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이며, 무얼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어디로 향하여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올바른 삶인지를 묻기 시작하였을 때가 초등학교 4학년 시절이었다. 그런 물음의 동기는 초등학교 4학년 도덕 교과서에 실린 석가모니의 말씀 중 다음의 구절을 읽고서다: “꽃은 피면 쉬이 지고, 사람은 나면 이윽고 죽는다.” 즉 사람이 나면 누구나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였다.
“사람은 이윽고 죽는다”라는 구절에서 나도 언젠가 반드시 죽게 될 존재라는 점을 절실히 깨닫게 되자, 죽음의 문제는 오늘 하루를 허투루 보낼 수 없음을 분명히 자각하게 하였다. 그 이전까지는 동네 어르신들이 저 먼 세상으로 하직한 모습을 여러 차례 지켜보았음에도, 그들은 나이가 들어서 늙었기에 그런 것이고, 나는 아직 젊기에 충분히 오랫동안 살 것이라고 착각했다. 그래서인지 돌아가신 그분들이 그토록 살고 싶었던 ‘내일’이라고 했던 바로 오늘 현재의 삶에 그리 충실하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였다.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언젠가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의 깨달음은 장래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관한 대답을 찾게 하였다. 그래서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기에 죽음을 수시로 인식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현재를 붙들고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관해 대답을 찾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제 죽어갔던 분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가면서 건강한 사회의 형성을 위해 마중물 역할을 실행하는데 인생의 목표를 두었다. 그리고 건강한 사회는 누구나 인간적 삶을 제대로 누릴 환경을 갖추고, 자유와 평등 그리고 정의가 살아서 숨 쉬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한편으로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고달프더라도 양심에 비추어 정당하고 공정한 태도를 준수하고 행동하고자 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내가 매월 벌어들인 월급 중에서 30% 내외를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한 마중물로 사용하고자 했다. 배우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포기할 수밖에 없는 분들, 병원에서 치료하면 살 수 있음에도 그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소외자들, 돈이 없어서 사기꾼이 되어야 할 운명의 사람들에게 소액이지만 도와주려고 했다. 아무나 주질 못했다. 내가 신용하고 믿을 수 있는 분들에게 한정했다. 이런 일은 월급을 받기 시작한 1984년 가을부터 시작했으니, 39년이 되어간다.
이러한 두 가지 목표를 두고 생활했던 나의 삶의 단면을 기록하여 정리한 책이 다름 아닌 “삶의 굴레”라는 본서이다. 본서에는 나와 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분들에 관해 이런저런 생각을 기술했으며, 동행하였던 제자들과의 이야기 그리고 여행기와 법률시평을 담았다. 이런 종류의 단행본은 이미 “인간적인 법을 찾아서(1997년)”, “인간의 존엄과 권력(2007년)”과 “인간적인 삶을 찾아서(2020년)”라는 이름으로 출간했다. 이것들 외에 지금껏 22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이를 토대로 “형법연구 Ⅰ”부터 “형법연구 Ⅸ”까지 단행본의 출간으로 햇빛을 보았다. 하지만,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것도 거의 없다.