다른 생명체보다 지능이 뛰어나서 엄청난 문명을 누리며 세상을 호령한다 해도 절대 위대한 것이 아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류의 욕망이 만들어낸 고약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여전히 우리 곁에 복병(伏兵)처럼 존재하고 있다.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라 영원히 바이러스와 싸워 이겨내는 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중에도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와 직면하게 된다. 가족을 위해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고 그 돈으로 쌀을 팔고 의복도 사야 한다. 인간이 숭고한 척해도 사실 별 거 아닌 것이다. 제아무리 고고한 누대(樓臺)에 앉은 사람도 먹고 싸는 것이 기본인 것을 어쩔 것인가. 인간이 좀 더 고개 숙이고 겸손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코로나를 퇴치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는 세상의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한다. 소설 쓰는 일을 평생 직업으로 삼고 있는 나는 다만 코로나가 정치 도구화 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인류의 시험대는 이번 코로나가 마지막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제5부 <강토 삼천리>는 이렇듯 심란한 마음의 갈피에서 잉태한 작품이다. 내가 여태 살아오면서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하던 시기인지라 항상 죄인 같은 심정으로 원고를 메웠다. 세계는 여전히 격동치고 있으며 풍랑처럼 요동치는 국제정세, 국가 간의 힘겨루기, 남북의 급변사태, 국내정치 환경의 변화 등을 보면서 집필된 작품이기에 제5부를 시작하기까지 몹시 심신이 고달팠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원고지 매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대목이라 작가의 힘은 파하게 되고 책상 앞에서 일어서기 힘들 정도로 온몸이 오그라들었지만 캄캄한 현기증마저도 작품에 대한 나의 열정을 주저앉힐 수는 없었다. 제5부 9권(1천 6백매), 10권(1천 7백매)은 부제와 같이 강토 삼천리를 오가며 질곡(桎梏)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운명적 인물들의 삶이 펼쳐진다. 제4부<저 구름 흘러흘러>가 목숨을 담보한 유랑(流浪)의 길이었다면 제5부<강토 삼천리>는 유랑의 역사 위에서 이제 새롭게 뿌리[根〕를 내리고 살아보려는 민중들의 몸부림이 주를 이루게 된다. 남북분단이란 운명이 만들어놓은 징검다리 같은 삶은 발을 잘못 디디면 허방에 빠져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생이 그렇듯, 어떤 인물은 제대로 발을 내딛기도 하고 어떤 인물은 그만 수렁에 빠지게도 되는 것이다. 제1부, 제2부가 공화국의 역사, 체제, 문화와 양식 등을 의복처럼 두르는 이야기를 펼쳐온 것이라면 제3부는 공화국의 정치적 혼돈, 주민 삶의 핍박, 주민들의 의식 및 정신의 변화, 남북 대치에 따른 공화국의 철저한 위장 등의 모습이 저층에 깔려 있고, 제4부는 가족의 의미, 인생의 이별 그리고 진정한 삶을 찾아 역경 속에서 모험을 하는 과정이 나타나고 있다. 제5부는 강토 삼천리를 떠돌며 질곡의 삶을 살아오면서 이제 뿌리를 내려 보려는 민초들의 삶이 펼쳐지고 있다. 제9권: 심장을 주오, 여우(女優), 동침, 곰열, 만월, 마음의 감옥, 의문의 지령, 가장 위대한 지령, 찬란하고 위대한(1), 제10권: 찬란하고 위대한(2), 미로의 종소리, 하나원, 청배(請拜), 야밤삼경의 그림자, 일촉즉발, 최후의 허락된 시간, 혼돈의 장(章), 에필로그 등으로 전개되고 있다. 제5부는 이 대하소설을 마감하는 대장정으로서 등장인물들의 삶이 어떻게 자리매김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삶이 결과적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만큼의 가치를 지닌 삶이 되는지 어떤지는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치열했던 그들의 삶을 섣불리 평가할 수는 없을 뿐더러 그들의 삶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하소설 <국경의 아침>에 인생을 저당 잡힌 듯 살아오면서 사람이 인간답게 사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1만 2천매라는 방대한 원고를 써내려가면서 그 안에 녹아 있는 가족의 의미, 사랑과 이별, 정치와 사상의 투쟁성, 파멸과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질곡의 순간들을 실제처럼 목도하게 되었다. 그런 중에도 새롭게 싹튼 강인한 생명력을 느꼈고, 우리의 아픈 역사에서 희망이란 끈을 놓아버릴 수가 없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원고지에 마지막 마침표를 찍게 되는 날, 이제 편안하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단잠을 좀 자고 싶을 텐데 그런 황홀한 약속을 하기에는 불면의 밤이 아직은 너무 깊은 듯도 하다. 이렇게 원고지를 메우고 있는 깊은 밤에도 강토 삼천리에 떠다니는 가엾은 민중들의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2021년 5월 천 성 래

