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서울 해방촌의 한 골목에서 몇 걸음을 내려가면 시멘트로 된 계단이 나옵니다. 그 계단을 따라 솟아 있는 벽의 끄트머리에는 작은 흰색 문이 하나 있는데, 언제나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어 창고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초여름을 앞둔 어느 날 오후, 그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안쪽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왔죠. 그 앞을 지나며 곁눈질로 슬쩍 보니 벽에는 옷 몇 벌이 단출하게 걸려 있고, 사람 그림자가 보였습니다. 바로 붙어 있는 옆집의 주인이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넣어두는 곳이라고 짐작했으리만큼 좁다란 공간에서, 침대에 앉은 한 남자가 양말을 개면서 노래를 흥얼거리더군요. 거기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오래 그곳에서 살았을지 가늠해보려고 했습니다. 문득 15년 전, 메데인에서 보았던 닮은 광경이 기억났습니다. 메데인은 「나르코스」(2015?)라는 드라마 덕분에 저의 한국 친구들마저 주인공이 내뱉던 욕을 재미로 흉내 낼 정도로 유명한 도시가 되었지만, 저는 메데인이라는 이름에서 무자비했던 콜롬비아의 1990년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도 명확하게 누구라고 특정하기가 무서울 정도로 극악한 마약업자들이 설치한 폭탄 차량이 길거리에서 수시로 터지던 시절이었습니다. 2007년의 어느 하루, 저는 바로 그 도시에 자리 잡은 독 신 노동자들이 주로 모여 살던 지역을 찾아가 값싼 셋방 을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한 건물에 들어가 집주인을 따 라 둘러보며 복도를 지나던 중에 우연히 문이 열려 있던 방의 내부를 들여다보았습니다. 벽에는 옷 몇 벌이 걸려 있었고 한 남자가 침대에 앉아 있었습니다. 윗도리를 벗 고 있던 남자가 낮은 음성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냄비 째 식사하던 풍경이 생생합니다.
가난한 두 남자. 둘 다 독신이지만 한 명은 콜롬비 아인이고 다른 한 명은 한국인입니다. 어쩌면 그 둘은 젊었을 때 지구 반대편에 있는 비슷한 공장들에서 각각 일했던 경험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6개월 동 안 살았던 삶처럼요. 그들과 다른 점이라면 저는 책을 쓰기 위해 그 삶을 선택했었다는 것이고, 이전의 삶으 로 돌아왔다는 점입니다. 물론 돌아온 삶은 엄밀히 말 해서는 이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이 책을 그 남자들, 그 여자들,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그들에게, 고된 공장일과 아무것도 꿈꿀 수 없는 임금 속에서도 초여름 오후 가만히 노래를 흥얼거리는 그들에게 바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