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8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프레더릭 오거스터스 워싱턴 베일리라는 이름으로 미국 남부 메릴랜드 주 해안의 이스턴 인근 애런 앤서니 소유의 농장에서 노예로 태어났다.
더글러스는 여러 주인의 손을 거치며 유년기에는 주인의 아이 돌보기와 심부름, 청소년기에는 밭일과 조선소 일 등을 거치며 노예가 겪어야 했던 채찍질과 극심한 구타를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주인의 아내로부터 알파벳을 배운 이래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일이 자유를 향한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 글을 읽고 쓰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더글러스는 이후 동료 노예들과 함께 탈출을 시도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1838년 단독으로 북부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탈출 직후 뉴욕에서 자유 흑인 애나와 결혼해 매사추세츠 주의 뉴베드퍼드에 자리 잡은 뒤 미국노예제반대협회의 인사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의 권유로 반노예제 집회에서 노예로서의 경험담을 강연한 것을 계기로 노예제반대협회 소속 연사가 되어 흑인 노예제 폐지 운동가로서 명성을 날리게 된다. 이로 인해 동료 백인 노예제 폐지 운동가로부터 질시를 당하기도 했다.
이후 더글러스는 신문 편집인, 연설가, 저술가, 정치인, 외교관, 그리고 개혁가로서 1895년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할 때까지 인간으로서의 자존심과 자립심을 지키며 흑인 인권 향상을 위해 초지일관한 삶을 살았다.
더글러스는 세 권의 자서전을 출간했다. 각각의 제목과 출간 연도는 다음과 같다. ≪미국 노예,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삶에 관한 이야기≫(1845), ≪내 속박과 내 자유(My Bondage and My Freedom)≫(1855),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생애≫(1881). 더글러스는 노예제 폐지 운동 신문 발행인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발간한 신문을 연도순으로 정리하면, 가장 유명한 ≪북극성≫(1847∼1851)을 비롯해서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주간지(Frederick Douglass Weekly)≫,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신문(Frederick Douglass' Paper)≫(1851∼186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