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헤더배너
상품평점 help

분류국내저자 > 번역

이름:홍경호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38년, 대한민국 충청북도 제천

사망:2004년

최근작
2024년 10월 <안네의 일기>

고원의 사랑 옥중기

<고원의 사랑>은 이 작가의 필치에서 문학을 지망하려는 젊은이들이 많은 것들을 배우고 얻어야 할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은 문학도와는 거리가 먼 대부분의 젊은 독자들을 위해서도 소중하다. 이 작품은 사랑에 고민하는 한 젊은 처녀가 방황과 혼돈을 헤치고 어떻게 그 사랑을 보다 높은 경지에까지 승화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어 우리 젊은이들에게 삶의 지표를 제시해 주는 까닭이다. / '이 책을 읽는 분에게' 중에서

나비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는 꽃과 나비에 대하여 무상한 것, 덧없는 것의 상징으로서 친화력에 가까운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1901년에 출판된 사실상의 그의 처녀작인 《헤르만 라우셔(Hermann Lauscher)》에서부터 만년의 일기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흔적은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약 40세 되던 때까지 온갖 종류의 나비들을 직접 채집하기도 했다. 《인도기행》에 나타난 나비사냥의 열정이 이러한 사실을 보여준다. 이 책은 나비와 관계되는 헤세의 여러 가지 체험과 추억, 관찰, 시 가운데에서 가장 매혹적인 것들만을 따로 모은 것이다. 맨 앞에 실린 관찰기인 '나비에 대하여'는 1936년에 출판된 아돌프 포트만(Adolf Portman)의 사진첩 《나비의 미》를 위하여 써준 서문이며, 다음에 이어지는 산문은 헤세의 삶과 관계되는 순서에 따랐으나 그 연대와 정확하게 일치시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작품만은 그의 전기적 상황과는 관계없이 내용에 따라 배열하였다. 나비 그림은 대부분 아우구스부르크의 화가이자 직물 무늬 도안가였던 야콥 휘브너(Jakob Hubner, 1761~1826)의 동판화가 이용되었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헤세 자신이 손으로 채색된 옛날의 동판화가 현대의 어떤 원색인쇄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경우에 따라서는 더욱 정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43년에 헤세가 한스 포프(Hans Popp)에게 쓴 편지의 한 구절이 이를 말해준다 ―“꽃이나 나비에 대해서는 1750년에서 1800년 사이가 가장 뛰어난 표현술의 시대로서, 손으로 그린 잎사귀가 동판에 새겨지고 또 손으로 채색된 것이오. 이런 잎사귀는 어떤 기술적인 재현보다도 더 예쁘고 매력적일 뿐만 아니라 사실에 더욱 가깝지요. 그 시대에 동판에 의하여 재현된 동식물이나 딱정벌레는 오늘날의 어떤 묘사보다도 더욱 생생해요.” 나비의 한살이, 인간들의 나비에 대하여 가져왔던 상상력, 나비와 헤세와의 특별한 관계, 각 장의 배경과 상세한 해설 등은 뒤에 실려 있는 폴커 미켈스(Volker Michels)의 후기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으므로 더 이상의 첨언이 필요없을 것이다. 또한 헤세 자신이 틈틈이 그린 수채화와 시를 곁들인 시화집이자 수상록인 《방랑(Wanderung)》을 이 책과 함께 읽는다면, 이 책 역시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사람을 부러워하면서도 언제나 낯선 세계와 자연을 그리워하는 작가 자신의 꿈을 그린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꿈은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소망과도 일치하는 것으로서, 헤세가 우리들의 이러한 소망을 아름다운 무늬와 빛깔로 물들여 재현시켜 보여준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표해야 할 것이다.

