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내게 거울이거나 창입니다
적나라하게 희노애락이 드러나는 거울을
필사하거나 창밖에서 변화하는 풍경을
오리거나 채집합니다.
삼십대 어느 날 내 몸을 숙주삼아
병은 걸음을 갉아 먹고 있습니다.
세상의 이치가 잃은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것이라 시가 내 안에 더부살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달팽이의 더듬이마냥 느리게 살면서 시를
되새김질하는 나날이었습니다.
이제 엉성하고 헐거운 그물을 벗어나지 못한
시들을 방생합니다.
다시 얼룩진 거울과 창을 닦으며
아득한 너머를 응시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