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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에세이

이름:김형석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20년, 평안남도 대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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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100세 철학자의 사랑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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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철학자의 사랑수업

산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산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철학자 괴테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늙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칠순을 맞으면서도 정열에 찬 사랑의 시를 쓸 수 있을 정도로 꿈과 낭만을 지니고 살았다. 괴테와 같이 가능하다면 모든 인습과 전통의 옷을 벗어버리고 죽는 순간까지 사랑의 시로 가득한 젊음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내세를 믿는 사람은 죽음을 새로운 탄생으로 맞이한다는 말이 있다. 영원을 산다는 것은 젊음을 산다는 뜻이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피해 아테네를 탈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진해서 죽음의 독배를 기울였다. 죽음보다 더 귀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위해서였다. 예수는 사형의 십자가를 예견하고 있었다. 그런데 죽음을 향해 가는 발걸음은 다른 때보다 더 빨랐다. 제자들이 놀랄 정도였다고 기록돼 있다. 빨리 가서 삶의 완결을 성취해야 한다는 절박감 같은 것을 안고 있었을 것이다. 마치 죽음이 목표와 목적인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죽음 자체가 목표가 아니다. 죽음을 통해 완성해야 하는 인간에 대한 사랑의 의미와 가치였던 것이다. 목적이 있어 죽음을 택했다고 봐야 한다. 죽음은 더 높은 사랑의 목적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자기 목숨이나 삶보다도 더 소중하고 영원한 것이 있다면 죽음은 기꺼이 맞이하고 보내야 하는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썩어서 열매를 맺는 밀알의 교훈이 바로 그런 것이다. 썩지 않으면 한 알의 밀로 남아 있다가 그냥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썩어서 수많은 밀알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죽음의 의미도 그렇다. 그 뜻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주어진 삶을 다 바치고 싶은 무엇인가를 사랑해야만 한다. 그것만이 죽음을 극복하는 참되고 영원한 삶의 길이다. 그런 사랑에 이르는 죽음의 뜻은 유언으로 남겨지기도 한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나는 행복했습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라는 기원을 남겼다. 예수는 “다 이루었다.”는 감사의 사랑을 우리에게 영원히 전해주었다. 지극한 인간애, 인간에 대한 사랑을 목적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대표적인 고백이다. 인생이란 이렇게 서로 사랑을 나누는 동안에 행복과 보람을 같이 하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살기 때문에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는 과정을 통해 내가 그들을 위하고 사랑하면서 소중한 인생의 가치와 희망을 찾게 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사랑의 나무와 숲을 키워가는 것이다. 사랑을 받으며 자라는 시절을 보낸 후에는 사랑을 나누어 갖는 긴 세월을 살게 되고, 더 많은 사랑을 베풀 수 있기를 염원하게 된다. 100년은 긴 세월이었다. 그러기에 풍부한 사랑을 나눌 수 있었다. 때로는 그 사랑이 무거운 짐이기도 했으나 더 넘치는 사랑이 있었기에 행복했다. 나는 그렇게 사랑을 했다. 여러분도 사랑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 서문

