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5년 넘게 퀀트로서 증권사에서 일했다. 요즘은 인공지능이 대세지만 15년 전에는 전 세계적으로 금융공학이 붐이었다. 그러다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금융공학에 대한 분위기가 바뀌었고, 2016년 구글의 알파고 이후로는 금융공학을 인공지능 투자로 생각하게 됐다.
일반적으로 퀀트를 세 가지로 분류한다. 1세대는 파생상품을 평가하는 전통적인 퀀트로서, 파생 퀀트라고 한다. 2세대는 주로 헤지 펀드에서 투자 전략을 컴퓨터에 구현해 자동 매매를 하는 전략 퀀트다. 핀테크와 인공지능과 관련된 AI 퀀트를 3세대 퀀트라고 한다.
이 책은 파생 퀀트를 대상으로 한다. 어느 분야에서나 바이블이라 불리는 책이 한 권 있듯이 금융공학 분야에서는 헐 책이라고 하는 Hull(2011)이 바이블이다. 이 책을 읽고 수학적으로 더 접근하고 싶으면 Shreve(2004)를 공부하고 컴퓨터에 직접 계산기를 구현하고 싶으면 Duffy(2004)를 많이 참고한다. 그 후에 금리파생과 신용파생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금융공학의 전형적인 코스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증권사에 입사한 신입 퀀트들이 현업에서 고생하는 개념이 운용 손익 분석과 변동성 곡면이다. 위에서 언급한 책에서는 이런 것을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는다. 아카데미와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변동성 곡면에 관련된 참고 도서로서 Rebonato(2004)와 Fengler(2005)가 있다. Rebonato(2004)는 자세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결과를 많이 포함하고 있어서 양이 너무 방대하고, Fengler(2005)는 수학적으로 너무 간결하게 요약 정리해서 의미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흔히 Derman의 골드만삭스 보고서와 강의 노트를 읽고 다른 논문을 참고한다.
신입 퀀트들이 힘들어 하는 또 하나는 ELS에 관한 것이다. 한국의 파생시장은 한국형 ELS인 스텝다운의 비중이 기형적으로 크다. 그래서 대부분의 파생 퀀트가 ELS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지만, 여기에 대한 참고 도서가 전무한 상황이다.
이 책은 저자가 (전신인 동양증권을 포함해) 유안타증권 OTC 운용 팀에서 일을 하며 팀원들의 질문에 답변하다가 그중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정리한 것이다. 5.3장부터는 개별적으로 작성한 보고서라 독립적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그러다 보니 내용이 반복해서 언급되는 것도 있다. 자주 반복되는 내용은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신입 퀀트들이 처음에 힘들어 하는 개념에 대해 나름대로 추가 설명을 전반부에 덧붙였다.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운용 손익 분석이다. 이를 바탕으로 변동성 곡면에 대해 나름대로 설명했다. 옵션 복제 이론의 한계와 헤지에 사용하는 변동성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ELS에 관한 분석을 넣었다. ELS는 수익 구조가 너무 복잡해 대부분의 경우 해석적 분석을 포기하고 수치 시뮬레이션을 이용한다. 이런 태도는 컴퓨터에 너무 의존해 ELS에 대한 이해와 감각을 키우기 어렵다. 이 책에서 ELS에 대한 이론적인 분석 몇 가지를 소개했다. 이를 바탕으로 ELS에 대한 보다 깊은 직관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가장 복잡하면서 어려운 부분은 변동성 곡면을 사용하는 ELS에 대한 이해다. 책에서 ELS에 대해 설명하고 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본인 또한 여기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를 계속 진행하고 있으며, 좋은 결과가 나오면 향후에 다른 기회로 소개하겠다.
