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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김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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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타자와 연대>

사할린 한인 한국어 교육자의 생애 이야기

서문: 언어를 기억하고 계승한다는 것 독일의 언어학자 훔볼트는 “한 나라의 언어는 그 나라의 문화와 정신이 깃들어 있다.”라고 했다. 이는 언어 안에 한 민족의 삶과 가치가 함축되어 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힘들고 척박한 역사 속에서 한국어의 계승에 일생을 바친 사할린 한인 한국어 교육자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금 사할린 한인 후속 세대들이 상호간 한국어로 소통하고 민족문화를 지켜나가기를 즐거워하는 배경에는 이들 사할린 한인 한국어 교육자들이 있다. 자랑스럽고 고마운 이들의 이름은 바로 공노원, 박승의, 허남훈, 황은순 님이다. 이들이 한국어 교육자로 사할린 한인 사회에 기여한 이야기를 네 개의 장으로 엮었다. 우선 1장 ‘사할린 한국어 교육자 삶의 기억’에서는 사할린 한인과 모국어 교육, 사할린 한인의 민족정체성과 한국어교육의 관계 등을 살펴보고, 이 책에서 활용한 생애사 연구 방법에 관한 선행연구와 생애사 연구의 방법론적 측면을 기술하였다. 2장부터 4장까지는 각 한국어 교육자의 생애사를 연대기별로 적었다. 2장 ‘공노원: 사할린 한국어교육의 산증인’의 생애사 주인공은 공노원이다. 그녀는 1941년 5월 사할린에서 5남 3녀의 맏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유즈노사할린스크시 국립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화학교사의 길을 걸었다. 더욱이 24년의 교사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어를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사할린 한국어교육에 과감히 도전했다. 러시아 사할린에서는 사할린주 한국어교사협회장으로, 제9 동양 어문학교 한국어담당 교감으로, 삼육대학동양학과 과장으로, 사할린유치원 한국어교육 담당자로 활동했다. 공노원은 2007년 10월 영주 귀국하여 사할린 한국어교육협회 부회장으로 사할린 현지의 유치원한국어교육과 사할린 동포의 모국방문활동을 지원하고 있으며, 다양한 사회활동으로 한국어를 보급하고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그녀는 한국어 교육자로 일제강점기 사할린 유족회 인천지부장으로, 동북아 평화연대 고려인 사업부 자문위원으로 일하면서 인천고려인문화원에서 고려인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3장 ‘박승의: 한국어교육의 맥을 잇는 운동가’의 생애사 주인공은 박승의이다. 박승의는 1942년 사할린에서 태어난 한인 2세대로, 75년을 사는 동안 국적이 6번이나 바뀌었다. 1945년까지는 일본인으로, 1945년 해방 후에는 무국적자로, 1958년부터는 북한 공민으로, 1970년에는 소련 노동자로, 1990년 소련 붕괴 후에는 러시아 연방 국민으로 살았다. 2010년이 되어서야 드디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부모님들이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왔다. 박승의는 대학 졸업 후 교육자를 꿈꾸었으나 이방인에게는 허락하지 않는 현실의 벽에 꺾여 꿈을 잊었다. 그리고 소련의 성실한 노동자로 20여 년을 살았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며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는 포기한 줄 알았던 꿈에 다시금 설레며 누구보다 열과 성을 다하여 한국어교육의 횃불을 들고 앞장서 왔다. 박승의는 사할린 한인에게 잃어버린 조국을 되돌려주기 위해 조국과의 끊어진 연결고리를 회복하는 길은 사할린에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한국어교사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보고 한결같은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정진해왔다. 4장 ‘허남훈: 대를 이은 한국어 교육자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허남훈이다. 그는 사할린 원년 세대의 대표적인 한국어 교육가 중 한 분이다. 충북 충주시 소태면 야동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부모님과 함께 사할린으로 이주했다. 그의 아버지(허조)는 광복 이후에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할린동포들을 위해 토마리에 조선학교를 세웠다. 허남훈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프로나이스크 사범대학을 졸업하여 한국어 교사가 되었다. 그는 단순히 한글을 가르친 교원이 아니라, 평생을 바쳐 사할린동포들에게 한민족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고취시킨 교육자였다. 그는 70여년을 사할린에 살다가 2009년 3월 영주귀국으로 조국에 돌아왔다. 허남훈은 한국에서의 남은 생도 누군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5장 ‘황은순: 다시 태어나도 한국어 교사로’의 주인공은 황은순이다. 그녀는 12남매 중 11번째 딸로 1938년 사할린 토마리 베린스크에서 태어났다. 황은순의 아버지는 북한 출신이고 어머니는 부산 출신임을 기억한다. 황은순의 부모님은 일제 시대에 일본 정부가 사할린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선전하였고 이를 믿고 이주했다. 황은순의 가족은 대가족 이었기에 그의 어린 시절은 늘 가난했다. 해방 후 조선학교가 생기고 황은순은 이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조선학교의 선생님들은 대개 북한에서 온 파견 노무자였거나 중앙아시아에서 온 고려인들이었다. 조선학교를 다녔던 탓에 소련어를 잘 못했다. 그래서 상급학교를 유즈노사할린스크 사범전문학교 조선어과를 가게 되었다. 이것이 한국어 교사가 된 이유이다. 황은순은 1960년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크라스오고르스크 10년제 조선학교의 담임교사로 한국어를 담당하면서 첫 교직을 시작했다. 그 첫 날의 사진을 아직 간직하고 있다. 이들 네 분의 한국어 교육자들은 무엇 때문에 한국어교육에 헌신했는가? 이들은 왜 그렇게 고독하고 처절하고 힘든 길을 걸었어야 했는가? 이들에게 한국어 교육은 개인의 숙명은 물론 사할린 한인의 염원이었다. 이 책에서는 이들이 겪은 생애 경험들이 어떻게 한국어 교육가로 열매 맺어가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들이 한국어 교육자로 헌신하게 된 동기가 된 것은 부모님의 조국과 고향을 향한 향수가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한국문화와 한국어교육의 전수를 몸소 현장에서 실천하시고, 은퇴하신 후에도 지속적으로 사할린 한인의 민족교육에 힘쓰고 있는 이들의 노력을 기억해야 한다. 최근 들어 한류 열풍으로 한국문화와 한국어교육이 전 세계로부터 각광받고 있다. 이러한 한국어의 밝아진 현실은 이들 사할린 한국어 교육자들과 같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 한국어교육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신 분들에게 분명 빚지고 있다고 본다. 어두운 한국어 교육 현실의 경계를 넘어서기 위한 이들의 노력을 우리는 존중해야 하며, 그들이 지닌 ‘한국어 혼’을 기억하고 기념해야 한다. 최근 들어 정부와 한국어 교육학계에서는 신남방 국가 및 신북방 국가를 대상으로 한국어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정책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느 때보다 한국어교육의 극적인 확대가 전망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초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서지 못한다”라는 교육학적 격언이 있다. 이를 염두하면 한국어 교사의 질적 향상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한국어 교육자를 꿈꾸는 학문수련자들이여! 이들 사할린 한국어 교육자들이 행한 ‘한국어 혼’을 부디 기억하길 바라는 바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인근에는 인천 남동 사할린 센터와 사할린 영주귀국자 집거 단지가 있어 이들과의 만남은 용이하였다. 무엇보다 사할린 한인 지역활동가인 디아스포라연구소 소장 박봉수 박사님은 이 분들과의 라포 형성은 물론 자료수집과 인터뷰 수행하기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일들을 맡아주셨다. 아울러 함께 자료수집과 전사록 분석 그리고 생애사 쓰기에 이르기까지 수고를 해주신 공동저자 임지혜 박사님과 김정희 박사님에게도 감사함을 전한다. 이 책의 집필을 위해 약 2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 교정본을 보면서 사할린 현장답사 지역이었던 유즈노사할린스크와 코르사코프 항구의 ‘망향의 동산’을 회상하였다. 동토의 땅 사할린... 바로 그 곳에서 열정을 바치신 한인 한국어 교육자, 이들은 한국어교육의 현장에 있는 우리에게 ‘한국어 혼’의 교훈이 되었다. 우리도 이 분들의 길을 따라 걸어 보자는 다짐으로 서문을 맺는다. 2020년 새해 아침에 저자 대표