국경의 아침 6

제5부 <강토(疆土) 삼천리>를 시작하면서 제5부 <강토 삼천리>를 떨리는 마음으로 시작하여 이제 그 첫 책을 세상에 내보낸다. 제4부를 집필하며 시작된 코로나는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기세를 더해가고 있다. 인류의 권력에 맞서기라도 하듯 코로나는 우리들 생활 깊숙이 침투해 우리의 삶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강토 삼천리>를 쓰는 내내 인간으로서 자연(自然)과 우주(宇宙)에 관한 공손한 예의(禮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것은 제4부 서문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이상, 가치, 행복 같은 추상적 언어들과 궤를 같이 한다. 인간이 비록 다른 생명체보다 지능이 뛰어나서 엄청난 문명을 누리며 세상을 호령한다 해도 절대 위대한 것이 아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류의 욕망이 만들어낸 고약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여전히 우리 곁에 복병(伏兵)처럼 존재하고 있다.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라 영원히 바이러스와 싸워 이겨내는 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중에도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와 직면하게 된다. 가족을 위해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고 그 돈으로 쌀을 팔고 의복도 사야 한다. 인간이 숭고한 척해도 사실 별 거 아닌 것이다. 제아무리 고고한 누대(樓臺)에 앉은 사람도 먹고 싸는 것이 기본인 것을 어쩔 것인가. 인간이 좀 더 고개 숙이고 겸손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코로나를 퇴치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는 세상의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한다. 소설 쓰는 일을 평생 직업으로 삼고 있는 나는 다만 코로나가 정치 도구화 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인류의 시험대는 이번 코로나가 마지막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제5부 <강토 삼천리>는 이렇듯 심란한 마음의 갈피에서 잉태한 작품이다. 내가 여태 살아오면서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하던 시기인지라 항상 죄인 같은 심정으로 원고를 메웠다. 세계는 여전히 격동치고 있으며 풍랑처럼 요동치는 국제정세, 국가 간의 힘겨루기, 남북의 급변사태, 국내정치 환경의 변화 등을 보면서 집필된 작품이기에 제5부를 시작하기까지 몹시 심신이 고달팠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원고지 매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대목이라 작가의 힘은 파하게 되고 책상 앞에서 일어서기 힘들 정도로 온몸이 오그라들었지만 캄캄한 현기증마저도 작품에 대한 나의 열정을 주저앉힐 수는 없었다. 제5부 9권(1천 6백매), 10권(1천 7백매)은 부제와 같이 강토 삼천리를 오가며 질곡(桎梏)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운명적 인물들의 삶이 펼쳐진다. 제4부<저 구름 흘러흘러>가 목숨을 담보한 유랑(流浪)의 길이었다면 제5부<강토 삼천리>는 유랑의 역사 위에서 이제 새롭게 뿌리[根〕를 내리고 살아보려는 민중들의 몸부림이 주를 이루게 된다. 남북분단이란 운명이 만들어놓은 징검다리 같은 삶은 발을 잘못 디디면 허방에 빠져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생이 그렇듯, 어떤 인물은 제대로 발을 내딛기도 하고 어떤 인물은 그만 수렁에 빠지게도 되는 것이다. 제1부, 제2부가 공화국의 역사, 체제, 문화와 양식 등을 의복처럼 두르는 이야기를 펼쳐온 것이라면 제3부는 공화국의 정치적 혼돈, 주민 삶의 핍박, 주민들의 의식 및 정신의 변화, 남북 대치에 따른 공화국의 철저한 위장 등의 모습이 저층에 깔려 있고, 제4부는 가족의 의미, 인생의 이별 그리고 진정한 삶을 찾아 역경 속에서 모험을 하는 과정이 나타나고 있다. 제5부는 강토 삼천리를 떠돌며 질곡의 삶을 살아오면서 이제 뿌리를 내려 보려는 민초들의 삶이 펼쳐지고 있다. 제9권: 심장을 주오, 여우(女優), 동침, 곰열, 만월, 마음의 감옥, 의문의 지령, 가장 위대한 지령, 찬란하고 위대한(1), 제10권: 찬란하고 위대한(2), 미로의 종소리, 하나원, 청배(請拜), 야밤삼경의 그림자, 일촉즉발, 최후의 허락된 시간, 혼돈의 장(章), 에필로그 등으로 전개되고 있다. 제5부는 이 대하소설을 마감하는 대장정으로서 등장인물들의 삶이 어떻게 자리매김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삶이 결과적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만큼의 가치를 지닌 삶이 되는지 어떤지는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치열했던 그들의 삶을 섣불리 평가할 수는 없을 뿐더러 그들의 삶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하소설 <국경의 아침>에 인생을 저당 잡힌 듯 살아오면서 사람이 인간답게 사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1만 2천매라는 방대한 원고를 써내려가면서 그 안에 녹아 있는 가족의 의미, 사랑과 이별, 정치와 사상의 투쟁성, 파멸과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질곡의 순간들을 실제처럼 목도하게 되었다. 그런 중에도 새롭게 싹튼 강인한 생명력을 느꼈고, 우리의 아픈 역사에서 희망이란 끈을 놓아버릴 수가 없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원고지에 마지막 마침표를 찍게 되는 날, 이제 편안하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단잠을 좀 자고 싶을 텐데 그런 황홀한 약속을 하기에는 불면의 밤이 아직은 너무 깊은 듯도 하다. 이렇게 원고지를 메우고 있는 깊은 밤에도 강토 삼천리에 떠다니는 가엾은 민중들의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2021년 5월 천 성 래

국경의 아침 7

제5부 <강토(疆土) 삼천리>를 시작하면서 제5부 <강토 삼천리>를 떨리는 마음으로 시작하여 이제 그 첫 책을 세상에 내보낸다. 제4부를 집필하며 시작된 코로나는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기세를 더해가고 있다. 인류의 권력에 맞서기라도 하듯 코로나는 우리들 생활 깊숙이 침투해 우리의 삶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강토 삼천리>를 쓰는 내내 인간으로서 자연(自然)과 우주(宇宙)에 관한 공손한 예의(禮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것은 제4부 서문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이상, 가치, 행복 같은 추상적 언어들과 궤를 같이 한다. 인간이 비록 다른 생명체보다 지능이 뛰어나서 엄청난 문명을 누리며 세상을 호령한다 해도 절대 위대한 것이 아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류의 욕망이 만들어낸 고약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여전히 우리 곁에 복병(伏兵)처럼 존재하고 있다.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라 영원히 바이러스와 싸워 이겨내는 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중에도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와 직면하게 된다. 가족을 위해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고 그 돈으로 쌀을 팔고 의복도 사야 한다. 인간이 숭고한 척해도 사실 별 거 아닌 것이다. 제아무리 고고한 누대(樓臺)에 앉은 사람도 먹고 싸는 것이 기본인 것을 어쩔 것인가. 인간이 좀 더 고개 숙이고 겸손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코로나를 퇴치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는 세상의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한다. 소설 쓰는 일을 평생 직업으로 삼고 있는 나는 다만 코로나가 정치 도구화 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인류의 시험대는 이번 코로나가 마지막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제5부 <강토 삼천리>는 이렇듯 심란한 마음의 갈피에서 잉태한 작품이다. 내가 여태 살아오면서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하던 시기인지라 항상 죄인 같은 심정으로 원고를 메웠다. 세계는 여전히 격동치고 있으며 풍랑처럼 요동치는 국제정세, 국가 간의 힘겨루기, 남북의 급변사태, 국내정치 환경의 변화 등을 보면서 집필된 작품이기에 제5부를 시작하기까지 몹시 심신이 고달팠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원고지 매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대목이라 작가의 힘은 파하게 되고 책상 앞에서 일어서기 힘들 정도로 온몸이 오그라들었지만 캄캄한 현기증마저도 작품에 대한 나의 열정을 주저앉힐 수는 없었다. 제5부 9권(1천 6백매), 10권(1천 7백매)은 부제와 같이 강토 삼천리를 오가며 질곡(桎梏)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운명적 인물들의 삶이 펼쳐진다. 제4부<저 구름 흘러흘러>가 목숨을 담보한 유랑(流浪)의 길이었다면 제5부<강토 삼천리>는 유랑의 역사 위에서 이제 새롭게 뿌리[根〕를 내리고 살아보려는 민중들의 몸부림이 주를 이루게 된다. 남북분단이란 운명이 만들어놓은 징검다리 같은 삶은 발을 잘못 디디면 허방에 빠져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생이 그렇듯, 어떤 인물은 제대로 발을 내딛기도 하고 어떤 인물은 그만 수렁에 빠지게도 되는 것이다. 제1부, 제2부가 공화국의 역사, 체제, 문화와 양식 등을 의복처럼 두르는 이야기를 펼쳐온 것이라면 제3부는 공화국의 정치적 혼돈, 주민 삶의 핍박, 주민들의 의식 및 정신의 변화, 남북 대치에 따른 공화국의 철저한 위장 등의 모습이 저층에 깔려 있고, 제4부는 가족의 의미, 인생의 이별 그리고 진정한 삶을 찾아 역경 속에서 모험을 하는 과정이 나타나고 있다. 제5부는 강토 삼천리를 떠돌며 질곡의 삶을 살아오면서 이제 뿌리를 내려 보려는 민초들의 삶이 펼쳐지고 있다. 제9권: 심장을 주오, 여우(女優), 동침, 곰열, 만월, 마음의 감옥, 의문의 지령, 가장 위대한 지령, 찬란하고 위대한(1), 제10권: 찬란하고 위대한(2), 미로의 종소리, 하나원, 청배(請拜), 야밤삼경의 그림자, 일촉즉발, 최후의 허락된 시간, 혼돈의 장(章), 에필로그 등으로 전개되고 있다. 제5부는 이 대하소설을 마감하는 대장정으로서 등장인물들의 삶이 어떻게 자리매김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삶이 결과적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만큼의 가치를 지닌 삶이 되는지 어떤지는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치열했던 그들의 삶을 섣불리 평가할 수는 없을 뿐더러 그들의 삶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하소설 <국경의 아침>에 인생을 저당 잡힌 듯 살아오면서 사람이 인간답게 사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1만 2천매라는 방대한 원고를 써내려가면서 그 안에 녹아 있는 가족의 의미, 사랑과 이별, 정치와 사상의 투쟁성, 파멸과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질곡의 순간들을 실제처럼 목도하게 되었다. 그런 중에도 새롭게 싹튼 강인한 생명력을 느꼈고, 우리의 아픈 역사에서 희망이란 끈을 놓아버릴 수가 없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원고지에 마지막 마침표를 찍게 되는 날, 이제 편안하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단잠을 좀 자고 싶을 텐데 그런 황홀한 약속을 하기에는 불면의 밤이 아직은 너무 깊은 듯도 하다. 이렇게 원고지를 메우고 있는 깊은 밤에도 강토 삼천리에 떠다니는 가엾은 민중들의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2021년 5월 천 성 래

