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포동의 김갑수씨는 괴물이었을까요. 갑수씨가 끊임없는 연애를 통해 증명하고자 했던 건 무엇일까요. 그 또한 “나는 사람이다”라고 외치고 있었던 걸까요. 아무래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갑수씨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그가 추한 것을 추하다고 말할지언정 결코 그것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굴거나 추함에 전염될까봐 눈을 감아버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가 괴물이라면, 저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사려 깊은 괴물을 만났던 것 같습니다.
그가 이 세상 어디에선가 제가 아닌 또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마음을 알려주고 가르쳐주길, 더불어 타인의 불행에 귀기울이며 함께 미소지어주기를 기원해봅니다. 추하고 일그러지고 상처받은 세상을 사랑합니다. 그런 마음을 모아 이 책을 펴냅니다.
어른이 되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절한 거리를 자연스레 알 수 있게 되리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나는 그 거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너무 다가가면 아픈 일이 생겼고 너무 떨어지면 외롭기 짝이 없었습니다.
가장 적절한 거리를 찾기 위해 겨우 떠올린 건 상대를 존경할 만한 적장처럼 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가까워지면 속을 모조리 내보여버리는 버릇이 쉽게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주 조금씩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친애하는 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사랑한, 친애하는 적들에 관한 기록입니다.
저는 이 불균질한 한국고전공포영화만의 개성을 ‘마술과도 같은 불온함’이라는 표현을 들어 종종 설명하려 애씁니다. 이와 같은 성격은 지금의 한국공포영화에는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한국의 공포영화 장르는 1980년대 중 후반 이후 그 명맥이 거의 단절됐다가 1990년대 후반 [여고괴담]으로 부활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한국공포영화를 일종의 섬이라 생각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 영화들은 오직 그때만 존재했으며, 더 이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단절된 역사와 잊혀진 기억 속에서 예의 불온함은 더욱 더 강력한 마술과도 같은 힘으로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 저자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