양구일지

이 책 《양구일지》는 고향에서 배우는 나의 경험을 기록한 자문화기술지이다. 《양구일지》는 나의 고향이자 내가 사는 마을 양구에서의 이웃과의 ‘더불어 삶’과 다양한 상호작용을 보여준다. 이 일지는 나뿐만 아니라, 일지를 읽는 모두가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양구는 나의 선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친족들이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으며, 나의 현 주소지이기도 하다. 양구라는 지명을 들어봄 직한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사는 곳이 양구라고 하면 경기도 양주로 착각하여 이해하는 분들이 많다. 양구에 살았거나 양구를 경험했던 사람만이 양구를 기억한다. 최근 사과와 시래기로 명성을 얻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양구는 생소하다. 양구를 좀 더 빨리 이해시키려면 박수근 화백과 이해인 수녀의 고향이라고 말한다. 혹은 철학가 안병욱 교수와 김형석 교수의 서재가 존재하는 인문학 마을을 이야기한다. 그러면 다소 양구를 익숙하게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나의 고향이자 국토정중앙 양구를 알려보고자 한다. 그래서 나는 이 기록을 나만이 보는 ‘일기’가 아닌 ‘일지’로 작성하였다. 많은 사람이 양구에 대해 친숙함을 갖도록 하는 것이 저술의 목적이다. 이렇게 시작한 《양구일지》는 나의 2년간의 귀촌 이야기를 담았다. 이야기의 토대는, 학문수행자로서 질적연구자로서 나의 공존 철학 “자연과 함께 이웃과 더불어”에 맞추어져 있다. -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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