라겔뢰프 작품집

이 책을 읽는 분에게 셀마 라겔뢰프Selma Lagerlöf, 1858~1940는 여성으로는 세계 최초로 1909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스웨덴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다. 뿌리 깊은 향토애, 신비와 마성魔性에 가득 찬 북구의 전설, 거기에 작가 자신의 풍부한 상상력이 엮어낸 그녀의 작품은 소박한 사람들에게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이런 공적으로 말미암아 여성 최초의 노벨상이란 영예가 주어진 것이다. 그녀의 문학적 재능은 여성이 가진 최선의 장점을 살리는 데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 세상에 들끓는 광적인 정열을 용서하고 또 가라앉힐 수가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값싼 감상에 빠지지 않고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죄를 범한 남녀를 사랑했고, 고귀하고 의리에 찬 행위에 대해 격려를 보냈으며, 온갖 눈물어린 일들에 대해 연민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수준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겪은 노력과 고통은 대단한 것이었다. 시골에 묻혀 부친의 농사일을 도우면서 그녀는 밤낮으로 책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런 규수 시인의 모습에 깊이 감동된 독일의 젊은 의과 대학생, 한스 카로사가 그녀를 보기 위해 그녀의 고향으로 찾아간 때가 바로 이 시절이었다. 뒷날 작가가 된 카로사가 《아름다운 유혹의 시절》에서 이 규수 작가에 대해 그토록 찬사를 보냈던 것도 바로 이런 연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시골 아가씨의 생활에도 하루아침에 변혁이 찾아왔다. 아버지의 경제적 파탄으로 인해, 그녀는 자활의 필요를 절감하고 25세 때 사범학교에 전학하여 졸업 후에는 교사가 되어 교단에 섰다. 그녀의 꿈은 양친이 팔아버린 고향의 농장과 집을 다시 사들이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꿈은 마침내 실현되었는데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끈질기게 쓴 덕택이었던 것이다. 1891년, 33세가 되던 해 그녀는 신문의 현상 모집에 당선되어 문단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예스타 베를링의 전설〉이란 작품이었는데, 이 처녀작 역시 선의와 관용, 인간이 지닌 가치와 장래성에 대한 작가 자신의 보편적인 신념을 보인 것이었다. 그 후로 그녀는 계속 작품을 발표했다. 단편집 《보이지 않는 굴레》, 장편 《반크리스트의 기적》, 《지주댁 이야기》가 다 이 시기에 빛을 본 작품들이라 할 수 있겠다. 드디어 그녀의 대작 《예루살렘》이 1902년에 출판되었다. 이 작품으로 해서 이 여류 작가는 그 당시 스웨덴 문단을 주름잡던 자연주의와, 시대가 안은 음울한 분위기를 극복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성실하고 내성적인 종족이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가는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은 그것을 읽은 독자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체험인 듯 착각을 하게 하며 인생이 갖는 불가사의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아버지들이 시작한 일이 마치 운명의 힘처럼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그 과정에 깊은 감동을 느끼게 된다. 1908년에는 그 전해에 쓴 《닐스의 이상한 모험》이 거두어 들인 승리와 작가의 50회 생일에 보내온 온갖 갈채에 싸여 그 명성이 절정에 이르게 되었다. 