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설악산 대청봉을 오를 때였다.
가을이었고, 점심을 먹고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게다가 쉬엄쉬엄 오르느라 그날의 목적지인 중청대피소까지 절반도 못 오른 채 해넘이를 맞고 말았다.
산속의 어둠은 도시에서와 달랐다. 두껍고 검은 벽이 주변을 에워싼 듯했고 기온마저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가야할 길이 어느 쪽인지 아득한 그곳에서, 나는 막막한 두려움에 휩싸였다.
랜턴으로 전방을 비추면 자작나무 숲이 허연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았고 바람이 달음질쳐 내려간 계곡 아래는 더 깊은 어둠이 심해처럼 펼쳐져 있었다.
되돌아 갈 수 없는 길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다만 옅은 불빛을 발밑에 비추며 자박자박 계속 산을 오르는 수밖에.
어느 때부턴가 무거운 배낭과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 뒤에서 내 등을 살짝, 밀어 주는 것처럼.
그렇게 나는 무사히 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덕분에 그곳에서만 들을 수 있는 바람의 소리를 들었고 이곳에선 보이지 않는 별을 볼 수 있었다.
삶과 글이 잘 풀리지 않으면 그때의 기억을 끌어온다.
어둠 저편에 있을 불빛을 꿈꾸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던 그 시간을.
서른셋에 첫 소설을 썼고 서른일곱에 등단해 이제야 첫 소설집을 낸다.
늦게 출발한 만큼 오래오래 달리고 싶다.
그럴 수 있다고, 어깨를 두드려준 실천문학사에 깊이 감사드린다.
2015년 11월
첫눈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