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양식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으로 읽히길 바란다. 양식 개념은 충분히 낡은 개념이지만 여전히 외면당해온 영역이다. 양식론의 제기를 혹여 안이한 텍스트주의로의 환원으로 읽는 벗들은 없으리라 믿는다. 주체와 역사, 풍속과 문학, 전통와 혁신, 정신과 형식이 텍스트의 안과 밖을 아우르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양식이라 믿기 때문이다.
어디 학생뿐이겠는가. 내가 우연히 만났던 많은 사람들은 종종 나의 직업을 물어보고는 - 나에게 맞는 화제를 찾아주겠다는 고마운 배려로 - 자신의 머리에 내장된 독서 목록을 더듬다가 <소나기>나 <메밀꽃 필 무렵> 그리고 '청록파' 시인의 작품 등을 찾아낸다.
더러는, 그런 작품을 읽으며 작품의 세계에 심취했을 때가 좋았다며 너털웃음을 짓기도 한다. 혹자는 <소나기>의 애틋함과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가슴저림을 되새기며 요즘엔 이런 작품이 드물다고 한탄한다. 모름지기 문학이란 이러해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하는 이들도 많다.
(...) 왜 한국의 근대소설사에서는 전통적인 서정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작품들이 더욱 광범위하게 대중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가? '전통'이라면 서둘러 버리고 배척하며 숨가쁘게 근대화에 매진해온 민족에게 이런 작품들이 지니는 영향력의 원천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