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으로 두 명의 형사가 왔다. 아이를 낳아 퉁퉁 부어 있는 내 얼굴에 대고 그 사람을 아느냐, 하고 물었다. 반정부 시위로 지명수배자가 된 그의 방에서 찾은 편지의 수신인을 찾아서 왔다고 하였다. 형사들은 연신 이상야릇한 웃음과 반말로 그의 행방을 물었다.
그런 모욕을 당하면서도 나는 어떻게 말했던가. 그의 행방을 알기는커녕 그의 구국을 위한 민주화의 열망이나 신념에 동조하지 않은 지 오래라고 말했다. 내 말에 믿는지 믿지 않는지 모를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형사가 돌아갔다.
그날, 비겁한 나를 보았다. 내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안간힘을 다 쓰면서도 다수의 것을 지키기 위해선 지독하게 인색한 나를 보았다. 무엇보다 두려움이 많고 고통에 취약하여 불의에 눈을 감는 엉망인 몸과 정신을 지녔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내가 소설을 쓰는 이유는 변명하기 위해서이다. 치욕적인 그날과 그와 유사한 많은 날들에 속수무책이었던 것에 대한 변명을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소설 또한 서슬 푸른 공권력과 다르지 않아 조금이라도 안일하거나 무력하거나 방심하면 끌려가고 감금당하고 고문당하는 옥고와도 같았다. 그리하여 하루는 백기로 투항하였고 하루는 붉은 깃발로 저항하였다.
이런 개인사로 인해 나는 소설가와 혁명가와 구도자를 혼동하고, 정확히 말하면 혼동하길 원한다.
사랑의 언약을 지키느라 어두운 길 위에서 기다렸던 수많은 연인의 굽은 등을 기억하고, 일장기를 뭉개며 저항했던 한 신문사의 편집국장이자 소설가를 기억하고, 애국이 아니라 진실에 복무한 언론인이 있음을 기억하고, 제 나라 국민에게 총을 겨누라고 시킨 수장의 상을 거부한 명창이 있음을 기억하고,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고 권력에 굴종하지 않은 시인이 있음을 기억한다.
또한 치열하게 살았으나 욕되게 살 수 없어 벼랑에 몸을 던진 불꽃의 지도자가 있음을 기억하고, 강의 물길을 막는 것을 저항하느라 분신한 비구니가 있음을 기억하고, 그보다 더 오래전에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외치며 분신한 청년이 있음을 기억한다.
이 기억하는 힘으로 소설을 썼다. 이들에게 빚을 갚고야 말리라는 각오로 썼다.
고 김남주 시인의 시집 『조국은 하나다』 중 「시의 요람 시의 무덤」이라는 시가 있다. 시의 첫머리에 이렇게 씌어있다. ‘과거의 시는 표현이 내용을 능가했다. 그러나 미래의 시는 내용이 표현을 능가할 것이다. - 마르크스’
그리고 시 마지막 연은 이렇다.
‘나는 책상머리에 앉아 시라는 것을 억지로 써본 적이 없다고 내 시의 요람은 안락의자가 아니고 투쟁이라고 그 속이라고 안락의자야말로 내 시의 무덤이라고’
소설을 쓰면서 이 시를 내 소설의 교본으로 생각했다. 삶의 교본이기도 했다. ‘어떻게’보다 ‘무엇’을 지향했다. 익숙한 것들, 슬픔을 모르는 상태, 복종과 굴종, 안락과 안위는 무덤처럼 여겨야 한다고 나 자신을 세뇌시키며 이제껏 소설을 써 왔다. 그 결과 내 소설의 문체와 주인공들은 비린 날것의 냄새를 생생하게 풍기고 있다. 이 단편집 『날것의 생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책이다.
도움을 많이 받았다. 먼저 실천문학사의 윤한룡 대표와 소설에 대해 아낌없는 조언을 해 준 남금희 시인과 문우 장정옥, 오철환, 이홍사, 노정완, 이근자, 임수진, 황영은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소설에 대한 내 열망을 따뜻하게 바라봐 준 두 남동생 이창훈, 이성훈과 오랜 친구 백명자와 김재정, 김미경과 금이정, 박경화, 선지식 광인스님, 그리고 내 가슴 속 별이 되신 아버지와 아름다운 어머니 김연이 여사에게도 거친 눈빛의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침묵으로 그 수많은 말을 삼키던 속 깊은 아들 최준호에게도 감사드린다.
소설을 쓰고자 한다고 말했을 때 어머니가 말했다.
“소설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다. 한이 있는 사람이 쓰는 거지. 여자가 한이 있으면 인생이 얄궂어진다.”
노인들은 사랑을 빙자한 겁박으로 자식을 모험에 나서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나는 소설을 쓰려면 한이 있어야 한다는 말에 꽂혔다. 얄궂고 신산스러운 삶이 소설을 쓰는 여자의 운명이라니, 이보다 더 심장 뛰는 일은 없을 거야. 이후 나는 위험하고 불길하고 불온한 것에 더욱 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