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정수리로 하늘을 이고만 다녔지 그 아래 눈으로 하늘 보긴 쉽지 않았습니다. 사는 게 바빴나요. 사실 뒤돌아보면 그다지 바쁘게 살지 않은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32m까지 올라가는 스카이차를 보고 있으려니 건물 끝에 앉은 하늘로 눈이 옮겨지더군요.
예전엔 미장 칼로 쓱 흩고 간 하늘이 좋았습니다. 맑고 티 없는 하늘이 좋았습니다. 솜씨 좋은 미장공의 손에 다듬어진 것 같은 하늘이 좋았지만, 어느 날 그런 하늘에 싫증이 났습니다. 아마 그래서 하늘을 더는 보지 않으려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스카이차 위로 검고 뿌연 색에 전갈처럼 꼬리를 세운 구름이 내려앉았습니다. 뭔가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들자, 제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습니다.
“그래, 스카이차가 전복되는 거야. 하늘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전갈의 꼬리를 잡고 오르는 거야. 거룩한 하늘은 성을 내고. 자기 꼬리를 잡고 오르려는 자를 빗물을 뿌려 떨어뜨리는 거지. 그게 안 되면 천둥을 불러 놀라게 하고, 또 아니면 번개를 불러 찌르는 거야. 지가 안 죽고 배겨. 자, 자. 자꾸 상상의 나래를 펴자구. 스카이차가 있구, 하늘이 있구, 악마를 태운 구름이 있구, 죽을 사람이 있구. ”
황당하지만 내 소설은 이런 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길에서 쇠락한 나뭇잎을 같이 밟는 지인이 던져준 한마디에 소설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글과 인연을 맺으려 했던가 봅니다. 그중 처음 인연이 된 소설이 『골분』이고 원제목은 『땅개』였습니다. 대충 내용을 간추리자면 이렇습니다. 고향으로도 꺼릴 화장막에 기대 사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곳으로 한 여자가 흘러들어오고, 그 여자는 개 잡는 일을 하고, 인간의 폭력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던 개는 돌아와서 폭력으로 대하던 죽은 자가 묻힌 땅을 파헤치는 장면…, 이것이 소설 창작의 첫 시작입니다. 소설 『골분』은 무자비한 폭력을, 개를 통해서 고발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초겨울 한밤중 물대포를 쏘아 죽음에 이르게 한 경찰에 분개해서 쓴 소설은 『명암방죽』입니다. 소설 배경과 사건은 한참 과거지만 민주주의 시대에도 그들의 폭력적 뿌리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는 걸 『명암방죽』을 통해 밝히고 싶었습니다.
우연히 들어선 골목에서 하룻밤 자고 가라며 팔목을 잡는 여자를 만났습니다. 하루 밥 세 끼만 먹으면 되는 같은 처지인데도 돈에 목말라하는 꽤 나이 든 여자였습니다.
워낙 힘 있게 잡았던 지라 뿌리치기 쉽지 않았습니다. 아마 유곽의 그 여자가 그렇게 잡은 것은 우연히 걸린 고기라도 놓쳐선 안 되겠단 굳센 마음이 앞섰던 거겠죠. 부채처럼 껴안은 목숨줄을 어쨌든 버티고 살아야 하니까. 그때 생각난 게 『부산을 쓴다』에서 나온 천종숙 시인의 「춘화도」였습니다.
세월이 빠르게 달려가는 길목이었어
몇 번의 봄이 지나가고 있었는지 몰라
- 중략 -
춘화 속의 여자는 늙어가는 사내의 손길에도
빛 바랜 추파를 던지고 있었는데
비틀린 웃음처럼 서글퍼 보이는 거야
이렇게 시를 통해 나온 소설이 『완벽한 그림』과 『십계』입니다.
우울하기만 했던 학창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 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중 한 편은 『』고 또 한편은 『문門』입니다. 거기선 곳곳에 내가 들어가 있습니다. 『』에선 잔약하고 무른 정희라는 아이가 저였습니다. 『문門』에선 똥종이를 햇살에 비추는 아이와 뭐든지 다 알겠다면서도 막상 아무것도 모르고 가난에 허덕이는 봉근이가 저입니다.
글 나부랭이 좀 안다고 뻐기고 한 적도 없고 글로 스타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왕 글 쓴 거 길게는 가고 싶었습니다. 비틀즈의 ‘링고 스타’처럼 말이죠.
드럼 스틱을 잡은 링고 스타가 오죽 드럼을 못 쳤으면 폴 매카트니가 대신 쳐주었을까마는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존 레넌, 조지 해리슨, 폴 매카트니, 이들 사이에서 링고가 살아남은 것은 그저 때 묻지 않은 천진함이었겠죠. 열광적 팬에게 총 맞아 죽은 존 레넌과 58세 젊은 나이에 폐암 걸려 죽은 조지 해리슨, 음악적 부침을 거듭한 폴 매카트니. 이들에 비해 음악성은 다소 떨어져도 생을 다 누리고 산 스타 ‘링고’를 닮고 싶습니다. 남들 하기 힘들다는 소설이란 거룩한(?) 작업에 한때 몸담았으나 주변을 맴도는 스타 ‘링고’처럼 사는 게 꿈이죠. 가는 똥 누고 오래 가자는. 이제 그래서 ‘글씀’이란 오랜 시간 속에 나온 나의 단편 소설집은 가는 똥에 불과합니다.
이 소설을 그래도 눈여겨보곤 지원금 교부를 결정해 주신 부산문화재단에 이 지면을 빌려 감사하단 말씀을 올리고, “발문을 내가?” 어렵다고 하면서 맡아주신 이종진 브니엘고등학교 교장 선생님께도 감사 인사 올립니다.
