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마다 느끼는 바이지만 올 여름이 가장 더운 여름인 것 같다. 온난화의 경고가 현실화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한낮의 기온은 텃밭에 나가볼 엄두를 가져가버린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흐른다. 선풍기는 연신 바람을 보내지만 그 바람조차도 후텁지근하다. 해발고도가 조금 있는 곳인데도 산 아래 동네랑 큰 차이가 없다. 내년에는 과부땡빚을 내서라도 에어컨하나 설치해야겠다.
살아온 날들을 뒤돌아 볼 나이가 되었나보다. 힘이 부칠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열정도 식어가고 있고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강하게 누른다. 이때는 매듭 하나를 묶을 때라는 생각이 든다. 중간결산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그동안 끄적거려 놓았던 글들을 모아보았다. 제법 글이 모였다.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에게 시집을 낸다는 말을 하였더니, 시인이라고 부른다. 난 그 말이 쑥스럽고 자꾸 들을 때는 놀림으로 들린다. 내가 책을 낸다는 사실이 영 어색하기만 하다. 발가벗긴 채 광장에 서 있는 느낌이다. 친구 놈 말대로 개나 소나 다 책을 낸다는 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남긴다. 기록의 차원에서라도 말이다.
그래서 큰 욕심도 기대도 않는다. 문학성도 잘 모른다. 다만 큰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한 나약한 인간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당시 어떤 맘으로 살았는지 후세들에게 증거가 되고 싶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또 다시 암울한 역사가 반복되었을 때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지 사람들에게 참고 정도 되었으면 좋겠다.
현재의 높은 기온은 인간을 동물 수준으로 끌어 내린다. 오로지 생존을 위한 몸부림 속으로 인간을 던진다. 겨울에 후회할망정 얼른 기온이 내려갔으면 좋겠다. 서늘한 공기의 청량감이 그립다. 그 청량감 속에서 나와 얽혀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 환경이 다시 만들어진다면 다른 욕심은 잠시 접을 수 있을 것 같다.
어쨌거나 자연현상으로 볼 때 가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가을은 그리움의 계절이다. 이 보잘 것 없는 시집이 팍팍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서가 되길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2018년 징하게 더운 여름날 무성산 자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