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수는 우리에게 조선 시대에 활동한 탁월한 암행어사로 잘 알려져 있다. 암행어사란 왕명으로 몰래 지방을 정탐하며 지방관을 감찰하고 그들이 잘못한 일을 징벌하던 정의로운 관리를 뜻한다. 하지만 실제 박문수의 암행어사 활동은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과는 다른 점이 많다. 그는 1727년(영조 3년) 가을 9월에 ‘영남별견어사’로 임명되어 영남지방에 파견된 것 이외에는 특별히 어사로 파견된 적이 없었다. 그나마도 암행어사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암행어사라고 하면 박문수를 떠올릴 정도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으며 영남은 물론 온 나라에 그와 관련된 설화가 무수히 전해지고 있음은 무슨 까닭일까? 백성들의 믿음이 담긴 마음속 이야기가 아닐까? 철저한 신분제도 아래에서 천민이 겪어야만 했던 울분을 그를 통해 대신 드러낸 것이 아닐까? 박문수가 영남 어사로 파견 나갔을 때 오로지 백성을 위한 환곡 정책을 실현하려고 한 일이라든가 군포를 양반들도 내도록 한 것, 탐관오리들을 후련하게 다스린 점 등이 당시에 가난하고 억울하게 살아가던 백성들의 한을 풀어주는 정의로운 행위로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