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헨리 에머슨(Peter Henry Emerson)은 다양한 책을 쓴 작가이자 저명한 사진 작가다. 1856년 5월 13일 쿠바에서 미국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유명한 시인 랄프 왈도 에머슨과 먼 친척이다.
에머슨의 아버지는 쿠바에 사탕수수 농장을 가진 부자였다. 어린 피터 헨리는 이곳에서 자라다가 미국으로 가서 델라웨어에서 학교를 다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가 만 13세였던 1869년, 어머니와 함께 영국으로 이주해 교육을 받았다. 그는 크랜리 학교를 다니는 동안 학문과 스포츠 양쪽에서 매우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1885년 명문 케임브리지 클레어 칼리지에서 의학 학위를 받았다.
에머슨은 지적 호기심이 왕성했고, 자신의 소신을 강력하게 피력했다. 또 자신의 아이디어를 많은 이들과 공유하기를 열망해 평생에 걸쳐 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는 신혼여행 중에 첫 번째 책을 쓸 정도로 왕성한 필력을 자랑했다.
1891년부터 1892년까지 그는 영국 서남부 웨일스의 앵글시 섬에 머물렀다. 앵글시는 영국에 제일 먼저 정착한 고대 켈트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수수께끼 같은 고대 유적도 많이 남아 있고, 자연 풍광도 신비하다. 본토 주민이 쓰는 말도 영어와 전혀 다르다. 기독교 문명 세력이 영국 전역을 장악하며 거의 사라진 켈트 신화 요소도 희미하지만 곳곳에 남아 있다.
에머슨은 이런 이질적인 독특한 매력을 지닌 앵글시에서 면면히 전해지는 드루이드, 즉 켈트 사제와 요정, 마녀와 거인, 난쟁이 등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오래된 이야기들을 듣고, 이를 모아 <웨일스 요정 이야기>라는 책을 썼다. <델의 마녀와 요정들>은 이 책에 수록된 지역 전승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고 독특한 고대 켈트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로 꼽힌다.
그는 의학자 출신이기도 하거니와, 당시 최첨단 기술이던 사진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사진 작가로서도 매우 뛰어난 역량과 업적을 남겼다.
그의 이런 과학적, 객관적 태도는 그가 앵글시 섬에서 오랜 요정 전설을 기록하는 데도 충실히 반영됐다. 그는 저자 후기에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공유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지역 주민에게 들은 내용에 편집을 가하지 않았다'고 썼다.
에머슨의 이러한 집필 철학 덕에, 거미줄처럼 희미하게 이어지며 남아 있던 오래된 켈트 사회의 면모들 - 요정들의 역할, 마녀 등에 대한 관점과 더불어 고대의 선과 악, 치유와 통합의 중요성 등 - 에 대해 독자들도 선입견 없이 접할 수 있다.
에머슨은 죽기 직전까지 끊임없이 연구와 집필을 계속해 원고를 완성했으며, 80세 생일을 하루 앞둔 1936년 5월 12일 숨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