이 책은 학교에서 금융 수학 또는 금융 공학에 관한 강의를 수강했거나 Hull(2011) 또는 Shreve(2004)를 한 번 정도는 읽은 독자를 대상으로 한다. 대부분의 내용을 수식으로 표현하고 의미를 해석하고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간결하면서 명쾌하지만 추상적인 수식과 장황하지만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잘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의, 보조정리, 정리, 증명, 따름정리의 형식을 갖는 엄밀한 추상 수학은 나름의 아름다움을 가지지만,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컴퓨터 소스 코드 같은 느낌을 준다. 소스 코드 또한 설명서가 필요하듯이 이 책이 보다 더 고급 금융 수학 교재를 읽기 위한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에 게어리 주커브의 『춤추는 물리』와 프리초프 카프라의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을 읽고 양자물리를 알게 됐다. 요즘은 얽힘이라고 일컫는 EPR 모순을 알고 나서 양자역학의 기이함에 놀랐다. 그 후 다른 전공을 선택해 한참 동안 잊고 지내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양자 컴퓨터를 통해 다시 만났다.
2019년 10월 구글이 시카모어 칩으로 양자 우위를 달성했다는 소식으로 양자 컴퓨터에 관한 관심이 고조됐다. 역자 또한 지금 사용하고 있는 파생 상품 평가 시스템을 양자 컴퓨터로 바꾸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양자 컴퓨터를 공부했다. 중첩, 간섭, 얽힘으로 대표되며,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양자물리를 이용해 인간에게 유용한 계산을 할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든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역자는 학부에서 수학을 전공한 뒤 기계공학과 금융공학 일을 했다. '견지망월(見指忘月)'이라는 말이 있듯이 수학에 얽매이지 말고 수식이 의미하는 실상을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가졌다. 하지만 양자 컴퓨터를 공부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양자물리 현상은 직관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므로 수학의 도움을 받아 형식 논리로 접근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수학의 역할은 운전자를 돕는 내비게이션과 같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양자역학을 수학적으로 형식화하기 위해서는 대학원 과정의 수학 이론이 필요하다. 다행히 양자 컴퓨터에 사용하는 양자역학 이론은 쉬운 부분으로 학부 과정의 수학 이론이면 충분하다. 그동안 양자 컴퓨터에 관한 책이 더러 발간되기는 했지만 대부분 이를 소개하는 정도이며 수학적인 증명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책이 없었다.
이 책은 학부 과정의 수학을 이용해 양자 컴퓨터에 나오는 대부분의 양자역학과 양자 알고리즘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필요로 하는 수학적 지식은 부록에서 따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연습 문제와 해답이 제공돼 수학적인 배경이 부족한 독자도 혼자서 공부하기에 적절하다. 양자 컴퓨터에 관해 좀 더 깊은 이해를 원하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청소년 시절에는 음악에 별 관심 없었다. 그 후에도 아무런 상관없이 지내다가 40대 중반에 불현듯 동네에 있는 조금 큰 피아노 학원에 갔다. 집에서 가까워서 찾아간 이 학원은 서울에서 유명한 대입 전문 학원이었고 레슨을 맡아 주신 선생님은 연주학 박사 학위를 가지신 분이었다.
문제는 초등학생보다 못한 내 음악 감성과 굳은 손가락에 있었다. 연습을 해도 별로 진전이 없었다. 다행히 계속 음악에 노출되다 보니 음악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다. 그러다가 우연히 동네 도서관에서 알게 된 대니얼 J. 레비틴의 『뇌의 왈츠』(마티, 2008)을 읽은 후에 음악을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미국 MIT대학교 교수인 스티븐 핑커는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동녘, 2007)에서 음악은 "청각적 치즈케이크"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했다. 비유를 하자면 안경을 걸기 위해서 코가 진화 적응한 것이 아니라 진화의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반대하면서 레비틴은 인류 생존을 위해서 음악이 필요했다는 증거들을 뇌과학, 진화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제시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음악은 진화 적응인 것 같지만 본인이 전공했던 수학은 진화의 부산물인 것 같다. 수학은 역사적으로 동양보다 서양이 더 발달했고,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만 관심을 갖는다. 이렇게 음악과 수학은 뚜렷한 차이가 있지만, 그럼에도 피타고라스,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파인만 등과 같이 음악에도 능통한 유명한 수학자와 과학자들이 많다. 분명히 음악과 수학에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호프스태더의 『괴델, 에셔, 바흐』(까치, 2017)은 (미술까지 포함한) 이런 공통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무한을 다루는 수학, 무한히 상승할 수 있는 2차원 계단, 영원히 반복되는 캐넌을 생각하면 공통점이 느껴진다. 특히, 바흐의 "그랩 캐넌"을 "뫼비우스 띠"를 이용해 시각화한 유명한 유튜브 영상을 보면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음악과 수학의 공통점을 알 수 있다.