100세 철학자의 인생, 희망 이야기

나는 중고등학생 때 삼촌의 사과나무 과수원 속에 산 적이 있다. 그 당시의 사과나무는 크게 자란 거목들이었다. 언제나 나무의 가지, 잎사귀, 꽃들을 보았고, 가을이 되면 익어 가는 열매를 살피곤 했다. 한 번은 삼촌이 작은 묘목을 심으면서, 이 뿌리와 가냘픈 밑동의 생명 속에 저런 꽃들과 열매가 숨겨져 있다고 얘기했다. 긴 세월을 교육계에 몸담고 살아오면서 늦게 깨달은 바가 있다. 가장 소중한 교육은 인생의 뿌리와 밑동에 해당하는 시기라는 사실이다. 나 자신이 그렇게 자랐다. 중학교 때 동창이었던 윤동주는 시를 쓰는 것이 필생의 목적이었다. 그때는 병아리 시인이었던 그가 세상에 큰 울림을 남겼다. 작가 황순원도 그랬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작가로 살았다. H라는 일 년 후 배가 있었다. 그는 일찍부터 소아과 의사가 된다고 했다. 어려서 목숨을 잃는 어린애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그 아까운 생명의 은인이 되고 싶었던 모양이다. 우리나라 소아과 의료계의 존경받는 선구자가 되었다. 지금도 나는 학생들에게 충고하는 때가 있다. 20대 전후가 되어서는 50~60대가 되었을 때 내가 어떤 직업을 갖고 봉사하는 사람이 될지 자화상을 그려 보라는 권고이다. 그 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는, 성공과 실패에서는 물론 인생의 의미가 결정되는 것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대학생이 되거나 성인이 된다는 것은 목적이 있는 삶의 출발에서 시작된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지 않는 사람은 자기 인생의 성공을 거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오래전에 젊은 세대들을 위해 썼던 글은 그런 문제들을 취급한 내용이다. 목적이 희망이 되고 희망이 있었기에 용기를 갖추는 젊은이들을 키우고 싶었다. 최근의 많은 젊은이들은 우리에게도 장래가 약속되어 있는지를 묻는다. 희망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가 만들어 가야 한다. 옛날에 살았던 젊은이들은 더 어렵고 힘든 세월을 살았다. 그러면서도 오늘의 건설을 이루어 놓았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아시아나 세계의 어떤 젊은이들보다도 장래가 뚜렷한 희망을 인정받고 있다. 용기와 봉사의 사명감만 있다면 보람 있는 장래는 주어져 있다고 믿는다. 오늘의 젊은 독자들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되길 기원한다. - 철학계의 거장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가 독자들에게 드리는 글

100세 철학자의 철학, 사랑 이야기

예전에 교과서에 실렸던 이야기가 있다. 한 철학자가 따뜻한 봄날 산책을 나섰다. 어떤 농부가 연장을 메운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었다. 그 모습이 대단히 행복해 보였다. 상쾌한 바람을 받으며 옥토를 갈아 제치는 생산적 직업이 자연과 어울려 아름답기도 했다. 철학자가 농부에게 말했다. “참 행복해 보이십니다. 하늘이 준 축복받은 직무를 수행하는 자세가 부럽습니다.” 그런데 농부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재산이 있으면 이런 고생스러운 일은 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머슴이니까 할 수 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철학자는 다시 산책을 계속하다가 몇몇 신사들이 넓은 잔디밭을 다니면서 골프를 하는 것을 보았다. 그중 한 사람에게, “한참 동안 여러분들이 하는 일을 지켜보았는데 참으로 불행한 직업을 택하셨습니다. 무슨 할 일이 없어 그 작은 공을 구멍에 넣기 위해 그렇게 고생하십니까! 농부와 같은 생산직도 아닌데…….”라고 말했다. 그 신사는 철학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당신은 우리를 돈 받고 노동하는 일꾼으로 보는 모양인데, 우리는 많은 돈을 쓰면서 인생을 즐기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마치 철학자를 어리석은 외계인으로 보는 것 같았다. 철학자는 집에 돌아와, ‘왜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불행해지고 무의미한 일에 땀을 흘리는 사람은 행복해질까?’ 하는 고민에 빠졌다. 그 교과목을 끝내면서부터 우리 반 친구들이 내 별명을 ‘철학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 별명이 내 이름을 대신해 따라다닐 줄은 나도 몰랐다. 한때 나는 서양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플라톤의 철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이데아(Idea)에 대한 에로스(Eros)의 사상이다. 인생의 내용으로 바꾸어 보자면, 영원한 것을 사랑하는 노력이 철학인 것이다. 그때 내가 영원한 사랑의 대화에 대하여 쓴 책을 수많은 젊은 세대가 애독해 주었다. 젊은 시기에 영원한 것을 애모해 보지 못했다면 참된 인생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랑은 진리, 아름다움, 선으로 향하는 노력으로 끝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애의 완성이다. 인간애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차지한다. 연인 간의 사랑은 물론, 우정도 그 하나이며 인류에 대한 사랑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기에 그 사랑의 노력은 인간관계는 물론 사회와 역사의 과제이기도 한다. 그런 인간애의 사랑 있는 노력의 결과는 무엇인가. 한 시대의 철학자들은 허무주의를 택했고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운명론으로 귀결했다. 나는 ‘운명도 허무도 아닌 무엇’이 있어야 한다고 염원했다. 그 결과로 얻은 것이 어떤 섭리일 것이라는 길을 택했다. 그런 철학적 고뇌의 과정을 거치면서 젊은 세대와 마음과 사상의 대화를 나누어 왔다. 그 기간에 남겨진 글들을 모아 또 한 권의 책을 묶어 본 것이 이 책이다. 나와 같은 철학적 문제와 삶의 과제들을 안고 살아가는 후배들에게 대화의 내용이 된다면 고맙겠다. 먼 후일에는 모두가 자신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찾아 누리기를 바라면서. - 철학계의 거장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가 독자들에게 드리는 글

