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란 숫자에 불과합니다
배움을 향한 열정과 도전정신이
여러분의 마음에도 샘솟기를 기원합니다
오늘날은 고령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새롭게 대두된 문제가 있다면 바로 노인복지문제입니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가 노인들이 맞닥뜨린 문제이자 시대의 화두이지요. 그런 노인분들을 위해 은빛둥지가 존재합니다. 은빛둥지는 노인분들의 열정으로 일궈낸 평생학습기관입니다.
라영수 원장님은 은빛둥지를 만든 장본인입니다. 2001년에 설립된 은빛둥지는 현재 20년이란 세월 가까이 유지되어 온 비영리 사회단체입니다. 노인분들은 이곳에서 컴퓨터와 영상 제작을 배우며 삶의 재미를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각종 공모전에도 참가하여 쾌거를 이루는 등 도전정신을 발휘하여 노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무너뜨리는 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은빛둥지는 라영수 원장님의 노력과 끈기의 산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화는 사람들에게 보다 널리 알려져 젊은이들의 귀감이 될 만합니다. 저자 김정진 선생님께서는 은빛둥지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한 권의 책을 쓰셨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열의에 찬 라영수 원장님의 눈빛과 수강생분들의 배움을 향한 도전정신이 떠올라 마음이 훈훈했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삶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있는 한 희망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 책을 읽는 여러분들의 마음에도 희망과 긍정의 에너지가 샘솟기를 기원합니다. - 출간후기
‘2190년 1월 1일’
이제 이사를 가야 한다. 2189년에 대전의 인구가 1만 명 미만으로 떨어지면서 정부는 대전의 모든 행정과 복지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대전에 살고 있는 주민 9,785명에게 대전을 떠나라고 권고했다. 15년 전에 대구가 사라졌다. 카이스트에서 디지털과 인류의 진화관계사를 연구하는 김찬유 교수는 세계적 석학이었다. 2170년에 펴낸 『호모 디지쿠스』는 퓰리처상을 받았고, 전 세계적으로 2억 콘텐츠가 팔렸다. 세계 인구가 7억이었다.
김 교수는 175년 전에 4대 할아버지 김정진이 터를 잡은 세종시로 이사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카이스트도 곧 세종으로 옮긴다고 했다. 지난 100년간 인구감소로 수백 개의 도시가 소멸되었지만, 세종은 공무원들이 있어 아직은 괜찮은 편이다. 김 교수는 어디로 이사를 갈까 고민을 하다가 175년 전 할아버지가 살았던 ‘첫 마을’이라는 동네로 정했다. 찬유는 새삼 자신의 나이를 떠올렸다. 이제 97세. 작년만 하더라도 법정 정년연령이 97세였지만 정부는 올해부터 3년을 더 올려 100세가 되었다. 찬유는 10년 전부터 퇴직을 준비해왔지만 퇴직하려고 하면 계속 정년연령이 올라갔다. 이유는 단 하나. 일할 사람이 없다는 거였다. 이러다 죽을 때까지 퇴직을 못할 것 같았다.
정부는 작년 출산율을 0.2%라고 말했다. 아기가 태어나면 TV에서 생방송을 하고 온 국민이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축제를 벌인다. 2190년 한국의 인구는 950만 명이고, 평균 연령은 98세였다. 법적 청년 나이는 70세였고, 노인의 나이는 100세였다. 찬유가 노인이 되려면 아직 3년이 남았다. 노인이 된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노인이 되면 한 달에 100만 원씩 노인세를 내야했다. 한국정부는 2110년에 연금고갈을 선언하고, 연금제도를 중단했다. 정부는 국방과 치안 등 최소한의 서비스만 제공했다. 각자도생의 시대였다.
찬유는 35세에 하버드 대학교 인류학과 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47세에 한국의 카이스트로 학교를 옮겼다. 노인의 나라 한국을 위해서 뭔가 해야겠다는 소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해답을 찾지 못했다. 오늘 아침 그는 아내와 함께 떡국을 먹으며 또 한 살을 먹었다. 오후에는 국립세종도서박물관에 들렸다. 100년 전에는 국립세종도서관으로 불리던 곳이었다. 이제 인류는 종이로 책을 만들지 않았다. 모든 책은 전자책으로 만들어졌다. 이제 사서란 직업은 사라졌고, 박물관 큐레이터만 있을 뿐이다. 참! 그 큐레이터는 전부 AI(인공지능)이다.
도서박물관은 한산했다. AI 큐레이터가 반갑게 맞았다. 한쪽에서는 책을 천장 높이만큼 쌓아두고 있었다.
“저 책들은 뭔가요?”
“시민들이 30년 동안 한 번도 찾지 않은 책을 버리려고 꺼내 놓은 것입니다.”
찬유는 그곳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위에서 아래로, 옆에서 옆으로 책을 쭉 훑어보다가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직원 평균 70살, 세계 최고령 기업의 비밀.’
저자의 이름을 본 순간 살짝 웃었고, 저자의 프로필을 확인한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김정진’
찬유의 4대 할아버지였다. 찬유는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3시간 만에 책을 다 읽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더니 4대 할아버지가 170년 전에 이런 책을 썼다는 게 놀라웠다. 무엇보다 책 속의 주인공 ‘라정우’를 알게 된 것은 엄청난 발견이었다. 그는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세계 최초의 ‘호모 디지쿠스’였다. 호모 디지쿠스는 디지털로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고, 젊음을 되찾은 인간을 말한다.
‘라정우! 이분은 재평가를 받아야 해. 당장 논문을 써야겠어. 인류의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던 21세기에 디지털로 청년의 삶을 산 그는 인류 최초의 호모 디지쿠스야!’
찬유는 국제학술대회에서 라정우가 인류 최초의 ‘호모 디지쿠스’임을 밝혔다.
인간은 21세기가 되면서 디지털을 활용해 수명을 연장하고 가파른 진화를 해왔다. 찬유는 진화가 처음 일어나던 그 근원을 파헤쳤다. 그러나 아무리 뒤져도 인류 최초의 ‘호모 디지쿠스’는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 할아버지의 책에서 발견한 것이다.
3개월 뒤, 찬유는 논문을 쓰고,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를 했다.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유네스코는 인류의 수명연장과 젊음 유지에 기여를 한 학자들에게 주는 상을 ‘라정우상’으로 정했다.
22세기 되면서 다양한 문화와 전통이 분해되고, 사라지고, 융합되었다. 21세기와 비교해 바뀌지 않은 것은 딱 하나, 바로 ‘제사’였다. 80년 전 유네스코는 한국의 제사문화를 인류무형문화재로 등재를 하고 제사를 지내는 집에는 세금을 감면해주었다. 그렇게 전통은 지켜지고 있었다. 4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을 알아낸 찬유는 할아버지에게 제사를 올리며 말했다.
“할아버지가 쓴 소설 속의 실존인물. 라정우가 인류 최초의 호모 디지쿠스로 선정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