국민학교 교사들의 요구에 의해서 씌어진 이 작품은 교육 개혁을 주제로 다루고 있어 한편으로는 보수주의자로부터 맹렬한 공격을 받아 그녀의 노벨상 수상에 장애를 가져다 주기도 했다. 같은해, 그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늪텃집 처녀〉를 포함한 단편 소설집을 펴냈다. 이 작품에서 버림받은 한 처녀의 순애는 소박한 젊은이로 하여금 그 영혼을 정화시켰으며 애정의 신비에 대해 새삼스럽게 눈을 뜨게 해주었고 그녀가 쓴 모든 작품의 기조를 이루고 있는 헌신적인 사랑이 차원 높게 숨겨져 다른 어느 작가도 감히 흉내낼 수가 없었다. 이런 작품들과 함께 국내외에서 몰려드는 그녀에 대한 찬사에 그렇게도 완강하던 스웨덴의 한림원도 마침내 그 고집을 포기하고 그녀에게 노벨상을 수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1909년, 그녀의 나이 51세 때의 일이다. 그녀는 자신의 약전略傳에서 그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썼다. “노벨상 덕택으로 옛날의 저택과 땅을 다시 사들일 수 있었다. 다시 농부가 된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갈던 땅을 경작하게 되었다. 이것은 새 시대의 새 출발이다. 그러나 이 출발이 무엇을 가져다 줄 것인지는 아무도 말할 수가 없다.” 이후로 이 영원한 처녀는 고향 바름란트의 넓고 깨끗한 저택에서 온 주민의 어머니로 존경받으며 그녀 최후의 시기에 작품을 구상하며 조용히 살아갔다. 이 시기에 《환상의 마차》, 《포르트가르의 황제》와 같은 작품이 간행되었다. 이윽고 1차 세계대전의 암운이 이 노작가의 선량한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져주는 시기가 찾아왔다. 그녀는 유럽에서 몰려오는 망명객들을 원조하는 데 발벗고 나섰으며, 온갖 공식 항의에 참여해 굉장히 많은 독자를 가졌던 독일에서 그녀의 책이 출판 금지되는 불운도 견뎌냈다. 그러나 이 노작가는 거기에 굴복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믿는 소박한 마음으로 전쟁을 견뎌냈다. 그녀에게도 마지막 휴식과 평화가 찾아왔다. 그러나 1940년 3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녀가 뒤에 남겨놓은 세상은 그녀가 겪었던 전쟁보다 더욱 비참하게 일그러져 갈 뿐이었다. 여기에 소개하는 이 여류 작가의 작품들은 북구 문학北歐文學을 소개한다는 뜻에서도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으나, 혼란하고 어수선한 시대에 이런 청량감 넘치는 작품을 읽는다는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데도 그 의의가 있다. 소박한 사람들의 믿음, 어디에도 물들지 않는 순애, 은광銀鑛을 스스로 포기하는 가난한 교구敎區의 목사가 알려주는 대중의 행복, 이런 것은 황금 만능에 젖은 우리들, 속된 인간들에게 크나큰 교훈을 주리라 믿는다. 셀마 라겔뢰프는 영원한 처녀였으며, 스웨덴의 혼魂이었고, 시골 여인들의 다정스러운 친구였다. 그녀처럼 어린시절부터 민담民譚과 전설에 의해 양육된 그리고 풍부한 상상력 위에 애정이 가미된 영혼만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세상의 신비를 해명할 수가 있을 것이다.