국경의 아침 8

제5부 <강토(疆土) 삼천리>를 시작하면서 제5부 <강토 삼천리>를 떨리는 마음으로 시작하여 이제 그 첫 책을 세상에 내보낸다. 제4부를 집필하며 시작된 코로나는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기세를 더해가고 있다. 인류의 권력에 맞서기라도 하듯 코로나는 우리들 생활 깊숙이 침투해 우리의 삶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강토 삼천리>를 쓰는 내내 인간으로서 자연(自然)과 우주(宇宙)에 관한 공손한 예의(禮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것은 제4부 서문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이상, 가치, 행복 같은 추상적 언어들과 궤를 같이 한다. 인간이 비록 다른 생명체보다 지능이 뛰어나서 엄청난 문명을 누리며 세상을 호령한다 해도 절대 위대한 것이 아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류의 욕망이 만들어낸 고약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여전히 우리 곁에 복병(伏兵)처럼 존재하고 있다.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라 영원히 바이러스와 싸워 이겨내는 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중에도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와 직면하게 된다. 가족을 위해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고 그 돈으로 쌀을 팔고 의복도 사야 한다. 인간이 숭고한 척해도 사실 별 거 아닌 것이다. 제아무리 고고한 누대(樓臺)에 앉은 사람도 먹고 싸는 것이 기본인 것을 어쩔 것인가. 인간이 좀 더 고개 숙이고 겸손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코로나를 퇴치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는 세상의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한다. 소설 쓰는 일을 평생 직업으로 삼고 있는 나는 다만 코로나가 정치 도구화 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인류의 시험대는 이번 코로나가 마지막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제5부 <강토 삼천리>는 이렇듯 심란한 마음의 갈피에서 잉태한 작품이다. 내가 여태 살아오면서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하던 시기인지라 항상 죄인 같은 심정으로 원고를 메웠다. 세계는 여전히 격동치고 있으며 풍랑처럼 요동치는 국제정세, 국가 간의 힘겨루기, 남북의 급변사태, 국내정치 환경의 변화 등을 보면서 집필된 작품이기에 제5부를 시작하기까지 몹시 심신이 고달팠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원고지 매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대목이라 작가의 힘은 파하게 되고 책상 앞에서 일어서기 힘들 정도로 온몸이 오그라들었지만 캄캄한 현기증마저도 작품에 대한 나의 열정을 주저앉힐 수는 없었다. 제5부 9권(1천 6백매), 10권(1천 7백매)은 부제와 같이 강토 삼천리를 오가며 질곡(桎梏)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운명적 인물들의 삶이 펼쳐진다. 제4부<저 구름 흘러흘러>가 목숨을 담보한 유랑(流浪)의 길이었다면 제5부<강토 삼천리>는 유랑의 역사 위에서 이제 새롭게 뿌리[根〕를 내리고 살아보려는 민중들의 몸부림이 주를 이루게 된다. 남북분단이란 운명이 만들어놓은 징검다리 같은 삶은 발을 잘못 디디면 허방에 빠져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생이 그렇듯, 어떤 인물은 제대로 발을 내딛기도 하고 어떤 인물은 그만 수렁에 빠지게도 되는 것이다. 제1부, 제2부가 공화국의 역사, 체제, 문화와 양식 등을 의복처럼 두르는 이야기를 펼쳐온 것이라면 제3부는 공화국의 정치적 혼돈, 주민 삶의 핍박, 주민들의 의식 및 정신의 변화, 남북 대치에 따른 공화국의 철저한 위장 등의 모습이 저층에 깔려 있고, 제4부는 가족의 의미, 인생의 이별 그리고 진정한 삶을 찾아 역경 속에서 모험을 하는 과정이 나타나고 있다. 제5부는 강토 삼천리를 떠돌며 질곡의 삶을 살아오면서 이제 뿌리를 내려 보려는 민초들의 삶이 펼쳐지고 있다. 제9권: 심장을 주오, 여우(女優), 동침, 곰열, 만월, 마음의 감옥, 의문의 지령, 가장 위대한 지령, 찬란하고 위대한(1), 제10권: 찬란하고 위대한(2), 미로의 종소리, 하나원, 청배(請拜), 야밤삼경의 그림자, 일촉즉발, 최후의 허락된 시간, 혼돈의 장(章), 에필로그 등으로 전개되고 있다. 제5부는 이 대하소설을 마감하는 대장정으로서 등장인물들의 삶이 어떻게 자리매김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삶이 결과적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만큼의 가치를 지닌 삶이 되는지 어떤지는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치열했던 그들의 삶을 섣불리 평가할 수는 없을 뿐더러 그들의 삶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하소설 <국경의 아침>에 인생을 저당 잡힌 듯 살아오면서 사람이 인간답게 사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1만 2천매라는 방대한 원고를 써내려가면서 그 안에 녹아 있는 가족의 의미, 사랑과 이별, 정치와 사상의 투쟁성, 파멸과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질곡의 순간들을 실제처럼 목도하게 되었다. 그런 중에도 새롭게 싹튼 강인한 생명력을 느꼈고, 우리의 아픈 역사에서 희망이란 끈을 놓아버릴 수가 없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원고지에 마지막 마침표를 찍게 되는 날, 이제 편안하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단잠을 좀 자고 싶을 텐데 그런 황홀한 약속을 하기에는 불면의 밤이 아직은 너무 깊은 듯도 하다. 이렇게 원고지를 메우고 있는 깊은 밤에도 강토 삼천리에 떠다니는 가엾은 민중들의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2021년 5월 천 성 래