호프스태더가 언급한 바흐의 작품집은 "Musical offering"이다. 독일의 피아노 산업을 장려했던 프리드리히 대왕이 바흐를 궁중으로 초청해 소장하고 있던 여러 대의 피아노를 보여주었다. 바흐는 이에 대한 답례로 각각의 피아노에서 즉흥 연주를 했고 집에 돌아간 후에 연주한 곡을 정리해서 대왕에게 헌정하는 작품집에 이 제목을 사용했다.
인터넷에서 이 책의 원서를 처음 본 순간, 『Musical offering』을 패러디한 책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내공이 느껴졌다. 이 책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귀의 해부학에서 시작해 음향학, 음계의 역사와 원리, 디지털 음악, 무조음악을 모두 수학적 관점에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가히 "Mathematical offering"이라 할 만하다.
대학 시절의 나는 학교가 있는 대전에서 고향인 대구 사이를 기차로 왕래했다. 경부선 기차는 구름도 쉬어 간다는 험준한 추풍령 고개를 넘어갔다. 창가 풍경은 산뿐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관찰하니 가까이 있는 산이 더 빨리 뒤로 가고 멀리 있는 산은 앞으로 가는 것처럼 보였다. 한참 고민 끝에 이런 현상은 어두운 밤에 보름달이 움직이는 나를 따라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과 같음을 깨달았다. 가까이 있는 것은 뒤로 가고 멀리 있는 것은 앞으로 가므로 중간 어디쯤에 고정점이 있을 것 같았고 이것을 계산하는 방법을 나름 고민했다.
이런 고민에 해답을 주는 것이 사영(그림자)기하학이다(이 책 내용 중에 여기에 대한 해답이 있으며 고민했던 고정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르네상스 시대에 화가들이 3차원 물체를 2차원 평면에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원근법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사영기하학의 기본 원리는 정립됐지만 19세기 초에 본격적으로 정립됐다. 그 후로, 최근에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의 전공 분야인 대수기하학으로 발전하게 된다.
사영은 유럽 사상에 오랜 뿌리를 갖고 있다. 칸트의 인식론이 나오기 전까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실체의 사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것은 형이상학적인 비유에 불과하지만 실세계에서 비슷한 것이 발견됐다. 양자역학에서 물체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고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실제 물체의 확률적 사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반물질을 예측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영국의 디랙은 양자역학을 연구할 때 학부 시절에 잠깐 심취했던 사영기하학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언급했다. 이 책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문제를 고민한다. 같은 물체를 동시에 여러 카메라로 촬영했을 때 여러 개의 사진에서 3차원 형상을 어떻게 복원할 수 있을까? 디지털 카메라의 비용이 저렴하기에 좋은 알고리듬이 개발되면 응용할 수 있는 분야가 무궁무진해 많은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분야이다.
이 책은 사영기하학의 기초에서 시작해 이중 시점, 삼중 시점, 다중 시점 기하학으로 설명을 진행한다. 기하학에 대한 기초를 다지고 또 수치 계산에서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노이즈를 다루는 알고리듬에 대해서 매우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서 컴퓨터 비전 관련 엔진을 개발하는 연구자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학부에서 수학을 전공했지만 당시에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한 강의가 없어서 이렇게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는 사영기하학을 책을 번역하면서 알게 됐다. 번역하는 동안 기하학의 위력을 실감하며 흥미진진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