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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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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숲은 고요하지 않다 2>

이종찬

이종찬의 90년 삶은 ‘대한민국 100년’ 궤적과 고스란히 함께했다. 그는 1936년 독립운동가들의 망명지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발상지인 중국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광복을 맞아 귀국한 뒤 운명적으로 대한민국 정부의 역사와 더불어 살아왔다. 독립운동, 해방 정국, 산업화, 민주화 등 네이션 빌딩(nation building)의 현장에 참여하며 나라의 발전에 몸을 담았다.
이종찬은 이승만 대통령부터 윤석열 대통령까지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서 관찰자인 동시에 참여자로 살아온 흔치 않은 경력을 가졌다. 그만이 가진 역사의 눈으로 한국 현대사를 증언한 결실이 바로 이 회고록이다. 하지만 그의 증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책은 소년이 본 독립운동 현장의 일들과 해방 정국의 상하이, 그리고 귀국 후 혼란 시대에 대한 소년의 증언으로 시작한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후에 임시정부 요인들과 국내 정치 세력 간의 동화 과정, 그리고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간의 갈등도 조숙한 소년의 눈으로 그려졌다.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 학창 시절을 보낸 그는 육군 장교의 길을 선택했지만 조국의 현실은 그에게 충실한 군 지휘관의 경력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군의 이단처럼 된 혁명적 현장과 정보 세계(intelligence community)의 지하활동을 마다하지 않았다.
1980년 이종찬은 정치인으로 새롭게 등장했다. 광복 이후 구각(舊殼)으로 고착된 낡은 정치 틀의 혁파를 주장하며 새로운 가치를 찾으려고 허우적거렸다. 여기저기에서 받히고 몸부림치며 모색의 마지막 단계까지 가보았다. ‘진보적 보수’로 평가받기를 희망했지만 ‘태생적 보수’의 경계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것이 스스로의 평가다. 또 ‘정치 1번지’로 꼽히는 서울 종로에서 국회의원으로 4선을 했지만 성공한 정치인은 아니라고 냉정하게 자평한다.
2000년 이종찬은 자연인으로 돌아왔다. 미국에서 일정 기간을 보내며 왕년의 한국 경제를 설계한 인사들과 함께 21세기 이 나라 발전의 새 그림을 그리고자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그런 그림을 그리기에 그는 너무 늦었던 것일까? ‘디지털 한국’이란 어떤 것일까? 21세기 한국의 먹거리로 ‘물류’가 해결책일까? ‘동북아 시대 한국의 새로운 길’은 무엇일까? 문제의 주변을 맴돌았지만 마음에 드는 답은 찾지 못했다.
2010년 이종찬은 이제 자신을 정리하는 일이 급하다고 느꼈다. 그는 조부 우당 이회영 선생의 기념사업을 본격적으로 다듬으며 조부의 혁명적 삶의 궤적을 찾아 나섰다. 소년 시대에 직접 지켜본 독립운동의 역사 속에서 독립운동가들이 마주쳤던 문제들을 똑같이 느끼며 방황했다. 당초에 대한민국 역사를 정리하지 않고 대충대충 짚으며 갈 길만 재촉해온 것이 오늘의 실패를 낳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너희가 임시정부를 아느냐?” 청춘을 임시정부에 바친 한 여성 혁명가의 외침이었다. 우리는 이 말을 연극의 대사처럼 알아왔지만 그것은 피 울음이었다. 그래서 이종찬은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운동에 뛰어들어 작지만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늦었지만 시초였다.
2023년 이종찬은 독립운동가들의 중심체인 광복회장에 도전해 어렵게 당선되었다. 그는 이제 스스로 부여한 마지막 과업, 즉 독립운동의 역사를 제대로 정리하고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체성으로 확고히 자리 잡아야 진정한 나라가 이룩될 것이라는 확신 속에 분투하고 있다.
1960년대 이래 역사와 더불어 어렵게 살아온 근면한 국민들의 피와 땀으로 나라는 어느덧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 지금 생각해도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몸이 비만해진 대신 뇌는 온통 빌려온 지식으로 꽉 채워졌다. 이를 다시 대한민국의 정체성으로 채우지 않으면 선진국은 아직 멀었다. 이종찬은 이를 위해 앞으로도 조금 더 역사를 정리해가려고 한다. 피로 쓴 역사를 다시 우리 것으로 우뚝 세우는 작업이다. 이게 그의 마지막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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