국경의 아침 9

제5부 <강토(疆土) 삼천리>를 시작하면서 제5부 <강토 삼천리>를 떨리는 마음으로 시작하여 이제 그 첫 책을 세상에 내보낸다. 제4부를 집필하며 시작된 코로나는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기세를 더해가고 있다. 인류의 권력에 맞서기라도 하듯 코로나는 우리들 생활 깊숙이 침투해 우리의 삶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강토 삼천리>를 쓰는 내내 인간으로서 자연(自然)과 우주(宇宙)에 관한 공손한 예의(禮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것은 제4부 서문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이상, 가치, 행복 같은 추상적 언어들과 궤를 같이 한다. 인간이 비록 다른 생명체보다 지능이 뛰어나서 엄청난 문명을 누리며 세상을 호령한다 해도 절대 위대한 것이 아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류의 욕망이 만들어낸 고약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여전히 우리 곁에 복병(伏兵)처럼 존재하고 있다.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라 영원히 바이러스와 싸워 이겨내는 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중에도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와 직면하게 된다. 가족을 위해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고 그 돈으로 쌀을 팔고 의복도 사야 한다. 인간이 숭고한 척해도 사실 별 거 아닌 것이다. 제아무리 고고한 누대(樓臺)에 앉은 사람도 먹고 싸는 것이 기본인 것을 어쩔 것인가. 인간이 좀 더 고개 숙이고 겸손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코로나를 퇴치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는 세상의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한다. 소설 쓰는 일을 평생 직업으로 삼고 있는 나는 다만 코로나가 정치 도구화 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인류의 시험대는 이번 코로나가 마지막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제5부 <강토 삼천리>는 이렇듯 심란한 마음의 갈피에서 잉태한 작품이다. 내가 여태 살아오면서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하던 시기인지라 항상 죄인 같은 심정으로 원고를 메웠다. 세계는 여전히 격동치고 있으며 풍랑처럼 요동치는 국제정세, 국가 간의 힘겨루기, 남북의 급변사태, 국내정치 환경의 변화 등을 보면서 집필된 작품이기에 제5부를 시작하기까지 몹시 심신이 고달팠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원고지 매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대목이라 작가의 힘은 파하게 되고 책상 앞에서 일어서기 힘들 정도로 온몸이 오그라들었지만 캄캄한 현기증마저도 작품에 대한 나의 열정을 주저앉힐 수는 없었다. 제5부 9권(1천 6백매), 10권(1천 7백매)은 부제와 같이 강토 삼천리를 오가며 질곡(桎梏)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운명적 인물들의 삶이 펼쳐진다. 제4부<저 구름 흘러흘러>가 목숨을 담보한 유랑(流浪)의 길이었다면 제5부<강토 삼천리>는 유랑의 역사 위에서 이제 새롭게 뿌리[根〕를 내리고 살아보려는 민중들의 몸부림이 주를 이루게 된다. 남북분단이란 운명이 만들어놓은 징검다리 같은 삶은 발을 잘못 디디면 허방에 빠져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생이 그렇듯, 어떤 인물은 제대로 발을 내딛기도 하고 어떤 인물은 그만 수렁에 빠지게도 되는 것이다. 제1부, 제2부가 공화국의 역사, 체제, 문화와 양식 등을 의복처럼 두르는 이야기를 펼쳐온 것이라면 제3부는 공화국의 정치적 혼돈, 주민 삶의 핍박, 주민들의 의식 및 정신의 변화, 남북 대치에 따른 공화국의 철저한 위장 등의 모습이 저층에 깔려 있고, 제4부는 가족의 의미, 인생의 이별 그리고 진정한 삶을 찾아 역경 속에서 모험을 하는 과정이 나타나고 있다. 제5부는 강토 삼천리를 떠돌며 질곡의 삶을 살아오면서 이제 뿌리를 내려 보려는 민초들의 삶이 펼쳐지고 있다. 제9권: 심장을 주오, 여우(女優), 동침, 곰열, 만월, 마음의 감옥, 의문의 지령, 가장 위대한 지령, 찬란하고 위대한(1), 제10권: 찬란하고 위대한(2), 미로의 종소리, 하나원, 청배(請拜), 야밤삼경의 그림자, 일촉즉발, 최후의 허락된 시간, 혼돈의 장(章), 에필로그 등으로 전개되고 있다. 제5부는 이 대하소설을 마감하는 대장정으로서 등장인물들의 삶이 어떻게 자리매김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삶이 결과적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만큼의 가치를 지닌 삶이 되는지 어떤지는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치열했던 그들의 삶을 섣불리 평가할 수는 없을 뿐더러 그들의 삶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하소설 <국경의 아침>에 인생을 저당 잡힌 듯 살아오면서 사람이 인간답게 사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1만 2천매라는 방대한 원고를 써내려가면서 그 안에 녹아 있는 가족의 의미, 사랑과 이별, 정치와 사상의 투쟁성, 파멸과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질곡의 순간들을 실제처럼 목도하게 되었다. 그런 중에도 새롭게 싹튼 강인한 생명력을 느꼈고, 우리의 아픈 역사에서 희망이란 끈을 놓아버릴 수가 없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원고지에 마지막 마침표를 찍게 되는 날, 이제 편안하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단잠을 좀 자고 싶을 텐데 그런 황홀한 약속을 하기에는 불면의 밤이 아직은 너무 깊은 듯도 하다. 이렇게 원고지를 메우고 있는 깊은 밤에도 강토 삼천리에 떠다니는 가엾은 민중들의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2021년 5월 천 성 래

붉은 노을

소설을 쓰는 일에만 익숙해지니 이제 지겨운 일의 하나는 이런 발문(跋文)을 쓰는 것입니다. 원고지 속에 갇혀 지난 몇 년 동안 목숨을 걸어놓고 라운드를 치렀습니다. 승자도 패자도 없이 다운되어 쓰러진 선수에게 변명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미 전 후반 라운드를 통해 최선을 다해 모든 것을 보여주었는데 말입니다. 그러니 작품에 대한 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에 더는 요설을 늘어놓지 않겠습니다. 책을 상재(上梓)하기 전에 다만 인생의 감회를 간략히 술회하고자 합니다. 참으로 세상을 열심히 살았습니다. 뻘밭에서 태어나 낙타처럼 차곡차곡 사막의 길을 걸어온 세월이었습니다. 철이 없어서는 본능적으로 목숨을 움켜쥐었고 철이 들자 정작 그저 삶을 일찍 끝내고 싶어 발버둥 치던 세월이었습니다. 되돌아보면 걸어온 세월 어느 하루 녹녹한 날이란 없었지요. 그런데 그 세월의 켜를 지킨 것이 바로 소설이었습니다. 작은 훈장 하나 민낯 같은 자랑거리 하나 내세울 수 없던 처지를 견디게 해준 것도 아마 소설이란 괴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분명 나로서는 괴물일수 밖에요. 나를 잘 안다는 지인들도 나를 잘 모르는 부분이 있습니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가슴속에 소설이란 무시무시한 괴물을 숨기고 살아왔던 것이지요. 인간은 누구나 살다보면 훈장 하나쯤 만들어놓을 것입니다. 내게 훈장은 이제 짓무른 엉덩이 살의 상처뿐입니다. 알아주지 않으며 드러내놓을 수도 없는 상처는 영원히 작가 자신이 간직해야 하는 몫일 것이며, 자랑스럽지도 않지만 부끄럽지도 않습니다. 아아, 지천명을 넘어 꺾이는 굽이 길에서 인생이란 왜 이다지도 아련한 것인지요? 솔개가 날아서 하늘을 찌르고 물고기가 연못에서 뛰어 오른다는 글귀가 문득 생각납니다. 어약우연(魚躍于淵)이라고 했던가요? 이 시대를 살아온 우리들은 모두가 미친 듯이 날고 또 뛰었겠지요. 누구는 영광을 얻었고 누구는 기쁨을 얻었으며 누구는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 역시 지금 그런 혼돈의 길목에서 서성이는 중년입니다. 이제 저의 마지막 고백을 이 깊은 새벽에 깨어 하고자 합니다. 참으로 보고 싶습니다. 그립습니다. 실컷 울어도 보고 싶습니다. 자식자랑은 팔불출이라 하는데 아비와 인연도 제대로 맺지 못하고 나를 떠나간 자식 놈이 참 똑똑한 아이였든가 봅니다. 요사이 부쩍 꿈속에 나타나 동자승의 모습으로 하소연을 하네요. 아빠, 어째서 저를 지켜주지 못했냐구요. 인간의 목숨도 업이라는 것이 있을까요? 아마 그렇겠지요. 그래서 내 살과 뼈를 태워서라도 자식을 지켜주지 못하는 부모들이 생겨나겠지요? 청춘에 춥고 배가 고파도 살을 부비며 함께 하던 작은형이 떠났을 때도 많이 울었습니다. 인간이란 울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가 없는 존재임을 그때 깨닫게 되었답니다. 울어야 하는 일이 누구에게나 오리란 것은 명백한 사실이니까요. 자식을 앞세우고 밤마다 가슴을 쥐어뜯으시더니 그예 작은형을 따르시던 어머님을 보내며 그나마 위로가 되었습니다. 지금 작은형과 어머니는 의왕시 오봉정사란 절에 나란히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나와 인연을 맺지 못한 자식의 영혼이 있다면 서로 만나서 품어 안고 있겠지요. 이렇게 꼭두새벽에 공연히 햇빛이 산란하던 계절도 아닌데 마음만 흩어놓고 말았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부모의 마음 자식의 마음 형제자매의 마음을 모두 겪은 소생의 하소연이라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제 저는 가만히 음악을 켭니다. 저는 세상을 살다가 공연히 센티멘탈해질 때면 사람들 몰래 이 음악을 들어요. 울고 싶을 때도 위로 받고 싶을 때도 슬플 때도 외로울 때도 이 음악을 듣습니다. 제가 진정 좋아한 소울의 가수는 빌리 할러데이와 루이 암스트롱입니다. 빌리 할러데이의 <글루미 선데이>는 말 할 필요도 없고, 루이 암스트롱의 <홧 어 원더풀 월드> 역시 죽도록 좋아하지요. <글루미 선데이>의 음악은 치명적인 노래이니 혹시 이 글을 보고 듣게 되시는 분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수희의 <못잊겠어요>는 어머니 애창곡이며, 사랑의 하모니에 <야화>는 작은형의 애창곡입니다. 그리고 제가 즐겨 부르는 곡은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입니다. 20세기 브로드웨이의 에비뉴를 누비던 전설의 곡이 반세기를 넘어 저만의 18번지라는 골목에서 되살아나는 것이지요. 저는 여전히 걸어가야 하는 저만의 길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공연히 감상적인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수천 매의 원고를 쓰면서 자로 잰 듯 체계적인 글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간혹 발생하지요. 우리 인생사처럼 말입니다. 그 간극을 메우는 일이 저로서는 커다란 부담이 되었든가 봅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가슴을 짓누르던 덩어리를 내려놓을 수가 없는 숙명적 업보를 타고난 작가의 길임을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5년 4월 한식(寒食)과 청명(淸明) 사이