발톱

자라지도 않은 발톱, 잡새 한 마리 제대로 잡을 수 없는 엉성하고 허약한 발톱으로 세상을 얻겠다고 횡행하는 우리의 잔챙이들을 위해서 필자는 얼마 전에 <세치혀>라는 책을 써냈다. 턱없이 모자라는 체와 덕으로 입만 나불거려서는 얻는 것이 없음을 가르쳐주려고 진짜 유세객들의 혀를 한 자리에 모았더니, 이것을 읽고 홀연히 깨달아 입을 다물어야 할 자들은 이것을 읽지 않고, 안 읽어도 우리에게 아무런 해를 가하지 않거나 가하고 싶어도 가할 길이 없는 착하고 과묵한 사람들만 이것을 읽는다. 이번에는 오늘이 아닌 내일을, 지금이 아닌 먼 뒷날을 준비하는 참을성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발톱>을 낸다. 사나운 발톱을 드러내지 않고 서릿발 같은 기상과 함께 그것을 갈고 키워나갈 지혜를 이 책에서 터득한다면 글쓴이가 무엇을 더 바라랴.

세치혀

세상을 바꾸는 것은 사람이고, 그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세 치 크기의 혀이다. 혀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세 치 혀는 사람을 한없이 존귀한 존재로 올려놓기도 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나락으로 추락시키기도 한다. ..남을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물론이고 백성 노릇을 제대로 하고자 하는 많은 선한 사람들이 이 책에서 구하고 소원하는 바를 얻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가 말레이시아, 수마트라 등지를 가보고 스리랑카를 거쳐 돌아온 것은 1911년, 그의 나이 34세 때의 일이었다. 이 체험이 구체화되어 작품으로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11년 뒤인 1922년의 일이었는데, 그 수확이 바로 ‘인도의 시’라는 부제(副題)가 붙은 《싯다르타(Siddhartha)》이다. 헤세는 스스로 자처한 것처럼 동양적인 구도자요, 은둔자였고 끝없는 내면적 성찰에 의하여 자신을 해체시킨 탐구자였다. 1,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서 반전주의자로서 박해와 추방과 망명의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헤세, 그를 끝으로 한 시대의 유랑인의 고뇌는 끝났다고 하겠다. 하지만 그가 그린 작중 인물들의 번뇌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헤세의 번뇌는 인간 본성의 근원에 그 뿌리를 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작가의 구도자적 기질이 10여 년 전에 가졌던 동방 여행과 여러 해에 걸친 인도에 대한 관심, 그리고 불교에 대한 열정과 어우러져 《싯다르타》라고 하는 한 작품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싯다르타’가 도달한 경지가 헤세가 도달한 최고 · 절대의 경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이 책의 제목을 ‘불타’로 하지 않고 세존(世尊)의 출가 이전의 이름을 빌려 쓴 것으로도 짐작할 수가 있다. 헤세는 성도(成道)한 뒤의 불타보다도 생에 대한 번뇌로 출가하여 구도하기까지 불타가 걸었던 수행 과정에 관심을 두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깨달음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깨달음에 이르는 도정(道程)과 그 비밀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부제가 가리키는 바대로 ‘인도의 시’인 동시에 내면세계를 탐구하고자 했던 헤세의 고백이라고도 할 수가 있다. 헤세는 가계상(家系上)으로도 인도와 깊은 관계가 있다. 양친과 외가의 조부모가 모두 개신교의 전도사로 인도에 체재한 바가 있으며, 특히 조부는 인도어 학자였다. 그러므로 헤세는 어느 작가보다도 인도와 친숙했다. 이러한 가계상의 특수성 때문에 《싯다르타》는 간혹 서구인에게 인도와 불교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 위해서 씌어진 것이라는 평을 받기도 하며, 프로테스탄트 정신에 비친 불교관의 한 단면이어서 서구인에게 피상적인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뿐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평은 앞에서 말한 헤세의 구도자적 자세를 간과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헤세는 이 작품을 통하여 서구인에게 불교를 소개하거나 불교의 본체(本體)를 캐내거나 아시아를 예찬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만약에 그런 의도였더라면 그는 주인공을 완성자요, 선각자이며 해탈자인 불타에 초점을 맞추었을 것이며, 구도의 도상에 있는 싯다르타에 그 초점을 맞추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마지막 장에 ‘사랑’을 내세움으로써 속세의 인연에 연연하지 않도록 사랑을 금한 불타의 가르침과는 배치되기 때문에 헤세가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 또한 불교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평자(評者)들의 단견이라 하겠다. 불타의 사랑은 속인의 머릿속에 깃들어 있는 사랑과는 달리 그 뿌리가 깊고 깊은 곳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구조 또한 특이하다. 원래 ‘싯다르타’라는 명칭은 불타의 속명(俗名)인데, 이 작품에서는 싯다르타로 하여금 세존인 ‘고타마’를 찾도록 함으로써 실제상으로는 같은 인물을 작품에서는 두 명으로 나누어 놓은 셈이다. 또한 싯다르타가 이미 성불한 ‘고타마’의 설법으로도 갈증을 해소하지 못하고 스스로 구도하도록 한 점에서는 이 작품에 실명(實名)을 내세우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이 같은 인물 설정은 ‘시간’을 초월한 불교의 가르침을 작품에 전용했다고 볼 수 있으며, ‘변화가 바로 항상(恒常)’이요, ‘윤회가 바로 열반’이며, ‘마음이 바로 부처’라고 하는 불교의 본질을 교묘하게 나타낸 작가의 기교로 높이 평가할 수가 있다. 한 얼굴에 수천 명의 얼굴이 함께 어울려 강물처럼 흐르고, 이 강물이 다시 수증기로 하늘에 올랐다가 구름이 되어 다시 땅으로 내리는 끝없는 윤회를 헤세처럼 은은하게 표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만년에 이르러 헤세가 한 말은 이 작품의 먼 배경을 짐작케 한다. 헤세는 이렇게 말했다. “일생에 걸쳐 내게 끊임없는 영향을 끼친 것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말할 수가 있다. 그 한 가지는 내가 자라난 기독교적이면서도 완전히 범국가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가풍(家風)이었고, 다른 한 가지는 중국 대륙의 위대한 학자들의 가르침이었고, 마지막 한 가지는 소년기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향을 끼친 사학자 야콥 부르크하르트였다.”

