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내 꿈은 로맨티스트였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처해도 참고 견디며 낙관적으로 꿈을 가지고 즐겁게 사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였다.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에 집안이 가난하여 대학에 갈 수 있는 형편이 안될 때 초등학교 동창생이 ‘9급 공무원 시험 봐서 면서기 하면서 시골에 사는 것이 어떠냐’ 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지긋지긋한 가난을 자식 대에는 물려주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무모하게 대학을 진학했던 내가 검사가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도지사가 되고 여당대표, 대통령 후보, 야당대표가 되었다. 나는 세상을 살면서 세간의 평은 의식하지 않고 내 생각대로 내 소신대로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려고 노력했다. 이제 이순의 나이가 되어 내 나라를 돌아보면서 나는 이 나라의 혜택을 참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내 꿈은 로맨티스트였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처해도 참고 견디며 낙관적으로 꿈을 가지고 즐겁게 사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였다.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에 집안이 가난하여 대학에 갈 수 있는 형편이 안될 때 초등학교 동창생이 ‘9급 공무원 시험 봐서 면서기 하면서 시골에 사는 것이 어떠냐’ 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지긋지긋한 가난을 자식 대에는 물려주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무모하게 대학을 진학했던 내가 검사가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도지사가 되고 여당대표, 대통령 후보, 야당대표가 되었다. 나는 세상을 살면서 세간의 평은 의식하지 않고 내 생각대로 내 소신대로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려고 노력했다. 이제 이순의 나이가 되어 내 나라를 돌아보면서 나는 이 나라의 혜택을 참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