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느낌은 무정형이 아니다. 느낌은 아주 명확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 느낌은 결정적이고 전략적이다. 이야기가 찾아오면 이야기를 이야기가 아니라 느낌이라고 받아들이려 했고, 그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온전히 보전할 수 있었다. 느낌만 오는 경우는 없었다. 느낌은 뭔가를 끌고 온다. 냄새나 벽지, 껌 같은 것 말이다. 그것은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는 시작 지점 같은 것이다.
― 「쓰지 못한 것들」 중에서
내게 문 열기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문 열기가 가장 재미있는 놀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 열기라는 두 단어가 눈이라는 연약한 기관을
위한 촉각物을 만드는 데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내게 글 쓰기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글 쓰기가 가장 재미있는 놀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 쓰기라는 두 단어가 눈이라는 연약한 기관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연약한 기관을 위한 아무것도 안 하기.
너무나도 연약한 인간을 위한 아무것도 안 하기.
나는 시간이라는 족쇄에 얽매여 있는 새의 주홍색 살갗을 보았다. 나를 거짓말쟁이라고 해도 좋다.
(…)
나의 한자 이름은 金踰琳이다. 아름다움을 넘어선다, 는 뜻이다. 존 케이지는 ‘아름다움이 끝나는 곳에서 예술이 시작된다’는 식의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 사실을 모른 채, 2022년, 踰琳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
이것이 별세계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나도 모른다.
당신이 이 시집을 읽다 보면, 어떤 문형門形이 눈에 띌지도 모른다. 그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2022년 4월
김유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