정본 국경의 아침 1

나는 그동안 소설 쓰는 일밖에 모르고 살았다. 돌을 씹어도 소화를 시킨다는 이십 대 문청 시절부터 피 끓는 삼사십 대의 객기는 매번 나를 절망의 늪 속에 빠지게 했다. 무엇이든 계획하면 쓰고 본다는 남다른 나의 호기(豪氣)는 나를 가장 치열하게 살아가도록 했지만 수없이 발부리를 넘어뜨렸다.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이며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나는 과연 최선을 다했는가? 나는 지금까지 전업 작가의 길을 걸어오면서 우리 근대사의 아픔을 되돌아보고,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 사람들의 의식과 가치의 세계를 소설 속에 담아내고자 하였다. 또한 역사를 크게 거슬러 올라 천 년 전의 우리 역사를 음미해 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찌 저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우리 삶의 궤적을 소설이란 그릇으로 오롯이 빚어낼 수 있을 것인가? 내 미약한 능력과 의식으로는 저 도저(到底)한 인간의 위대함에 흠집이나 내지 않았을지 수없이 절망하게 된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허기져 있다. 우리 역사의 뒤란에서 허기지고 바닥난 내 의식을 일으켜 세워 하나씩 활자를 메워나갈 때 의연히 되살아나던 의식 한 올, 그 한 올의 의식을 건져 올려 이 십여 년 넘게 달려온 것이 바로 대하소설『국경의 아침』이었다. 글쓰기의 힘듦과 한국문학의 현실, 종이책이 쓰러져가는 출판계의 현실을 목격하면서 걸어온 길이기에 집필의 과정이 지독하게 힘들었다. 인류 역사상 마지막 분단국가인 한국, 이 민족의 핏줄로 태어나 이 땅 이 시대에 소설가로 살아가는 내가 민족, 분단의 화두를 저버리고 어찌 감히 글 쓰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내 삶을 되돌아보면, 어느 하루 편할 날이 없었다. 글을 쓰고 강의하고 먹고 살아가는 문제의 지겨움을 떠나 나는 가슴 깊이 소용돌이치는 의식으로 밤마다 차가운 별을 마주하고 살았다. 의식의 날을 세우는 일이 소설가에게 뭐가 그리 대단한 것일까? 그럼에도 여전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내게 가장 강력한 무기는 의식의 예리한 칼날이란 생각이 든다. 작가는 의식이 무뎌지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게 내 생애에 키워온 지론이기 때문이다. 분단 70여 년을 향해 갈수록 우리 민족은 폐허 속에 침몰할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이 앞선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망각한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역사의 족적을 찾아 기록하고 재구성하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진정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역사의 줄기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강은 굽이굽이 흘러 바다에서 하나가 된다는데 역사의 강줄기는 멀어지면 쉽게 바다에 닿을 수가 없으리란 생각 때문이다. 이 소설에 대해 되도록 주관적 서사를 아끼고 싶다. 자칫 작품에 대한 독자의 객관적인 느낌을 상쇄시킬 뿐만 아니라 책을 상재 하기까지의 우여곡절에 대한 동정 역시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끝났다. 이념의 포효와 흑백논리의 오류는 더이상 우리에게 다가올 수 없는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소설을 쓰는 내내, 또한 이 소설을 쓰고 있는 지금 이순간도 이데올로기에 경도되지 않았다. 인물들의 삶 속에 이런 것들은 이미 용해되어 있다.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우리는 녹아 있는 분자들의 결정체를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본 국경의 아침 10

