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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정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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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고려자기 수난사>

정규홍

1981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졸업

2007년 『수난의 문화재 이를 이겨낸 인물 이야기』(문화재청, 2007) 편찬 자문위원

2010년 ‘국외문화재 출처 기록조사 및 DB구축’(문화재청) 공동연구원

2012~2014년 『경북지역의 문화재 수난과 국외반출사』(사)우리문화재찾기운동본부·경북도 책임연구원

2014년 ‘문화재보호 우수협력자’포상(문화재청)

현재 사)우리문화재찾기운동본부 학술위원

저서로 『우리문화재 수난사』, 『석조 문화재 그 수난의 역사』, 『유랑의 문화재』, 『위기의 문화재』, 『우리 문화재 반출사』가 있으며, 논문으로 「黑板勝美의 조선사적유물조사와 그의 행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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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우리 문화재 수난일지 세트 - 전10권> - 2016년 11월  더보기

한말의 혼란한 틈바구니 속에서 밀려든 강대국들의 선교사, 공사관 관계자, 상인들은 하나같이 우리 문화재에 손을 뻗쳤다. 초기 한국에 건너온 외국인들에게는 미처 문화재에 눈을 뜨지 못한 한국은 신천지와 같았다. 경술국치 이후부터는 일제에 의해 고적조사라는 미명하에 지하의 무덤을 발굴하고 그들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필요에 따라 연구 목적을 핑계 삼아 반출을 서슴지 않았다. 관권에 의한 무단 반출과 한 밑천 잡아보겠다고 밀려든 상인, 수집가들에 의한 반출은 도굴을 부추기고 이로 인하여 저지른 사료의 파괴는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가 약탈해 간 외규장각도서가 불완전한 반환 합의기는 하지만 145년 만에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여전히 정처 없이 해외로 떠돌고 있는 우리 문화재는 그 수가 막대하다 할 수 있다. 그 하나하나가 한국의 독자적 문화와 사연을 품고 있다. 외지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를 찾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이와 함께 현재 남아 있는 우리 문화재의 보존 역시 중요한 일이다. 그림을 전공한 필자가 문화재에 눈을 돌리게 된 동기는 참으로 우연이라 할 수 있다. 1981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중학교 미술교사로 임용되어 그 해 첫 교직공무원 연수를 받으면서 당시 들었던 강의 내용은 필자의 공부 방향을 완전히 바꿔 놓고 말았다. 당시 강사는 1960년대에 석굴암 수리 공사를 할 때 고 황수영 박사의 조수로 참여한 분이라는 것만 기억하지만 그 강의 내용은 필자에게 상당한 충격으로 와 닿았다. 그 내용인즉 해방 이후 석굴암 수리 공사를 할 때 당시 책임자였던 황수영 박사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던 중 화장실 벽판으로 사용한 ‘석굴암중수상동문(石窟庵重修上棟文)’을 발견했다는 일화이다. 이 화장실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석굴암을 해체 수리하면서 만든 간이화장실이라 할 수 있다. 석굴암에 대한 다른 이야기도 많았지만, 이 일화 하나만으로도 당시 우리 문화재가 어떻게 취급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이 피가 거꾸로 솟는 충격은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학창시절부터 헌책 수집에 관심이 많던 필자에겐 매주 인사동이나 청계천 일대의 헌책방을 일순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기에, 1981년 이후부터 문화재 관련 자료를 조금씩 수집했다. 그렇게 8,9년이 지나니 이것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림을 그리기를 중단하고 두서없이 일제강점기의 고적조사 보고서와 일본 학자들의 논문, 대한매일신보와 황성신문 등의 기사나 잡지의 문화재 관련 내용 등 닥치는 대로 자료를 모으고 메모를 해나갔다. 한말 이후 우리 문화재가 얼마나 많이 유출되거나 파괴 유린당했는지 자료를 수집 정리하는 동안 간혹 격한 감정이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이렇게 다시 15,6년을 몰두를 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2005년에 처음으로 졸저 『우리 문화재 수난사』를 내놓게 되었다.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부족함과 공허함을 바로 느낄 수가 있었다. 당시의 상황을 좀 구체적으로 담아 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생각해 낸 것이 ‘문화재 수난일지’였다. 한말 이후 우리 문화재는 외적 폭력과 왜곡에 막대한 피해를 입어, 오늘날까지 곳곳에 그 상처가 남아 있다. 해방 이후 이 같은 약탈적 반출과 구겨놓은 우리 문화재의 가치를 바로잡기 위한 부단한 노력으로 많은 성과를 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종적으로 이를 정리한 연보나 일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아쉬움이 아닐 수 없었다. 시대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일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그 부산물로 몇 권의 책을 더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지를 쓰기에는 연월일의 불명이 대부분이라 자료의 부족함과 수집의 어려움으로 시간만 축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2년 전에 직장을 명퇴하고 박차를 가하여 이제야 겨우 완성을 보게 되었다. ‘우리 문화재 수난일지’는 1866년 병인양요 때부터 1945년 해방이 되던 해까지의 기록으로, 각종 보고서와 잡지, 신문기사 등을 기초로 문화재 관련 법규, 고적조사, 도굴, 도난, 반출, 파괴, 전시 등을 연월일별로 기록하여 당시의 상황과 피해를 파악하고자 했다. 우리 문화재의 역경을 작은 단서라도 보태는 마음으로 정리를 했다. 2016년 11월 정 규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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