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물체주머니를 채울 때처럼, 언제부터인가 작업과 생활에서 심상찮게 마주친 사물을 모으기 시작했다. 번역 텍스트에서 처음 통성명한 사물을 기념품처럼 하나둘 챙기기 시작했고, 그게 소소한 설렘이 됐다. 예전에는 사물의 물성을 모았다면 이번에는 사물의 감성을 모았다. 어릴 때처럼 여기에도 내 취향과 관심사가 깊이 관여해 몹시 개인적인 컬렉션이 됐다. 거기에 기대서 우리가 사는 시간과 세상을 말하고 싶었다.
이 책은 설레는 사물들의 뒤를 밟은 작은 결과물이다. 사물의 뒤를 캐다 보면 고전부터 대중문화까지 인문의 다양한 분야가 두루 소환된다. 사물을 매개로 현실과 환상이 만나고, 지식과 감상이 얽힌다. 범주화가 없는 대신 교차점들로 가득하다. 결국은 지은이가 번역 책상을 잠깐씩 떠나 일상에서 두 발짝 너머로 끌리는 것들을 따라 미행한 이야기들이다. 이야기들을 지면에 놓다 보니 순서가 생기고 묶음이 생겼다. 하지만 읽을 때는 거기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 이 책은 사실 시작도 끝도 없다. 아무데나 펼쳐놓고 읽기 시작해도 무방하다. 더 궁금하고 끌리는 것부터 읽어도 좋다. 독자의 생각이 만든 갈래와 가닥들이 부족한 글을 채워주었으면 좋겠다.
젤다의 글은 그녀가 그린 그림과 닮았다. 우선, 주인공의 내면을 외면에 빗대어 회화적으로 표현한다. 예컨대 <오리지널 폴리스 걸>의 주인공 게이는 본질 없이 허망한 "만화경 같은 여자"이고, 그녀의 뿌리 없이 부유하는 인생은 "호텔 라벨들로 덕지덕지 덮인 푸른 벨벳 트렁크"가 대변한다. <미스 엘라>가 "솜털 같은 조가비색 덤불과 딸기 소다 거품" 속에 애틋하게 숨겨두었을 것으로 기대했던 비밀은 놀랍게도 "축축한 땅에 흩어진 갈색 꽃"과 "각진 기둥을 칭칭 동여맨 덩굴" 같은 비극으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