아름다운 유혹의 시절

작가 한스 카로사는 부친의 가업을 이어 일생을 의사(醫師)로서 인간의 육체적 질병을 최치하기 위해 싸우면서도 불멸의 명작을 써서 인류의 정신적인 질환을 치유해 온 사람이다. 그는 의사였으므로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보다 깊게 알았으며, 그의 심정은 언제나 내적인 평온과 인간애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일찍부터 광포(狂暴)를 사랑으로 변형시키려고 노려했고, 인생의 비밀을 탐구하려는 데 일생을 바쳤는데 그러한 그의 노력은 심리적인 자기표현의 의미로서가 아니라, 인생의 법칙과 리듬을 체현한 데서 우러나온 표현의 세계였다. / '이 책을 읽는 분에게' 중에서

잔잔한 가슴에 파문이 일 때

여기에 소개하려는 《잔잔한 가슴에 파문이 일 때(Die Glaser-nen Ringe)》는 독일의 대표적인 여류작가 루이제 린저(Luise Rinser)의 처녀 작품이다. 1939년 교사직에서 물러나 1940년에 첫 작품이자 출세작(出世作)이 된 《잔잔한 가슴에 파문이 일 때》를 발표해서 린저는 하루아침에 이름을 떨치게 되었으며 그 이후로 줄곧 문필 생활에 종사하게 되었다. 그녀의 작품들이 거의가 그러하듯, 이 작품에서도 샘물처럼 솟아나는 여성의 섬세한 예지와 비단결 같은 필치로써 한 소녀가 성장해 가는 종교적·정신적인 발전 과정을 파헤치고 있다. 독자들은 여기서 가을날 잔잔한 수면(水面) 위에 자신의 모습을 새삼스럽게 비쳐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주인공은 결국 어두컴컴한 성의 전율(戰慄)을 처음으로 느끼게 되어 사춘기의 문턱을 넘어서게 된다. 여러 벗들과 어른들과의 해후와 별리의 슬픔을 맛보며 그럴 때마다 조금씩 삶의 층계를 거치게 된다. 드디어는 꿈꾸는 듯하던 소녀 시절의 성(聖) 게오로크 수도원을 다시 찾는다. 거기서 소녀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유리알같이 매끄러운 성천(聖泉)의 수면에다 돌을 던져 파문을 일으켜 그것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참모습을 찾아내고야 만다. “앞으로 나의 생애를 이끌어 갈 것은 뒤엉키고 어두컴컴하며 괴로움에 찬 인간적인 격정이 아니라는 것을. 맑고도 냉엄한 정신의 법칙이 바로 나의 생애를 끌고 가리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던 것이다”라고 주인공은 이 책의 끝에서 술회하고 있다. 이 작품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비견할 만한 작품으로서 헤세 자신도 이 책을 읽은 독후감을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정원을 지나듯 그녀의 얘기에 빠져 버렸다. 한 장면 한 장면에 대해 우아한 감사를 드리다 보니 어느덧 두 번째 읽게 됐다.” 여러 독자들에 친숙했던 《데미안》의 주인공이 소년이었다면 《잔잔한 가슴에 파문이 일 때》의 주인공은 그보다 더욱 민감하고 예민한 젊은 아가씨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작가인 루이제 린저는 계속 훌륭한 작품들을 발표하여 1952년에는 쉬켈레상(R-Schickele –Preise-Ehrung)을 받았으며, 우리나라 독자에게는 너무나도 친근한 작가이다. - 이 책을 읽는 분에게

가나다별 l l l l l l l l l l l l l l 기타
국내문학상수상자
국내어린이문학상수상자
해외문학상수상자
해외어린이문학상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