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7월 15일 서울 출생으로 2024년 올해 고희를 맞았다. 유교적 가치와 민간신앙을 지녔던 부모 밑에서 성장했으나 대광중고교를 다니면서 기독교에 눈을 떠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입학했다. 올해로 신학 공부 50년 세월이 쌓였다. 아내 이은선을 만나 스위스 바젤대학교 신학부에서 함께 학위를 마친 후 모교에서 30년 가르치다 명예퇴직했다.
재학 중 일아(一雅) 변선환 선생을 만나 토착화신학 전통을 잇게 된 것은 신학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었다. 세월호 사건의 영향으로 다소 일찍 대학을 떠났으나 선생과의 첫 만남에서 얻은 감동을 지금껏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토착화신학은 교회 비판을 넘어 시대정신과의 갈등이었고 문명 재창조의 학문이었다. JPIC 정신에 입각하여 ‘작은교회’ 운동을 시작했고 기후붕괴 시대에 ‘탈성장’ 가치를 선언했으며 다석 유영모 사상을 연구했고 그리고 최근 〈개벽신학〉을 주창한 일 모두는 동일 정신의 다른 표현들이다.
그간 수십 권의 책을 썼으나 고희를 맞아 동시에 출간한 두 책 속에 앞서 말한 모든 것이 담겼다. 『실패한 제자들 그 이후』(명작 2024)와 『역사유비로서의 개벽신학』(신앙과지성사 2024)이 바로 그것이다. 지향점이 같으나 전자는 마음으로 썼고 후자는 치열한 논리의 결과물이다. 신학자 이신을 만나 ‘역사유비’를 생각했고 그것을 동학사상과 연결시켜 〈개벽신학〉이라 말했으며 이런 의식을 펼치는 학문공동체의 탄생을 염원하며 ‘이후’라는 말로 표현했다.
자식의 앞날을 달리 생각하며 희생을 마다치 않은 부모님께 한없이 죄송하여 염치(?)없지만 신학 공부 50년 세월을 하느님께 감사하고 있다.
감춰진 한국 신학의 유산들
: 李信과 그리스도환원운동 그리고 기독교사회주의
이 책의 의미는⋯ 한국 신학사 속에서 지금껏 주목받지 못했던 기독교사회주의와 그리스도환원운동의 신학 및 역사적 의미를 복원시켰고, 동시에 (토착화신학과 더불어) 이들 셋의 뿌리가 1920~30년대 초기 감리교회에 놓였음을 밝혔다. ⋯ 신과 자연을 관계시킨 존재유비(가톨릭), 하느님과 인간의 특별한 관계에 초점 둔 신앙유비(개신교)가 앞서 존재했다. 필자는 이에 더해 역사유비란 개념을 사용하여 우주사까지 포함된 역사 속의 공시적 관계를 모색했다.
앞선 유비들이 각기 하느님과 그리스도에 강조점을 두었다면 ‘역사유비’는 성령에 방점을 둔다. 앞선 두 유비가 역설과 변증에 역점을 둔 반면 ‘역사유비’는 일치를 모색한다. 이전 유비들이 각기 토미즘철학과 독일 신비주의 사조와 잇대어 있다면 나중 것은 발터 베냐민을 차용했다. 하지만 베냐민이 유대주의로 회귀한 것과 달리 이신은 아시아적 사유를 전유하였다. 그가 수운 최제우의 종교체험을 중시한 이유다. 이것이 필자가 책 말미에 강조했던 핵심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