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가 처음 출간되었을 때, 그것은 지식인 사회에 있어 하나의 사건이었다. 어느 누구도 이러한 '스타일'로 논쟁 내지는 비판하지 않았다. 그는 비판하는 대상의 입에서 나온 언어를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여 그에게 되돌려준다. 애초에 내뱉어진 근엄하면서도 어설픈 말들은 따끔한 전류가 흐르는 감옥이 되어 그 대상을 가두어버린다.
그리고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인터넷 인구가 급속하게 증가하고, 게시판의 토론 문화가 활발해졌다. 사람들은 이제 넷 상에서 정치니, 사회니 하는 딱딱한 문제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했고, 진중권의 이러한 '스타일'은 빈번하게 차용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진중권의 글을 보고 배꼽을 잡았고, 어떤 이들은 그의 '진중'하지 못함에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그는 이미 '광대'가 되기로 마음 먹었으니까.
진중권 글의 특징은 딱딱하기 쉬운 정치/사회 비평을 풍자문학의 경지로 끌어올린다는 점에 있다. 그가 주로 타겟 삼는 극우 정치인, 보수 언론, 천민 자본주의 등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조롱'의 대상이다. 진지하게 토론할 상대가 못된다는 것.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 것은 없다. 다만 그 '우스움'을 한껏 까발기고 난 뒤 얻어진 카타르시스만이 잠시 남을 뿐이다.
하지만 신문과 잡지 그리고 웹 게시판에 올라온 잡글들이 그의 전부는 아니다. 1994년 출간된 <미학 오디세이>는 쇄를 거듭하며 읽혀져온 대학생들의 필독서이며, <춤추는 죽음>은 예술 작품 속에 담긴 죽음의 기호를 읽어낸 탁월한 교양서이다.
그는 앞으로도 미학과 언어철학 쪽에서 자리를 잡고 싶다고 한다. 장기적인 사유를 하고 싶어서. 그리고 그 전에 우연찮게 얻어진 대중에 대한 영향력을 악랄하게 정치적으로 소비할 거라 한다. 할 수 있는 한 좌파로서의 소임을 다하겠다는 것인데... 이 사람 정말 약았다.
어찌 되었든 그의 글을 읽는 건 재미있다. '광대'든, '글로 싸우는 무림고수'든, '빨간 바이러스'든 또는 다른 무엇이든간에 톡톡 튀는 그의 글과 실천들을 오랫동안 지켜볼 수 있기를. - 정선희(sunnyside@alad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