교정과 편집은 물론 쉼 없이 소통하며 내 부족함을 일깨워준 푸른고래 출판사 대표 오창헌 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나와 학교 우정, 생활 우정, 취미 우정, 정치 우정을 함께 쌓고 나눈 모든 분께 고맙다는 인사를 올립니다. 끝으로 매일 힘들다 그만두겠다 하면서도 끈덕지게 버텨내며 서울 생활을 잘해 나가는 딸, 고맙다.
2024년 11월
이제 막 나이 이순에 들어섰다. 소개 첫 글부터 고루한 냄새를 풍기긴 해도 글은 오십 초반부터 썼다. 딱히 문학을 배운 적도 없고 글쓰기 수업을 받아본 적도 없다.
소설 「대금 소리」는 전국에 있는 산을 타면서 들었던 각종 얘기와 서적을 모아 정리하면서 쓴 소설이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글의 방향이 잡혀가는 걸 느꼈고 그것에 역사성과 상상력을 보탰다.
30년을 노동판에 깊숙이 뿌리박고 살았다. 누구 말대로 특별히 영특한 구석도, 재주도 없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오로지 글 쓰는 것이었다. 열두 시간을 꼬박 공장에 박혀 숨 가쁜 노동을 하면서도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던 글을 쓰기 시작했다. 통근버스를 타기 위해 30분을 걸어가면서 머릿속을 정리하고 30분 후면 도착할 통근버스 안에서 글을 썼다. 1년이 걸려서야 이 소설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음습한 그늘에 켜켜이 재어져 있던 역사를 「대금 소리」를 통해 온기를 쬐어주고 싶었다. 나의 첫 장편소설 「대금 소리」는 그렇게 무모하게 세상에 나왔다.
1945년 이후 소련과 미국이 분할통치하며 그어놓은 한반도 3·8선은 성냥만 그어대면 터질 수 밖에 없는 화약고였다. 한반도는 언제든 전화에 휩싸일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전화라는 예정된 순서는 한반도를 비껴갈 수 없는 운명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일본제국주의와 맞서 싸우던 총구는 남은 북으로 북은 남으로 향했다.
1948년 10월 19일 일어난 여·순 사건은 여수에 주둔하던 14연대 소속 군인들이 제주 4·3 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봉기한 사건이다. 여순 사건과 제주 4·3사건을 일직선으로 관통하던 정국은 급기야 무력을 동원한 전쟁으로 치닫게 되고 한쪽 이념의 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파르티잔은 선택의 여지 없이 남한 내 빨치산으로 남게 된다. 여수와 순천에서부터 시작하여 호남 영남 일대 지역에서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이 일어났다. 두 이념이 만나 충돌을 일으키므로 해서 결국은 광폭해지고 서로에게 뼈저린 상처만을 남겼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불어닥친 또 다른 보복의 악순환이 시작되고 있었다.
일본제국주의에 억압받던 조선인이 해방되자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또다시 내쫓기는 세상에서 어쩔 수 없이 산으로 쫓겨간 사람들이 빨치산이 되었고, 그들은 일제강점기 때도 선택의 여지 없이 식민지 조선인임을 받아들인 것처럼 해방을 맞은 조국에서도 자기 존재를 부정당하는 세상에 대한 절규로 이념을 받아들였다.
그런 상황을 맞이한 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란 옛날로부터 자신들을 말없이 품어주었던 산에 드는 일이었고, 산은 또한 그렇게 받아주었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절벽 끄트머리에 서서 머리맡 위로 쏟아지는 가공할 포탄을 맞으면서도 이 땅의 풀처럼 숙명을 거부하지 않고 스스로 걸어서 죽음을 택했다.
어찌 보면 이 소설의 제목은 ‘山’으로 정했어야 마땅할 정도로 소설 전 과정에서 산은 위대함으로 나타난다. 팔영산, 조계산을 비롯하여 지리산 여러 곳과 영남의 알프스라고 하는 영축산, 고헌산, 운문산, 신불산이 나타난다.
소설 도입부에서 처음 등장한 산은 팔영산이다. 주인공 현의 귀환을 맞는 산이기도 하다. 팔영산이 서정을 담았다면 이어지는 지리산은 격정을 담았고 신불산은 절정으로 치닫는 자들의 마지막 저항지였다. 선 굵은 자들의 역사는 그곳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산을 주 무대로 펼쳐지는 이념과 이념의 대립은 피를 불렀고 복수는 끊임없이 순환하는 소용돌이와 같이 한시도 이 땅의 것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생명 파괴가 이어지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보기엔 절박했고, 누군가는 끊어내야 했다. 이것을 풀 수 있다고 믿었던 건 사람과 함께 오랜 세월 숨을 같이 한 우리네 악기였다. 한반도의 아픔을 가장 잘 이해하는 악기는 대금이란 사실에 착안하여 대금의 역사를 캐 들어갔다. 그때 만난 음은 한이 담겨 있었고, 그 한이 응축된 채로 발버둥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비극적 전쟁을 초래한 한반도의 질곡의 역사가 그대로 담긴 것이었고, 그것을 풀어내지 않고는 소설 「대금 소리」를 맺을 수가 없었다. 남북이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이용하는 사상적 굴레와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 빚어지는 갈등과 대립을 대금을 통해서 풀고 싶었다. 그것이 나의 소망이었다.
「대금 소리」 개정판을 펴냄에 있어 수정과 교정, 퇴고의 전 과정을 맡아 아낌없이 수고해 주시고 여러모로 도움을 주신 오창헌 푸른고래 출판사 사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