나는 그동안 소설 쓰는 일밖에 모르고 살았다. 돌을 씹어도 소화를 시킨다는 이십 대 문청 시절부터 피 끓는 삼사십 대의 객기는 매번 나를 절망의 늪 속에 빠지게 했다. 무엇이든 계획하면 쓰고 본다는 남다른 나의 호기(豪氣)는 나를 가장 치열하게 살아가도록 했지만 수없이 발부리를 넘어뜨렸다.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이며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나는 과연 최선을 다했는가? 나는 지금까지 전업 작가의 길을 걸어오면서 우리 근대사의 아픔을 되돌아보고,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 사람들의 의식과 가치의 세계를 소설 속에 담아내고자 하였다. 또한 역사를 크게 거슬러 올라 천 년 전의 우리 역사를 음미해 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찌 저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우리 삶의 궤적을 소설이란 그릇으로 오롯이 빚어낼 수 있을 것인가? 내 미약한 능력과 의식으로는 저 도저(到底)한 인간의 위대함에 흠집이나 내지 않았을지 수없이 절망하게 된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허기져 있다. 우리 역사의 뒤란에서 허기지고 바닥난 내 의식을 일으켜 세워 하나씩 활자를 메워나갈 때 의연히 되살아나던 의식 한 올, 그 한 올의 의식을 건져 올려 이 십여 년 넘게 달려온 것이 바로 대하소설『국경의 아침』이었다. 글쓰기의 힘듦과 한국문학의 현실, 종이책이 쓰러져가는 출판계의 현실을 목격하면서 걸어온 길이기에 집필의 과정이 지독하게 힘들었다. 인류 역사상 마지막 분단국가인 한국, 이 민족의 핏줄로 태어나 이 땅 이 시대에 소설가로 살아가는 내가 민족, 분단의 화두를 저버리고 어찌 감히 글 쓰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내 삶을 되돌아보면, 어느 하루 편할 날이 없었다. 글을 쓰고 강의하고 먹고 살아가는 문제의 지겨움을 떠나 나는 가슴 깊이 소용돌이치는 의식으로 밤마다 차가운 별을 마주하고 살았다. 의식의 날을 세우는 일이 소설가에게 뭐가 그리 대단한 것일까? 그럼에도 여전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내게 가장 강력한 무기는 의식의 예리한 칼날이란 생각이 든다. 작가는 의식이 무뎌지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게 내 생애에 키워온 지론이기 때문이다. 분단 70여 년을 향해 갈수록 우리 민족은 폐허 속에 침몰할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이 앞선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망각한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역사의 족적을 찾아 기록하고 재구성하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진정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역사의 줄기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강은 굽이굽이 흘러 바다에서 하나가 된다는데 역사의 강줄기는 멀어지면 쉽게 바다에 닿을 수가 없으리란 생각 때문이다. 이 소설에 대해 되도록 주관적 서사를 아끼고 싶다. 자칫 작품에 대한 독자의 객관적인 느낌을 상쇄시킬 뿐만 아니라 책을 상재 하기까지의 우여곡절에 대한 동정 역시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끝났다. 이념의 포효와 흑백논리의 오류는 더이상 우리에게 다가올 수 없는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소설을 쓰는 내내, 또한 이 소설을 쓰고 있는 지금 이순간도 이데올로기에 경도되지 않았다. 인물들의 삶 속에 이런 것들은 이미 용해되어 있다.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우리는 녹아 있는 분자들의 결정체를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본 국경의 아침 2

나는 그동안 소설 쓰는 일밖에 모르고 살았다. 돌을 씹어도 소화를 시킨다는 이십 대 문청 시절부터 피 끓는 삼사십 대의 객기는 매번 나를 절망의 늪 속에 빠지게 했다. 무엇이든 계획하면 쓰고 본다는 남다른 나의 호기(豪氣)는 나를 가장 치열하게 살아가도록 했지만 수없이 발부리를 넘어뜨렸다.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이며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나는 과연 최선을 다했는가? 나는 지금까지 전업 작가의 길을 걸어오면서 우리 근대사의 아픔을 되돌아보고,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 사람들의 의식과 가치의 세계를 소설 속에 담아내고자 하였다. 또한 역사를 크게 거슬러 올라 천 년 전의 우리 역사를 음미해 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찌 저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우리 삶의 궤적을 소설이란 그릇으로 오롯이 빚어낼 수 있을 것인가? 내 미약한 능력과 의식으로는 저 도저(到底)한 인간의 위대함에 흠집이나 내지 않았을지 수없이 절망하게 된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허기져 있다. 우리 역사의 뒤란에서 허기지고 바닥난 내 의식을 일으켜 세워 하나씩 활자를 메워나갈 때 의연히 되살아나던 의식 한 올, 그 한 올의 의식을 건져 올려 이 십여 년 넘게 달려온 것이 바로 대하소설『국경의 아침』이었다. 글쓰기의 힘듦과 한국문학의 현실, 종이책이 쓰러져가는 출판계의 현실을 목격하면서 걸어온 길이기에 집필의 과정이 지독하게 힘들었다. 인류 역사상 마지막 분단국가인 한국, 이 민족의 핏줄로 태어나 이 땅 이 시대에 소설가로 살아가는 내가 민족, 분단의 화두를 저버리고 어찌 감히 글 쓰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내 삶을 되돌아보면, 어느 하루 편할 날이 없었다. 글을 쓰고 강의하고 먹고 살아가는 문제의 지겨움을 떠나 나는 가슴 깊이 소용돌이치는 의식으로 밤마다 차가운 별을 마주하고 살았다. 의식의 날을 세우는 일이 소설가에게 뭐가 그리 대단한 것일까? 그럼에도 여전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내게 가장 강력한 무기는 의식의 예리한 칼날이란 생각이 든다. 작가는 의식이 무뎌지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게 내 생애에 키워온 지론이기 때문이다. 분단 70여 년을 향해 갈수록 우리 민족은 폐허 속에 침몰할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이 앞선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망각한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역사의 족적을 찾아 기록하고 재구성하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진정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역사의 줄기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강은 굽이굽이 흘러 바다에서 하나가 된다는데 역사의 강줄기는 멀어지면 쉽게 바다에 닿을 수가 없으리란 생각 때문이다. 이 소설에 대해 되도록 주관적 서사를 아끼고 싶다. 자칫 작품에 대한 독자의 객관적인 느낌을 상쇄시킬 뿐만 아니라 책을 상재 하기까지의 우여곡절에 대한 동정 역시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끝났다. 이념의 포효와 흑백논리의 오류는 더이상 우리에게 다가올 수 없는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소설을 쓰는 내내, 또한 이 소설을 쓰고 있는 지금 이순간도 이데올로기에 경도되지 않았다. 인물들의 삶 속에 이런 것들은 이미 용해되어 있다.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우리는 녹아 있는 분자들의 결정체를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본 국경의 아침 3

나는 그동안 소설 쓰는 일밖에 모르고 살았다. 돌을 씹어도 소화를 시킨다는 이십 대 문청 시절부터 피 끓는 삼사십 대의 객기는 매번 나를 절망의 늪 속에 빠지게 했다. 무엇이든 계획하면 쓰고 본다는 남다른 나의 호기(豪氣)는 나를 가장 치열하게 살아가도록 했지만 수없이 발부리를 넘어뜨렸다.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이며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나는 과연 최선을 다했는가? 나는 지금까지 전업 작가의 길을 걸어오면서 우리 근대사의 아픔을 되돌아보고,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 사람들의 의식과 가치의 세계를 소설 속에 담아내고자 하였다. 또한 역사를 크게 거슬러 올라 천 년 전의 우리 역사를 음미해 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찌 저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우리 삶의 궤적을 소설이란 그릇으로 오롯이 빚어낼 수 있을 것인가? 내 미약한 능력과 의식으로는 저 도저(到底)한 인간의 위대함에 흠집이나 내지 않았을지 수없이 절망하게 된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허기져 있다. 우리 역사의 뒤란에서 허기지고 바닥난 내 의식을 일으켜 세워 하나씩 활자를 메워나갈 때 의연히 되살아나던 의식 한 올, 그 한 올의 의식을 건져 올려 이 십여 년 넘게 달려온 것이 바로 대하소설『국경의 아침』이었다. 글쓰기의 힘듦과 한국문학의 현실, 종이책이 쓰러져가는 출판계의 현실을 목격하면서 걸어온 길이기에 집필의 과정이 지독하게 힘들었다. 인류 역사상 마지막 분단국가인 한국, 이 민족의 핏줄로 태어나 이 땅 이 시대에 소설가로 살아가는 내가 민족, 분단의 화두를 저버리고 어찌 감히 글 쓰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내 삶을 되돌아보면, 어느 하루 편할 날이 없었다. 글을 쓰고 강의하고 먹고 살아가는 문제의 지겨움을 떠나 나는 가슴 깊이 소용돌이치는 의식으로 밤마다 차가운 별을 마주하고 살았다. 의식의 날을 세우는 일이 소설가에게 뭐가 그리 대단한 것일까? 그럼에도 여전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내게 가장 강력한 무기는 의식의 예리한 칼날이란 생각이 든다. 작가는 의식이 무뎌지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게 내 생애에 키워온 지론이기 때문이다. 분단 70여 년을 향해 갈수록 우리 민족은 폐허 속에 침몰할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이 앞선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망각한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역사의 족적을 찾아 기록하고 재구성하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진정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역사의 줄기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강은 굽이굽이 흘러 바다에서 하나가 된다는데 역사의 강줄기는 멀어지면 쉽게 바다에 닿을 수가 없으리란 생각 때문이다. 이 소설에 대해 되도록 주관적 서사를 아끼고 싶다. 자칫 작품에 대한 독자의 객관적인 느낌을 상쇄시킬 뿐만 아니라 책을 상재 하기까지의 우여곡절에 대한 동정 역시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끝났다. 이념의 포효와 흑백논리의 오류는 더이상 우리에게 다가올 수 없는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소설을 쓰는 내내, 또한 이 소설을 쓰고 있는 지금 이순간도 이데올로기에 경도되지 않았다. 인물들의 삶 속에 이런 것들은 이미 용해되어 있다.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우리는 녹아 있는 분자들의 결정체를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본 국경의 아침 4

