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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정약종

출생:1760년

사망:18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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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주교요지>

정약종

한글로 쓰인 최초의 교리서 《주교요지》를 저술한 한국 천주교의 교부적 신학자.
1760년 경기도 남양주에서 정재원의 다섯 자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유교적 학문을 익히고 정치에 나섰던 동생 정약용과는 달리, 정약종은 불로장생을 꿈꾸며 도교에 심취했다. 그러나 1786년 자신의 둘째 형인 정약전을 통해 천주교 교리를 접하고, 같은 해 권일신을 대부로 삼아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고 ‘아우구스티노’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교인이 된 그는 지속해서 교리를 연구하고 묵상했다. 또한 신도들 간의 교제를 증진하고, 교우들을 방문하여 교리를 교육하는 일에 전념했다. 1794년 이후에는 지도층 신자들을 규합하여 교리를 연구하는 작은 공동체운동을 벌였다. 1797-1798년에는 서울을 오가면서 주문모(周文謨, 1752-1801) 신부를 돕는 한편, 한국 천주교 최초의 한글 교리서인 《주교요지》를 저술했다. 그리고 1799년부터는 평신도 단체인 명도회의 초대 회장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본격적으로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던 1801년(신유박해), 정약종은 체포되어 포도청 에 끌려가서 조사를 받고 천주교인임이 발각되었다. 갖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천주교
교리를 옹호했던 정약종은 결국 1801년 2월 26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되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천주교의 교리를 쉽고 간략하게 정리한 《성교전서聖敎全書》를 쓰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약종의 식솔들 모두 순교의 길을 걸었다. 정약종의 큰아들 정철상은 1801년 신유박해 때에 그리고 정약종의 부인 유소사와 작은아들 정하상, 딸 정정혜는 1839년 기해박해 때에 체포되어 모두 순교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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