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 제도 근처 어느 심해분출구에는 몸길이 3미터가 넘는 알비넬리드라는 갯지렁이가 살고 있다고 한다. 섭씨 400도의 분출구 중앙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화수소로 화학합성을 하는 박테리아를 먹고 사는 알비넬리드가, 채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 몸을 길게 늘여 꼬리를 담가 두고 있는 물의 온도는 0도, 극과 극을 가르는 그 차가운 물에 새파랗게 질린 꼬리를 남의 다리처럼 세워두고 뜨거운 분화구에 얼굴을 파묻은 채 하루 종일 밥에 매달려 사는데, 그 몸통의 머리 부분과 꼬리부분의 온도 차이가 80도를 넘는다고 한다.”(빌 브라이슨,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중에서)
어깨를 웅크리고 지하철 계단을 내려와 만원 인파 속으로 몸을 구겨 넣는 출근길 사람들과 어린것들 손을 붙들고 낡은 동네 좁은 골목 귀퉁이 전봇대에 붙어 있는 월세방 광고지를 살피는 젊은 여자와 한 직장에서 30년을 근속했으나 연봉 3천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는 어느 비정규직 가장과 허기진 뱃고래를 뚫고 시벌레가 기어 나오는 가슴 때문에 난감하다던 가난한 시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알비넬리드의 시리게 뜨거운 몸통을 생각했다. 지상의 모든 가난한 사람들은 알비넬리드다. 내 이름을 붙이게 된 시들도 온도 차이 80도가 넘나드는 지경에서 건져 올린 쓸쓸하고 서러운 노래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