나는 그동안 소설 쓰는 일밖에 모르고 살았다. 돌을 씹어도 소화를 시킨다는 이십 대 문청 시절부터 피 끓는 삼사십 대의 객기는 매번 나를 절망의 늪 속에 빠지게 했다. 무엇이든 계획하면 쓰고 본다는 남다른 나의 호기(豪氣)는 나를 가장 치열하게 살아가도록 했지만 수없이 발부리를 넘어뜨렸다.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이며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나는 과연 최선을 다했는가? 나는 지금까지 전업 작가의 길을 걸어오면서 우리 근대사의 아픔을 되돌아보고,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 사람들의 의식과 가치의 세계를 소설 속에 담아내고자 하였다. 또한 역사를 크게 거슬러 올라 천 년 전의 우리 역사를 음미해 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찌 저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우리 삶의 궤적을 소설이란 그릇으로 오롯이 빚어낼 수 있을 것인가? 내 미약한 능력과 의식으로는 저 도저(到底)한 인간의 위대함에 흠집이나 내지 않았을지 수없이 절망하게 된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허기져 있다. 우리 역사의 뒤란에서 허기지고 바닥난 내 의식을 일으켜 세워 하나씩 활자를 메워나갈 때 의연히 되살아나던 의식 한 올, 그 한 올의 의식을 건져 올려 이 십여 년 넘게 달려온 것이 바로 대하소설『국경의 아침』이었다. 글쓰기의 힘듦과 한국문학의 현실, 종이책이 쓰러져가는 출판계의 현실을 목격하면서 걸어온 길이기에 집필의 과정이 지독하게 힘들었다. 인류 역사상 마지막 분단국가인 한국, 이 민족의 핏줄로 태어나 이 땅 이 시대에 소설가로 살아가는 내가 민족, 분단의 화두를 저버리고 어찌 감히 글 쓰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내 삶을 되돌아보면, 어느 하루 편할 날이 없었다. 글을 쓰고 강의하고 먹고 살아가는 문제의 지겨움을 떠나 나는 가슴 깊이 소용돌이치는 의식으로 밤마다 차가운 별을 마주하고 살았다. 의식의 날을 세우는 일이 소설가에게 뭐가 그리 대단한 것일까? 그럼에도 여전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내게 가장 강력한 무기는 의식의 예리한 칼날이란 생각이 든다. 작가는 의식이 무뎌지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게 내 생애에 키워온 지론이기 때문이다. 분단 70여 년을 향해 갈수록 우리 민족은 폐허 속에 침몰할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이 앞선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망각한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역사의 족적을 찾아 기록하고 재구성하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진정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역사의 줄기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강은 굽이굽이 흘러 바다에서 하나가 된다는데 역사의 강줄기는 멀어지면 쉽게 바다에 닿을 수가 없으리란 생각 때문이다. 이 소설에 대해 되도록 주관적 서사를 아끼고 싶다. 자칫 작품에 대한 독자의 객관적인 느낌을 상쇄시킬 뿐만 아니라 책을 상재 하기까지의 우여곡절에 대한 동정 역시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끝났다. 이념의 포효와 흑백논리의 오류는 더이상 우리에게 다가올 수 없는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소설을 쓰는 내내, 또한 이 소설을 쓰고 있는 지금 이순간도 이데올로기에 경도되지 않았다. 인물들의 삶 속에 이런 것들은 이미 용해되어 있다.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우리는 녹아 있는 분자들의 결정체를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본 국경의 아침 5

나는 그동안 소설 쓰는 일밖에 모르고 살았다. 돌을 씹어도 소화를 시킨다는 이십 대 문청 시절부터 피 끓는 삼사십 대의 객기는 매번 나를 절망의 늪 속에 빠지게 했다. 무엇이든 계획하면 쓰고 본다는 남다른 나의 호기(豪氣)는 나를 가장 치열하게 살아가도록 했지만 수없이 발부리를 넘어뜨렸다.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이며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나는 과연 최선을 다했는가? 나는 지금까지 전업 작가의 길을 걸어오면서 우리 근대사의 아픔을 되돌아보고,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 사람들의 의식과 가치의 세계를 소설 속에 담아내고자 하였다. 또한 역사를 크게 거슬러 올라 천 년 전의 우리 역사를 음미해 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찌 저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우리 삶의 궤적을 소설이란 그릇으로 오롯이 빚어낼 수 있을 것인가? 내 미약한 능력과 의식으로는 저 도저(到底)한 인간의 위대함에 흠집이나 내지 않았을지 수없이 절망하게 된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허기져 있다. 우리 역사의 뒤란에서 허기지고 바닥난 내 의식을 일으켜 세워 하나씩 활자를 메워나갈 때 의연히 되살아나던 의식 한 올, 그 한 올의 의식을 건져 올려 이 십여 년 넘게 달려온 것이 바로 대하소설『국경의 아침』이었다. 글쓰기의 힘듦과 한국문학의 현실, 종이책이 쓰러져가는 출판계의 현실을 목격하면서 걸어온 길이기에 집필의 과정이 지독하게 힘들었다. 인류 역사상 마지막 분단국가인 한국, 이 민족의 핏줄로 태어나 이 땅 이 시대에 소설가로 살아가는 내가 민족, 분단의 화두를 저버리고 어찌 감히 글 쓰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내 삶을 되돌아보면, 어느 하루 편할 날이 없었다. 글을 쓰고 강의하고 먹고 살아가는 문제의 지겨움을 떠나 나는 가슴 깊이 소용돌이치는 의식으로 밤마다 차가운 별을 마주하고 살았다. 의식의 날을 세우는 일이 소설가에게 뭐가 그리 대단한 것일까? 그럼에도 여전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내게 가장 강력한 무기는 의식의 예리한 칼날이란 생각이 든다. 작가는 의식이 무뎌지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게 내 생애에 키워온 지론이기 때문이다. 분단 70여 년을 향해 갈수록 우리 민족은 폐허 속에 침몰할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이 앞선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망각한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역사의 족적을 찾아 기록하고 재구성하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진정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역사의 줄기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강은 굽이굽이 흘러 바다에서 하나가 된다는데 역사의 강줄기는 멀어지면 쉽게 바다에 닿을 수가 없으리란 생각 때문이다. 이 소설에 대해 되도록 주관적 서사를 아끼고 싶다. 자칫 작품에 대한 독자의 객관적인 느낌을 상쇄시킬 뿐만 아니라 책을 상재 하기까지의 우여곡절에 대한 동정 역시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끝났다. 이념의 포효와 흑백논리의 오류는 더이상 우리에게 다가올 수 없는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소설을 쓰는 내내, 또한 이 소설을 쓰고 있는 지금 이순간도 이데올로기에 경도되지 않았다. 인물들의 삶 속에 이런 것들은 이미 용해되어 있다.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우리는 녹아 있는 분자들의 결정체를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본 국경의 아침 6

