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한 우물을 파지 못하고 이런저런 장르를 집적거리는 바람둥이 같은 작가가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내게도 끝내 순정과 열정을 바치고 싶은 데가 있다. 아라발의 희곡을 처음 읽고 감전된 듯 떨었던 스물 살 초엽무렵부터 나는 극작을 선망했다. 그런데도 내 행로가 퍽 괴상했던 것은,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일찌감치 당선해 놓고서도, '60세가 되면 본격적으로 쓰리라!'며 극작을 밀쳐놓고, 미적거렸다는 사실이다.
책상에 앉으면 바로 마주 보게 되는 벽에 커다란 전지를 붙이고 무려 다섯 개나 되는 제목을 써 놓았다. 희곡을 쓸 목적에서였다. 그뿐인가? 대구 타워레코드에서 사은품으로 준 검은 하드커버 노트에도 쓰다 만 희곡이 있다. 그런데 대체 저 타워레코드점이 문 닫은 지가 언제 적 얘기란 말인가? 이런 사실들은 다음의 두 가지를 가리켜 준다. 첫째, 희곡 쓰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 둘째, 나의 산만함과 게으름. (희곡 쓰기에 재능이 없다는 말만은 끝내 하지 않는 이 뻔뻔스러움!)
십여 년 넘어, 두 번째 희곡집을 낸다. 소망하건대 세 번째는 좀더 일찍 낼 수 있기를 바란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60세가 되면 본격적으로 쓰리라!' 던 젊은 날의 결심이 좀더 일찍 이뤄지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