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2년 데살로니까(오늘날 그리스 북부의 도시)에서 태어나셔서 1391년에서 1397년 사이에 안식하신 비잔티움 시대의 신비가(mystic)요, 신학적 저술가로 알려져 있다. 또한 정교회(正敎會)에서 성인(saint)으로 공경을 받고 있으며, 그의 축일은 6월 20일이다.
성인은 당시의 황제인 요한 6세 칸타쿠제노스와 친밀한 사이였으며, 황제가 수도원으로 은퇴하여 물러날 때 그와 함께 동행하였다. 성인은 자신의 삼촌이며 데살로니까의 대주교인 닐루스 카바실라스로부터 최초의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교육을 받았으며, 이후 콘스탄티노플로 가서 철학공부를 계속하였다. 이른바 헤시카스트(Hesychast) 논쟁과 관련하여 성인은 아토스산의 수도자들과 데살로니까의 대주교였던 그레고리 팔라마스의 신학을 지지하였다.
성인께서 안식하실 때까지 신도로 남아 있었는지 또는 수도자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공적인 생활에서 은퇴한 이후 오랜 기간 동안 성인께서는 콘스탄티노플의 수도원들을 찾으며 보내셨다. 성인의 드높은 덕에 관한 명성이 그 도시에 자자했으며, 황제를 포함한 제국의 주요 인물들은 성인을 영적인 아버지로 여겨 자주 조언을 구하곤 하였다. 그러나 성인께서는 다시 세속의 일에 관여하지 않은 채 침묵 속에서 지내길 즐겼으며, 이때 아래의 두 작품을 썼고 이는 성인의 거룩함을 증언하는 동시에 그리스도교 저술의 명작으로 남아있다.
성인의 두 가지 주요 작품은 ‘그리스도 안의 삶’(Life in Christ)과 ‘성찬예배 해설’(Commentary on the Divine Liturgy)이다. 특별히 ‘그리스도 안의 삶’에서 성인은 세 가지 위대한 신비의 성사(聖事)들, 곧 세례성사(baptism)와 견진성사(confirmation) 그리고 감사성사(eucharist: 곧, 성찬예배)를 통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성인의 많은 저술들은 현재까지도 필사본의 형태로 남아있다.
위에서 말한 성인의 두 작품은 동방정교회의 성사와 예전(禮典)적인 삶에 대한 심오한 이해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오늘날 동방이나 서방에서 예배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고 또한 유익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