나는 그동안 소설 쓰는 일밖에 모르고 살았다. 돌을 씹어도 소화를 시킨다는 이십 대 문청 시절부터 피 끓는 삼사십 대의 객기는 매번 나를 절망의 늪 속에 빠지게 했다. 무엇이든 계획하면 쓰고 본다는 남다른 나의 호기(豪氣)는 나를 가장 치열하게 살아가도록 했지만 수없이 발부리를 넘어뜨렸다.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이며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나는 과연 최선을 다했는가? 나는 지금까지 전업 작가의 길을 걸어오면서 우리 근대사의 아픔을 되돌아보고,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 사람들의 의식과 가치의 세계를 소설 속에 담아내고자 하였다. 또한 역사를 크게 거슬러 올라 천 년 전의 우리 역사를 음미해 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찌 저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우리 삶의 궤적을 소설이란 그릇으로 오롯이 빚어낼 수 있을 것인가? 내 미약한 능력과 의식으로는 저 도저(到底)한 인간의 위대함에 흠집이나 내지 않았을지 수없이 절망하게 된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허기져 있다. 우리 역사의 뒤란에서 허기지고 바닥난 내 의식을 일으켜 세워 하나씩 활자를 메워나갈 때 의연히 되살아나던 의식 한 올, 그 한 올의 의식을 건져 올려 이 십여 년 넘게 달려온 것이 바로 대하소설『국경의 아침』이었다. 글쓰기의 힘듦과 한국문학의 현실, 종이책이 쓰러져가는 출판계의 현실을 목격하면서 걸어온 길이기에 집필의 과정이 지독하게 힘들었다. 인류 역사상 마지막 분단국가인 한국, 이 민족의 핏줄로 태어나 이 땅 이 시대에 소설가로 살아가는 내가 민족, 분단의 화두를 저버리고 어찌 감히 글 쓰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내 삶을 되돌아보면, 어느 하루 편할 날이 없었다. 글을 쓰고 강의하고 먹고 살아가는 문제의 지겨움을 떠나 나는 가슴 깊이 소용돌이치는 의식으로 밤마다 차가운 별을 마주하고 살았다. 의식의 날을 세우는 일이 소설가에게 뭐가 그리 대단한 것일까? 그럼에도 여전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내게 가장 강력한 무기는 의식의 예리한 칼날이란 생각이 든다. 작가는 의식이 무뎌지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게 내 생애에 키워온 지론이기 때문이다. 분단 70여 년을 향해 갈수록 우리 민족은 폐허 속에 침몰할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이 앞선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망각한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역사의 족적을 찾아 기록하고 재구성하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진정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역사의 줄기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강은 굽이굽이 흘러 바다에서 하나가 된다는데 역사의 강줄기는 멀어지면 쉽게 바다에 닿을 수가 없으리란 생각 때문이다. 이 소설에 대해 되도록 주관적 서사를 아끼고 싶다. 자칫 작품에 대한 독자의 객관적인 느낌을 상쇄시킬 뿐만 아니라 책을 상재 하기까지의 우여곡절에 대한 동정 역시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끝났다. 이념의 포효와 흑백논리의 오류는 더이상 우리에게 다가올 수 없는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소설을 쓰는 내내, 또한 이 소설을 쓰고 있는 지금 이순간도 이데올로기에 경도되지 않았다. 인물들의 삶 속에 이런 것들은 이미 용해되어 있다.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우리는 녹아 있는 분자들의 결정체를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본 국경의 아침 7

나는 그동안 소설 쓰는 일밖에 모르고 살았다. 돌을 씹어도 소화를 시킨다는 이십 대 문청 시절부터 피 끓는 삼사십 대의 객기는 매번 나를 절망의 늪 속에 빠지게 했다. 무엇이든 계획하면 쓰고 본다는 남다른 나의 호기(豪氣)는 나를 가장 치열하게 살아가도록 했지만 수없이 발부리를 넘어뜨렸다.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이며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나는 과연 최선을 다했는가? 나는 지금까지 전업 작가의 길을 걸어오면서 우리 근대사의 아픔을 되돌아보고,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 사람들의 의식과 가치의 세계를 소설 속에 담아내고자 하였다. 또한 역사를 크게 거슬러 올라 천 년 전의 우리 역사를 음미해 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찌 저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우리 삶의 궤적을 소설이란 그릇으로 오롯이 빚어낼 수 있을 것인가? 내 미약한 능력과 의식으로는 저 도저(到底)한 인간의 위대함에 흠집이나 내지 않았을지 수없이 절망하게 된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허기져 있다. 우리 역사의 뒤란에서 허기지고 바닥난 내 의식을 일으켜 세워 하나씩 활자를 메워나갈 때 의연히 되살아나던 의식 한 올, 그 한 올의 의식을 건져 올려 이 십여 년 넘게 달려온 것이 바로 대하소설『국경의 아침』이었다. 글쓰기의 힘듦과 한국문학의 현실, 종이책이 쓰러져가는 출판계의 현실을 목격하면서 걸어온 길이기에 집필의 과정이 지독하게 힘들었다. 인류 역사상 마지막 분단국가인 한국, 이 민족의 핏줄로 태어나 이 땅 이 시대에 소설가로 살아가는 내가 민족, 분단의 화두를 저버리고 어찌 감히 글 쓰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내 삶을 되돌아보면, 어느 하루 편할 날이 없었다. 글을 쓰고 강의하고 먹고 살아가는 문제의 지겨움을 떠나 나는 가슴 깊이 소용돌이치는 의식으로 밤마다 차가운 별을 마주하고 살았다. 의식의 날을 세우는 일이 소설가에게 뭐가 그리 대단한 것일까? 그럼에도 여전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내게 가장 강력한 무기는 의식의 예리한 칼날이란 생각이 든다. 작가는 의식이 무뎌지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게 내 생애에 키워온 지론이기 때문이다. 분단 70여 년을 향해 갈수록 우리 민족은 폐허 속에 침몰할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이 앞선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망각한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역사의 족적을 찾아 기록하고 재구성하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진정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역사의 줄기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강은 굽이굽이 흘러 바다에서 하나가 된다는데 역사의 강줄기는 멀어지면 쉽게 바다에 닿을 수가 없으리란 생각 때문이다. 이 소설에 대해 되도록 주관적 서사를 아끼고 싶다. 자칫 작품에 대한 독자의 객관적인 느낌을 상쇄시킬 뿐만 아니라 책을 상재 하기까지의 우여곡절에 대한 동정 역시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끝났다. 이념의 포효와 흑백논리의 오류는 더이상 우리에게 다가올 수 없는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소설을 쓰는 내내, 또한 이 소설을 쓰고 있는 지금 이순간도 이데올로기에 경도되지 않았다. 인물들의 삶 속에 이런 것들은 이미 용해되어 있다.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우리는 녹아 있는 분자들의 결정체를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가나다별 l l l l l l l l l l l l l l 기타
국내문학상수상자
국내어린이문학상수상자
해외문학상수상자
해외어린이문학상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