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은 그를 대한민국의 교육자, 작가, 사회운동가, 로마 가톨릭교회 신부라고 정의한다. 그는 이제 붓글씨를 하느님께 봉헌해 성스럽게 한 ‘축성祝聖의 사제’, 축성의 서예가’이다. 하지만 그는 몇 개의 단어로 정의되지 않는다. 함세웅은 그냥 함세웅이다.
그는 윤형중 신부와 지학순 주교의 충실한 제자이며, 교우들에게는 소박하게 봉사하는 사제이다. 청년 학생들에겐 정의란 깃발을 함께 든, 국가폭력 희생자들에겐 함께 아파하고 함께 통곡한, 사회적 약자에겐 고난의 현장을 함께 버텨주는 동지이다. 반면 불의한 권력자들에겐 거북한 말씀의 몽치이고, 배신자들에게는 가을 서리보다 엄한 호통이다.
그는 순수하고 성실하며 열정적이다. 하지 못하는 일은 타협이고 멈추지 못하는 일은 불의에 눈감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늘 사람들이 외면하거나 망각하는 곳에 먼저 가 있고, 아무도 말하지 않을 때 목소리를 낸다.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와 민족문제연구소, 인권의학연구소의 이사장을 맡아 활동하고, 민주화운동으로 돌아가시거나 고통받은 분들을 기리고 복권하는 일에 앞장서며, 남북의 일치와 평화공존을 위해 애쓰는 것 또한 그런 맥락에서다.
용산구 원효로에서 태어난 그는 아홉 살 때 특별한 체험을 한다. 6.25 전쟁통에 북한군의 포격을 피해 용산신학교 내 성모병원에 몸을 피했다가, 피 흘리는 사람들에게서 전쟁의 참상과 삶의 허무를 느낀다. 그 길로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가톨릭신학교를 졸업한 후에 로마 유학길에 올라 신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는다.
귀국 후, 그의 삶은 1974년을 기점으로 격변한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지학순 주교가 구속되자 동료 사제들과 함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결성해 본격적인 인권회복과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맥아더 장군을 존경하던 소년은 어느새 투사가 되었다. 독재정권에서 수없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고 두 번의 감옥생활을 겪었지만 이를 통해 영적으로 더 단단해졌다고 고백한다. 사제가 세속의 일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을 깨고, 교단 안팎의 우려와 비판을 넘어, 그는 오랜 세월 사제의 길과 투사의 길을 나란히 걸었다.
2012년 은퇴 후, 그의 활동은 오히려 범위가 더 넓어졌다. 그것이 하느님께 부여받은 자신의 소명이라 여기는 한, 우리는 앞으로도 여전히 여기저기서 그의 흔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누가 우리 시대 지도자인가
자신과 그 일족을 위해 나라와 민족을 팔고, 일제의 주구로 민족 공동체를 탄압하는 데 앞장서 부귀영화를 누렸다면 그는 매국노, 친일파입니다. 역사와 민족의 이름으로 준엄하게 비판하고 처단해야 합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민을 탄압하고 죽였으면 독재자입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이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려는 행위와 수단은 그저 독재의 연장일 뿐입니다.
갈라지고 흩어진 민족 공동체는 화해와 협력을 통해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한국 사회 지도자는 적어도 민족의 화해와 일치, 친일과 독재를 정당하게 비판하고 우리 사회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이에 대한 분명한 가치관을 정립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이러한 역사관과 가치관으로 스스로 헌신과 희생을 실천하는 사람이 우리 시대의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