김형석 교수의 행복한 나날

100세가 넘으면서부터는 하루하루가 그렇게 소중하고 아쉬울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무거운 짐은 ‘나를 위하고 사랑해 주신 여러분에게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의 빚입니다. 다 갚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죄책감 같은 아쉬운 심정입니다. 그런데 연말을 맞이하면서 예상치 못한 반가운 소식에 감사했습니다. 나를 위하고 따르던 한 분이 내 책에서 추려 모은 어록을 비전과리더십에 제공했고, 그 가운데 선별한 글들을 캘린더로 만들고 싶다는 연락이었습니다. 물론 그 내용은 나 자신의 생각에 그치지 않습니다. 역사를 이끌어 온 많은 사상가와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을 내 마음 그릇에 담아 보관하다가 원하는 독자들에게 나누어 드렸던 것들입니다. 내가 받아들일 때는 생명의 양식이 되었으나, 독자 여러분에게 전해 드릴 때는 삶의 길잡이가 되기를 원했던 어록들입니다. 나에게 소중한 가르침이 되었듯이 여러분에게도 마음의 선물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더 오래 힘이 되어 드리지 못하는 아쉬운 마음을 헤아려 주신다면 저는 못다한 인 생의 짐을 내려놓고 제게 허락된 고향 길을 계속 가겠습니다. 또 한 해가 지나면 104세의 나이를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더 많은 마음의 선물을 주고받으며 선하고 아름다운 역사의 탑을 쌓아 가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수고하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2022년을 보내면서 김형석 삼가 - 프롤로그

삶의 한가운데 영원의 길을 찾아서

“시간에 시간을 더해도 영원이 될 수 없으며 인간적 절망을 인간의 능력으로 극복할 수 없다면 신과의 사랑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가 독자들에게 드리는 글 내가 대학에 있을 때는 주로 철학 분야의 강의를 했다. 그러면서도 종교에 대한 관심을 결코 멀리할 수 없었다. 내 삶을 위한 영원한 의미와 가치를 염원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는 종교 문제를 내 글로 직접 취급하기도 했다. 그 결과로 태어났던 저서가 《종교의 철학적 이해》였다. 철학과 기독교의 문제를 연결 짓는 과제들을 찾아보고 싶었다. 종교학이나 종교 심리 같은 과학적 문제가 아닌 종교의 철학적 과제에 대한 질문과 대화였다. 그 기간을 중심으로 집필했던 신앙의 이야기들을 열림원 편집부에서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 이 책자가 되었다. 특히 “종교는 왜 필요한가?” “현대인에게도 종교는 도움을 주고 있는가?” “종교적 세계관과 인생관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등의 문제를 찾아 해명하고 싶었다. 1960년대에는 ≪이성의 피안≫이라는 저서가 독자들의 관심을 끈 바도 있었는데, 열림원의 이번 신앙 에세이는 종교와 인생 그리고 신앙생활의 본질적 가치에 해당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현대는 과학의 시대로 변했다. 그렇다고 종교적 관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역사가들은 지난 20세기의 세계 사상을 이끌어 온 지도자들은 철학자보다는 신학자들이었다고 지적한다. 아직도 세계 인구의 다수는 종교적 세계관 안에서 살고 있다. 종교에 대한 관심은 인간의 의미와 삶의 가치에 대한 물음이다. 또한 인류 역사의 궁극적 기대와 희망은 종교적 가치관에서 비롯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종교 사상은 인류의 초창기부터 역사와 더불어 영구히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의미와 사상적 가치를 추구하는 지성인이라면 ‘영원한 것’에 대한 기대와 갈망을 포기할 수 없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 쯤 음미해 보아야 하는 내용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글들을 쓸 때의 저자가 그러했듯이…….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나에게는 3단계의 신앙적 성장 과정이 있었습니다. 20세가 될 때까지는 교회가 내 신앙의 모체였습니다. 교회가 내 신앙생활의 가정 같았습니다.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교회라는 가정적 울타리를 벗어나 한 국민과 지성인으로서의 신앙을 탐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가르침이 내 인생의 진리일 수 있는가를 물어야 했습니다. 철학도였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알아야 했고, 기독교가 그 문제에 해답을 줄 수 있을 때 나의 인생관과 가치관으로서의 신앙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 기간에 나는 많은 기독교 관련 책을 읽었고, 성경과 신학서적들을 탐독했습니다. 목사님들의 설교나 가르침보다는 기독교 사상가와 저명한 신학자들의 정신을 통해 내 신앙을 굳혀갈 수 있었습니다. 교회가 요청하는 교리적 신앙과 더불어 진리로서의 복음을 터득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연세대학을 떠나 30여 년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교회와 현실 사회의 장벽과 거리가 아직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 책임은 사회보다도 교회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독교는 기독교회를 위해 있지 않고,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있음을 망각했다는 반성이었습니다. 물론, 교회는 대표적인 기독교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민족과 국가를 하나님 나라로 바꾸는 소금과 빛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교회는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다는 것이 주님의 권고이면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명입니다. 좋은 가정은 자녀들을 키워 사회로 내보내야 합니다. 교회는 우리끼리 즐기고 만족하는 신앙의 안식처가 아닙니다. 주님의 일꾼을 사회와 국가로 배출하는 사명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사회가 교회를 위해 있지 않고 교회가 사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세월은 흘러서 그리움을 남기고

나는 공부를 한답시고 학문과 진리,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고 선과 인격의 가치를 그리워하면서 살았다. 그 염원과 소망은 사라질 줄을 모른다. 그것이 내 삶이었기에, 때로는 예술과 아름다움에 대한 그리움이 나를 사로잡기도 했다. 아름다운 노년기를 그려보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가치 있는 것은 사랑과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법이다. 나 같은 사람에게 애국심을 말할 자격이 있겠는가. 그러나 나라때문에 울면서 살아야 하는 긴 세월을 보냈다. 3·1운동 때 태어났다. 온 국민이 울고 있을 때였다. 일제강점기를 살았다. 웃음이 없는 세월이었다. 조국의 분단을 겪어야 했다. 모두가 이산가족이 되었다. 그 한가운데 내가 있었다. 한국전쟁을 몸소 체험했다. 한없이 슬프고 한스러운 기간이었다. 4·19를 치렀다. 사랑하는 제자들이 피를 흘렸다. 독재와 군부정치를 이겨내야 했다. 울분을 호소할 곳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너무나 울고 싶은 세월을 살았다. 그래서 조국을 깨닫게 되고 겨레를 위해 살고 싶다는 의지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북녘의 동포들을 생각할 때는 더욱 그렇다. 조국과 겨레의 먼 앞날, 내가 드리고 싶은 기원. 이것들은 나의 삶보다 더 귀한 것이었기에 사랑과 희망의 꿈이 그리움으로 남는 것 같다. 울고 싶도록 그리워진다. 그래서 세월은 흘러서 그리움을 남기는 것일까. 그리움은 영원한 것에 대한 사랑이기에 ('책머리에' 중에서)

영원과 사랑의 대화

나는 오래 전부터 내게 주어진 일들은 사회에 대한 봉사라는 생각을 지니고 살아 왔습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일도 그랬고 문필 생활도 그 하나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반세기를 지나오는 동안에 가장 소중했던 정신적 봉사의 하나는 <영원과 사랑의 대화>였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내 노력과 업적이 컸다기보다는 독자들의 아낌과 사랑을 받는 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는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무엇인가를 전해주고 싶었던 따뜻한 소망이 들어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긴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글을 쓰며 대화를 나누는 일들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과 정신적 삶이 사상을 나누어 갖는 동안에 내 생각이 새로워지며 상대방의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체험을 쌓아갈 수 있어 행복합니다. 이 책을 집필할 때도 내 마음에는 영원한 것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싶은 고뇌 어린 열정이 잇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영원을 향한 고독한 방황과 사랑을 채워가려는 조용한 갈망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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